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대표는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는 원정 16강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한국영화계가 지닌 강박관념들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는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외국어영화 부문 수상에 대한 갈증이다. 해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구성한 심사위원회에서 한국영화 대표 출품작 1편을 선정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냥 일단 우리끼리 심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정했다고 해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본선 후보로 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예심과정을 다시 거쳐야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심사위원회는 늘 작품의 완성도, 미국 배급능력, 감독 및 출품작의 인지도 등을 평가해 한 편을 선정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본선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말하자면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밀양>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한 것은 물론 거의 해마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영화가 한 편 혹은 두 편까지 진출해온 지난 10여년 간의 성과와 별개로, 아카데미 본 시상식에서는‘ 사우스 코리아’의 영화가 후보 영상으로 뜬 경우조차 없다는 얘기다.

1991년 신상옥 감독의 <마유미>를 시작으로 봉준호 감독의 <마더>까지 총 9편을 출품했지만 모두 1차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선정한 출품작은<고지전>이다. “한국전쟁을 다뤘다는 소재가 유리하게 작용했고 결말의 완성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한국전쟁 등 남북 문제를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나 <웰컴 투 동막골> 그리고 <크로싱>이 일찌감치 아카데미의 외면을 받았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 선정 이유란 게 늘 ‘그때그때 달라요’다. 이건 <고지전>을 비롯 지금껏 후보작으로 선정된 영화들의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향해 제기하는 질문이 아니라, 최종 후보 선정 자체를 아메리칸 드림으로 생각한 욕망 때문일 것이다.

국가대표 축구팀으로 얘기하자면, 매 경기마다 코칭스태프의 긴 회의 끝에 적절한 원톱 스트라이커를 냈지만 늘 패했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심사위원회가 얘기하는 애매모호한 그 ‘한국적 정서’다‘. 골 결정력 부재’ 만큼이나 해답을 찾을 길 없는 그 한국적 정서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과연 세계적이며 또한 경제적일까. 아카데미 영화상이 미국시장을 포함해 한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글로벌 시장성 검증의 무대라면, 한국영화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죽을 쑤는 동안 과연 어떤 영화들이 외국어영화상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는지 찬찬히 살펴보면 된다. 가장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은 바로 2009년 일본영화 <굿’바이>의 수상이다. 모두가 이스라엘의 <바시르와 왈츠를>의 수상을 점칠 때, 하루아침에 화려한 첼리스트에서 초보 납관 도우미가 된 남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린 <굿’ 바이>가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또 다른 수상작들인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수잔 비에르의 <인 어 베러 월드> 역시 이른바 지역색, 국가색과는 거리가 먼 보편적 휴머니즘을 다룬 작품들이다. <와호장룡>도 중국적인 영화라기보다 유려한 영상미로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아마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심사위원들뿐만 아니라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 전략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는 많은 이들이 ‘한국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을 혼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춘향뎐>이나 <왕의 남자>가 한국적이라는 것은 한국 사람만 안다. 반면 <태극기 휘날리며>나 <크로싱>이 한국적이라는 것은 오직 한국에서만 가능한 아이템이기에 대충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들에게 부담스럽거나 흥미롭지 않다. 이처럼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한국적이라는 사실을 한국인들만 알고 있는데 그것이 세계시장에서 보편적 흥행성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거의 망상에 가깝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웰컴 투 동막골>의 예에서 보듯 가장 한국적인 상품성으로 여겨온 한국전쟁이나 남북 문제는 그저 지금껏 우리들만 소비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본적인 ‘이해’를 전제해야 한다. 그들이 미리 역사공부를 하고 오진 않을 테니 여러 설정이나 대사를 통해 관객들을 납득시켜야 하지만, 한국영화들뿐만 아니라 그런 수고스런 과정을 거친 해외 영화들이 북미시장에서 편안한 흥행을 거둔 결과는 드물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는 해외 관객들이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 흘리기를 기대하는 일이랄까.

