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맛, 소와 닭과 돼지의 발

거부할 수 없는 맛, 소와 닭과 돼지의 발

2016-08-02T15:55:24+00:00 |TRAVEL & EATS|

발까지 내어주는 소와 돼지와 닭. 우리에겐 아낌없이 주는 성자와도 같다.

[우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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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값은 떨어지는데 사료값은 올라 소들이 굶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 고기부터 창자까지 모두 다 내어주는 소인데도 돈 앞에 힘없이 쓰러진다는 게 소금을 뿌린 듯이 아렸다. 그 마음으로 꽉 잡아본 우족은 그저 늠름했는데, 우족은 클수록 시장에서 인기가 좋다. 그리고 우족은 단단하기가 몽키스패너 수준이다. 영화 < 황해 >에서 우족이 살벌한 무기로 쓰이는 것만 봐도 그 강함을 짐작할 수 있다. 다리 뼈는 경도가 높고 연골도 함께 붙어 있어 다른 뼈보다 우렸을 때 미네랄과 영양이 풍부하다. ‘사골을 우린다’고 할 때의 사골四骨은 원래 소의 다리뼈 네 개를 뜻하지만, 비싼 값 때문에 등뼈 같은 잡뼈를 함께 넣고 끓이는 경우가 많다.

시장의 소리 “이거 사세요, 이게 한우 앞발입니다. 우족은 원래 앞발을 더 좋은 걸로 치거든요. 그거야 뭐,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앞발이 힘쓰는 발이라고 더 좋아해서 그렇지. 소가 일어날 때 이렇게 앞발에 힘을 딱 주고 일어나잖아요? 그리고 꼬리뼈는 여자한테 좋고, 우족이 남자한테 참 좋아. 우리 집에 젖소, 육우, 수입산 소 발이 다 있지만 그래도 한우만큼 맛있는 게 사실 없어요. 한우는 살만 꼬순 게 아니라 뼈도 그렇다니까요. 근데 어떻게 해 먹을 생각이슈? 우려 먹으려면 암소가 낫지. 살도 암소가 더 맛나고. 족발이나 찜 쪄 먹으려면 가죽이 두꺼운 수소가 낫고요. 아이고, 근데 이거 그냥 들고 가면 안 되고, 썰어가야지. 집에서는 절대 못 썰어, 절대.”

우족의 진실 시장 상인의 말에 대해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 정말 그런지 물었다. 먼저 꼬리뼈는 여자에게 좋고 우족은 남자에게 좋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을 얻었다. “단순히 꼬리라는 부위가 여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우족은 힘있는 남자의 다리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런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축산물이용과 장애라 박사의 말이다. 우족은 뒷발보다는 앞발이 상품 가치가 더 좋은데, 그 이유는 앞발이 더 길고 두껍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황소의 앞발을 가장 좋은 상품으로 치고, 가격도 높다. 우족은 소의 성별, 종, 나이 등에 따라 모양이 다 달라 육안으로 한우와 육우, 젖소, 수입 소를 알아 맞히기가 힘들다.

우족 요리법 우족은 설날 한우 세트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부위다. 누군가에게 김밥 모양으로 단정하게 썰려 있는 우족을 선물 받았다면 먼저 찬물에 1시간 이상 담가 핏물을 빼는 것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깨끗하게 헹군 뒤 물과 함께 냄비에 넣고 3시간 이상 푹푹 끓인다. 찢어질 듯 건조했던 집 안이 기분 좋은 습기로 그득 차고 잔칫집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송송 썬 대파와 소금, 후추를 넣는다. 여기에 떡국 떡, 칼국수면, 만두를 넣고 원하는 대로 발전시켜도 좋다. 요리연구가 김보선 씨는 힘든 일을 다 끝낸 야밤엔 우거지 우족탕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우족탕에 우거지와 다진 마늘, 된장, 고춧가루 섞은 것을 넣고 뭉근히 끓이면 진국 중에 진국입니다.”

[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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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퉁퉁 붓도록 매운 닭발을 뜯으면서 묘한 쾌감에 빠지는 건, 입맛의 수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 아닐까? 어떤 이에겐 “어으” 하고 말 혐오식품일 뿐이지만, 한번 빠져든 이에겐 헤어나올 수 없는 미식이기도 하다. 닭발에 한번 포위되면 길바닥의 마른 낙엽도 닭발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닭발은 씹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질감 맛으로 먹는다. 다른 어떤 식재료보다 노골적으로 쫀득쫀득하다. 닭발을 뜯고 씹으면 치솟던 울화통도 사라지는 이유다. 식감은 콜라겐 때문이라는 정보가 사실인지 국립축산과학원에 문의했더니, ‘진짜’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뼈에도 좋다고 하니 닭도 소만큼이나 아낌없이 주는 동물인 셈이다.

시장의 소리 “닭발은 맨날 나오는 게 아니니까 지금 있을 때 사 가세요. 저기 빨간 다라이에 있는 건 늙은 닭발, 요 앞에 있는 건 어린 닭발이거든요? 양념해서 볶아 먹기에는 이게 더 맛있지. 저기 저 늙은 닭발은 2년 된 닭이고, 여기 싱싱한 건 두 달쯤 된 닭이에요. 늙은 닭발은 값이 많이 싸. 맛도 없고. 이건 구워 먹는 게 아니라 국물 낼 때 쓰는 거예요. 중국에선 이걸 푹푹 삶은 국물을 요리에 그렇게 많이 넣는다대요? 그 걸쭉한 수프 같은 거 만들거나 다른 요리에 깊은 맛 낼 때 넣는다고. 구이용 닭발은 양념 듬뿍 넣고, 맵게 해야 맛있어요. 이게 다 콜라겐이라서 흐물흐물 좀 느끼하니까. 아, 그리고 요리하기 전에 소주에 좀 담가놔야 냄새가 싹 가시니까 빼먹지 말고요.”

