CULTURE

김범수를 처음 보았네

2011.12.21GQ

우리가 방송에서 본 건 지난 13년 동안 마냥 꾸준했던 남자의 순간이었다. 환호 속에서, 그가 의연한 이유다.

‘비주얼 가수’라는 말은 흥행을 위해 필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이제 ‘얼굴’이 생겼다는 말은 농담처럼 소비되었다. 하지만 김범수는 종종 그 모든 농담을 딛고 그냥 서 있는 것 같았다. 긴장했지만 의연했고, 그가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김범수의 꿈꾸는 라디오>를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은 그 솔직한 성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약속’, ‘보고 싶다’ 같은 노래에서 그 목소리의 가치를 알아채거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방송에서 그가 부르는 스티비 원더를 들었다면 역시.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모두에게 모험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김범수는 이렇게 말했다. “고민과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김영희 PD 눈빛에 반했죠. 저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가수가 돋보이는 무대를 만들어주겠다’는 열정과 의지. 그걸 따라가 보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갑자기 <무한도전>에 들어가라고 했으면 못했을 거예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일이니까 해보기로 했죠.” 김범수는 <나는 가수다>의 긴장이 새벽처럼 서늘했던 초창기를 치밀하게 관통했다. 이소라의 ‘제발’로 울리기도, 남진의 ‘님과 함께’와 구창모의 ‘희나리’로 모두를 뛰게 하기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나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을 부를 땐 노래로 할 수 있는 진심을 다하고 잠깐 이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김범수 무대만 따로 떼서 연이어 보면 그대로 콘서트 같아서, 그가 얼마나 꼼꼼하게 각각의 무대를 연출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범수의 소속사 ‘폴라리스’ 박세진 이사는 말했다. “생각이 많은 가수예요. 회의를 할 때도, 즉흥적으로 하는 말이 거의 없다는 걸 듣는 사람은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지막 라운드 1차 경연에서 ‘사랑으로’를 부르고 2차 경연에서 ‘홀로 된다는 것’을 부른 것도 그랬던 것 같아요. 관객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이제 혼자 된다는 뜻.” ‘아주 담담한 얼굴로/나는 뒤돌아섰지만/나의 허무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네.’ ‘홀로된다는 것’은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는 사람, 인생 자체를 투영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방송에서 했다. 교과서 같은 말, 모두 잊고 있지만 결국 사실이라서 가치 있는 말. ‘빌보드 1위’라는 목표는 지금도 갖고 간다. 영어로 부른 ‘하루’는 빌보드 세일즈 차트 51위에 올랐었다. 편곡자 돈 스파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수다>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똑같은 범수예요. 노력했고, 최선의 무대를 만들려고 했고. 그걸 TV가 조명한 거죠. 운대가 맞았거나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해요.” 지난 8월 <나는 가수다> ‘졸업’ 이후엔 신속하게 본연으로 돌아갔다. TV CF에서 그를 만나는 건 반가운 균열이었다. 앨범은 작년 6월에 발매, 그해 연말엔 콘서트와 드라마 <시크릿 가든> OST. 이후 바로 이어진 <나는 가수다> 스케줄과 호주 공연. 그리고 8월 20일부터 시작된 전국 13개 도시 콘서트 투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OST ‘말하지 않아도’는 공개된 즉시 음원 순위 정상에 올랐다. 이에, 김범수의 숨 가쁜 소감. “저는 열심히 전국을 돌면서 공연하고 있어요. 다음엔 꼭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리겠습니다. <GQ>가 저를 올해의 남자로 선정해주셔서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더 좋은 음악, 공연으로 계속 찾아뵐게요. 응원해주세요. 겟올라잇!” 연말엔 가수 이소라와 대구, 서울, 부산에서 공연한다. 방송이 아니라도, 어쩌면 그보다 더 100퍼센트에 가까운 김범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도 적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2011년, 김범수는 더 많은 사람에게 그리운 가수가 됐다. 새삼스럽게.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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