이렇게 질문을 바꿔 물어볼 수도 있다. 지금 한류를 넘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K-POP은 과연 한국적인가. 혹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영화 팬들 혹은 유명 외국영화 감독들이 입을 모아 격찬하는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한국적인가. 미국 내 단 6개관에서 개봉한 뒤 7개월의 장기상영을 통해 238만 달러의 극장 수입을 올려 미국 내 개봉 한국영화 중 최고 흥행성적을 거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물론 수치상으로는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훨씬 앞서지만 와이드 릴리즈에다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한 것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최고 흥행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역시 한국적인가. 그들에게 이국적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한국적이지는 않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올드보이>를 제치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 대표로 선발됐던 <태극기 휘날리며>가 왜 앞선 두 영화보다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 해외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떨어지는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한국적인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부담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적으로 배급하기 위해 보편적인 정서를 포함하려는 노력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해운대>의 성공과 <7광구>의 실패 모두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전자가 쓰나미라는 자연재해, 후자가 에일리언이라는 침입자, 그렇게 세계적으로 익숙한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시도한 사례지만, 알다시피 <7광구>는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고 <해운대> 역시 미국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먼저 <해운대>는 사실상 CG 장면의 물량이 후반부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중반 이후까지 윤제균식 한국어 코미디를 즐겨야 하지만 자막을 접하는 해외 관객들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7광구>는 세계적인 트렌드인 3D라는 상품성 까지 갖췄지만 내러티브가 재앙이었다. 시사 직후 융단폭격을 당하고는 제작진이 부랴부랴 라스트에 “실제 제주도 남단에 위치한 7광구는 한일공동으로 개발됐다. 1980년대 일본이 철수함으로써…(중략), 2028년까지 작업이 재개되지 않으면 국제분쟁의 위험을…(후략)”이라는 ‘한국적’이고 ‘애국적’인 자막까지 넣었지만 정작 한국 관객의 구원조차 받지 못했다. 해외시장 개척과 배급이라는 지상과제, 그러니까 영화의 몸집부터 키우고 보자는 여러 시도 안에서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국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 그리고 판빙빙까지 출연한 <마이웨이>는 한국적이고 때론 일본적이며 심지어 중국적이기까지 하다. 어색한 표현을 용납할 수 있다면 <마이웨이>는 그렇게 삼국적三國的인 영화다. 거기에 인물들의 기구한 운명만큼이나 당시 경성은 물론 몽골,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거의 전쟁 로드무비라고 할 만큼 이동경로가 방대하다. 한국인으로 시작해 일본 군인이 되어서는 소련군 포로를 거쳐 독일군의 동방부대가 되어 노르망디에까지 이른다. 떠돌 수밖에 없었던 한국 남자의 슬픈 운명과 한중일의 경계를 지우는 보편적인 인간애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욕심 많게 모든 것을 아우르려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로 미국시장의 문을 두드렸다가 썩 만족스런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강제규 감독으로서는 한국전쟁을 넘어 2차대전이라는 보편성까지 갖춰 글로벌한 시장성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영화는 인물의 이동경로만큼이나 극심한 초점 변화를 겪게 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시선을 분산시킨다고나 할까. 영화적 재미나 전쟁영화의 스펙터클이라는 가시적인 요소와 별개로 감정이입을 시도하려는 찰나 축지법을 쓰며 달아나는 영화처럼 여겨졌다. 분명 한국영화지만 마치 한국영화처럼 위장한 듯한 다른 세계의 영화처럼 다가오는 <마이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내 고민이 됐다. 과연 한국적인 것이란, 한국적이되 보편적인 것이란,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했다. 내년 1월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에서 개봉하고 3월경 미국에서도 선보일 <마이웨이>는 아마도 그런 질문에 답해줄 첫 번째 한국영화가 될 것 같다. <해운대>나 <써니>처럼 CJ 배급라인을 타고 미국에서 소규모로 개봉한다면 김이 빠질지도 모르겠지만,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 혹은 ‘천만 관객’이라는 표현을 일상의 용어로 만든 강제규 감독이 흥행과 해외 배급 측면에서 ‘한국적’과 ‘세계적’의 경계를 그나마 가장 자유롭게 넘나든 사람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결과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