대기업 닭발 지난해엔 닭발 도매 가격이 50퍼센트 넘게 올랐다. 국내 닭발 소비량이 늘고 돈 되는 사업으로 떠오르자 하림, 마니커 등의 대기업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닭발은 닭의 부산물로 분류돼 긁어낸 내장과 함께 뒤섞여 처리된다. 여기서 닭발만 골라 판매하는 일은 그동안 일부 도매업자나 영세상인들의 몫이었다. 닭발이 큰 재래시장이라도 한 구석에서 개고기류와 함께 판매되는 이유는 닭발 물량이 일정하지 않아서다. 부산물과 섞이면서 쉽게 부패해버리거나 그대로 버려지는 일이 잦아 공급이 적다. 소나 돼지 발에 비해 닭발은 유통체계나 제재가 없어 관리가 허술한 편인데, 기업의 진출로 이 부분이 정비되면 맘 놓고 닭발을 뜯을 수 있을 것 같다.

홍미와 호미 매운 닭발집으로 수도권을 재패한 브랜드가 호미닭발과 홍미닭발이다. 홍미닭발은 강서구 화곡동에서 시작해, 발레파킹까지 되는 신사동 홍미닭발을 거쳐, 부산에 분점까지 낸 닭발계의 대모다. 부천에 본점이 있는 호미닭발은 홍미닭발의 원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금은 홍미닭발과 함께 매운 닭발 마니아층을 사이좋게 양분하고 있다. 입술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매운 양념에, 급할 땐 쿨피스로 입술을 적시고, 김가루로 둥글린 주먹밥을 곁들여, 흥건하게 땀을 흘리며 먹는 방식을 닭발 요리의 표준처럼 만드는 데 기여한 두 집이다. 이 두 집이 너무 익숙하다 싶으면 논현동 얌얌닭발도 뜯어볼 만하다. 매운맛 사이로 불 향이 솔솔 난다.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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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시장에 가면 살벌한 육식 현장을 목도한다. 그런데 돼지 발 앞에만 가면 맘이 좀 녹는다. 연한 분홍색 발가락을 다소곳이 모은 채, 위로 옆으로 층층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이걸 미니족이라고 부른다. 돼지의 크기가 작다는 뜻도, 돼지가 어리다는 뜻도 아니다. 똑같은 발인데 장단지에서 자르면 장족이고, 발목까지만 자르면 미니족이다. 장족은 붙어 있는 살까지 함께 조려 족발을 만들고, 미니족은 주로 고와서 국물을 먹는 용으로 쓰인다. 상인들도 어딘지 좀 귀여운 그 발을 보고 ‘미니족’이라고 이름 붙인 게 분명하다. 한자어와 우리말을 이어 만든 족발이라는 단어에도 우리의 친근한 마음이 스며 있는 것처럼.

하몽과 학센 족발은 우리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태국, 중국, 독일에서도 먹는다. 특히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서 만든 생햄인 하몽은 가격도 크기도 인기도 어마어마하다. 까만 발톱을 가진 이베리코 돼지의 뒷다리로 만든 하몽이 최상품인데, 스페인 레스토랑 복판에 이 다리가 진열돼 있으면 보기만 해도 침이 흐르기 시작한다. 독일에서는 양념에 조리고 맥주를 발라 바삭하게 구운 족발 요리 슈바인학센을 먹는다. 살코기를 바르지 않고 뼈째 식탁에 내는 것도 비슷하고 술이 있어야 더 맛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족발을 굽지 않고 삶아서 내는 건 아이스바인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도 와인 소스에 절인 족발을 먹고, 태국에서도 족발을 올린 족발 덮밥을 먹는다.

다섯 개의 발가락 아무리 족발이 세계인의 식재료라고 해도, 발가락 사이사이 살까지 쪽쪽 빨아먹는 민족은 흔치 않을 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족발 중에서도 쫄깃쫄깃한 발톱살을 족발의 최고 부위로 친다. 발톱살보다는 발톱밑살이라고 부르는 게 좀 더 정확한 말인데, 발톱은 도축된 돼지를 가공할 때 모두 뽑아내기 때문이다. 이 발톱을 잘못 뽑으면 튼 발처럼 끝이 갈라져 보인다. 도축업자들 말에 의하면 돼지 발톱은 골무 빠지듯이 잘 빠진다고 한다. 족발은 겉모습만 봐서는 발가락이 몇 개인지 짐작하기가 힘든데, 말발굽처럼 갈라진 두툼한 살 속에 발가락 뼈가 두 개씩 들어가 있다. 나머지 하나의 발가락은 그 뒷편, 오므린 엄지손가락처럼 생긴 살 속에 있으니, 합이 총 다섯 개다.

족발집 족발 때문에 장충동으로 향하던 발길은 어느새 좀 뜸해졌다. 원조 경쟁만 불붙었지, 맛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여서가 아닐까? 그 사이 사람들은 성수동 성수족발, 시청 근처 오향족발, 양재동 영동족발을 묶어 3대 족발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맛집 특유의 부산스러움, 대책 없이 긴 줄이 좀 아쉽다면 몇 군데 대안이 있다. 동대문 평화시장에 있는 모녀식당은 인근 상인들에게 감자탕을 배달하는 집인데, 밤 10시쯤부터 족발을 삶기 시작한다. 그 맛이 별미라 12시 전에 모두 동난다. 분당 김씨부엌은 두툼하고 뜨뜻한 족발을 만든다. 손님이 가고 나면 식탁 위엔 돼지 발가락 뼈만 남는다. 족발의 원조 격인 오향장육은 영등포 대문집이 꽉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