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옛 사진, 1966년 겨울

서울의 옛 사진, 1966년 겨울

2016-08-03T16:27:37+00:00 |ENTERTAINMENT|

사진가 김한용은 1966년 겨울에 여의도비행장에서 쌍날개가 달린 잠자리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서울을 봤다. 늘 다니던 거리를, 늘 보던 사람들을, 늘 보던 한강을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그리고 지금은 46년이 지난 2012년이고, 여기는 변함없는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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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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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중심가,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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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 앞 로터리,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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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단과 반도 호텔,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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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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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일대,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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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와 한양대 일대,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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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 일대, 1966

그때 그 서울

눈이 커진다. 눈을 의심한다. 실은 그전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허허벌판이라는 말이 서울에서 가당키나 할까? 아무리 봐도 (왼쪽 사진의) 한강대교 위쪽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한강의 백사장이 저리도 드넓었나? 흰 모래가 거의 사막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강 건너로는, 그러니까 지금의 강남 한복판이 되는 자리로는, 차라리 마차가 달린다면 미국 서부 개척 시대라고나 믿을 풍경이 까마득하다. 저 땅엔 언제부터 한 평 두 평 주인이 생긴 걸까. 아파트는? 백화점은? 도로는? 가로수는? 40여 년 전이다. 생판 모르는 어딘가가 아니라 여기는 바로 우리들의 서울이다.

6.25 이전인 1947년부터 국제보도연맹의 사진기자였던 김한용 선생은 그 시절에 카메라를 들었다는 희귀한 재능으로부터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전쟁이 끝난 후로는 서울시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방대한 자료를 만들었고,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현대 광고사진의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1966년 비행기에 올라 서울의 곳곳을 잡힐 듯 가까운 부감으로 찍은 사진들은 즉각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당장 그걸 펼쳐놓고 여기가 어디지?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올해로 여든아홉이 된 김한용 선생은 그날이 겨울이었다는 걸 기억한다. “여의도비행장에서 출발했지. 잠자리비행기라고 하는 거 있잖아? 그걸 타고 서울을 한 바퀴 다 돌았지. 지금 보면 신기하지 않아? 너무 많이 변했으니까.” 맞다. 차라리 ‘신기하다’는 말이 훨씬 어울린다. 잠깐 한눈팔면 못 보던 건물 하나가 솟아 있는 시절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넓은 백사장이 통째로 사라져버리는 장면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1950년대에 촬영한 <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서울 >과 1966년에 촬영한 <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중심가 >를 견주는 일은 흥미롭다. 낮게 웅크린 기와집들을 바탕으로 2층 3층 4층, 층이 있는 네모진 건물이 생겨나는 분포야말로 ‘도시 근대화’의 지표가 아닐까 싶다. 불과 10년 터울이 지는 두 사진 사이의 가장 큰 변화는 ‘층’ 있는 건물이 얼만큼 늘었는가 하는 점에서 대번 드러난다. 그 흐름이 결국엔 우리의 긍정적이다 못해 열성적인 아파트 문화를 이끌어낸 원동력일 테고 말이다. 한 번도 ‘올라가서’ 살아본 적 없는 주거 양식이 ‘층’을 만나 2층 양옥집에 대한 환상을 만들고, 아예 15층 30층 100층까지 치닫는 고공의 제국을 건설하는 차례. 두 말할 필요 없이 ‘아파트’는 한국의 건축풍경을 지배하는 주류가 되었으니, 역으로 그 천지개벽에 살아남을 풍경이란 거의 희박했을 것이다.

이번엔 1950년대의 <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 앞 로터리 >를 볼 차례다. 여기가 어딘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가로수와 행인들의 옷차림 그리고 쌓인 눈으로 미루어 각각 봄과 겨울에 찍힌 사진들이다. 그런데 한숨이 난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때 그곳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예쁘기’ 때문이다. “그땐 사진기만 있으면 흥분이 됐어. 카메라를 들이대면 무조건 사진이 됐으니까. 조화가 있었지. 질서가 있었다고. 못살고 못 먹어도 그것들끼리 어울리는 합이 있었지. 사진가로서 그만한 축복이 없었어.” 단적으로 말할 수 없는 문제겠으나, 극단적인 질문을 선생에게 했다. 지금의 서울과 그때의 서울 중 선택한다면?

“지금은 잘살지. 다들 잘살잖아요.” 선생은 그렇게만 말했다. 원구단과 반도호텔이 겹치는 샘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떠나, 다시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내려다본다. 영등포 로터리의 수많은 직선을 보고, 한양대 캠퍼스 너머로 구름 그림자가 굴곡도 없이 통째로 보이는 벌판을 본다. 그리고 같은 곳을 구글 어스로 또한 살핀다. 여기가 거기고, 저기가 여기고 하는 식은 잠시 즐겁다. 그러나 질문은 다시 생겨난다. 서울은 거의 급조된 도시가 아닐까. 우선 땅을 차지하고 보는, 거기에 뭐라도 짓고 보는, 이왕이면 높이 세우고 보는, 건축적 폭력. 폭력이야말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합당한 낱말이겠거니 확신한다. ‘무조건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맹목적 보존 논리가 아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신비로운’ 신화가 삼천리를 통일하는 동안, 우리는 응당 갖고 있어야 할 표정을 잃어버렸다. 밥과 바꿨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비극이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지금도 여전히 그 리듬으로 흘러가는 서울을 본다는 점이다.

김한용 선생이 지금 서울에서 가장 촬영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예전에 찍었던 곳에서 똑같은 앵글을 들이대는 것이라고 한다. “내내 서울에 살지만 카메라로 보면 다르지. 분명히 다를 거야. 그게 역사겠지.” 아래 사진은 명동이다.옛날의 미도파, 지금의 ‘영플라자’에서 그가 찍은 것이다. 선생과 유니클로를 지나 옥상에 올라 2012년의 겨울을, 명동길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잠시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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