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기자가 너무 많다

2012.02.02GQ

매체가 늘어나고 포털 사이트가 평등한 플랫폼으로 기능하면, 언론 불균형이 해소될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모두의 가치가 하락했다. 산업부 관련 기사들은 유독 처참하다.

난 1월 10일 오전. BMW 코리아가 미니 디젤을 출시했다. 같은 날 오후 7시. 이 소식을 다룬 인터넷 기사의 개수는 1백27개였다. 첫 기사는 오전 10시 39분이었다. 행사는 10시 반에 시작했다. 약 9분 만에 첫 기사가 올라온 셈이다. 같은 내용의 다른 기사가 언론사별로 분 단위로 치고 올라왔다. 행사 시작 직후 시간당 약 14개의 기사가 줄줄이 생겼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미니 디젤의 제원과 BMW 코리아의 설명을 정리하는 식이었다. 1백27개의 기사 중엔  ‘시승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도 있었다. 이날 시승 기회가 있긴 했다. 광진구 악스홀에서 시작해 강변북로로 잠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식. 총 시승 시간은 2분 남짓이었다. 요즘 시승기는 이런 식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포털의 언론 권력’ 운운하는 논의는 이미 구문이 되었다. 신문, 방송, 인터넷을 통틀어 자동차 를 다루는 인터넷 매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역시, 셀 수 없는 숫자의 자동차 전문 블로거도 같은 소식을 다뤘다. 미니는 훌륭한 자동차지만, 자체의 물성이 걸출해서 기사가 폭주한 건 아니다. 국내 수입 자동차 홍보를 담당하는 L 부장이 말했다. 그가 관리하는 매체는 1백50여 개에 달한다. “잡지를 제외하면 1백43개예요. 일간지, 일간지 소속 인터넷 사이트 ‘닷컴’, 언론사 소속 케이블 방송까지 모두. 신차 발표 후에 올라오는 기사는 다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홍보하는 입장에선 좋죠. 일단 양에서 먹고 들어가니까. 하지만 담당자가 잘해서, 그 자동차가 훌륭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으레 그 정도는 기본으로 나오는 거죠. 업체에서도 큰 의미를 안 둬요. ‘보고거리는 되겠군’ 생각하는 정도죠.”

산업계를 움직이는 핵심은 돈이다. 기사도 수치로 파악 한다. 홍보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공식이 있다. 기사는, 흔 히 광고비의 여섯 배 효과가 있다는 이론도 있다. 광고는 돈이 있으면 할 수 있지만, 기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건 언론과 기사에 대한 신뢰다. 적어도 산업부 관련 기사에서, 이제 그런 시절은 끝났다. 기사의 질이나 기자의 통찰력보다 중요한 건 속도다. 먼저 올라온 기사가 더 많은 클릭을 받을 수 있다. 클릭수는 발행 부수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둘 다 매체 광고 단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식음료 유통, 인물, 자동차 홍보를 두루 거친 홍보 대행사 K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매체가 너무 많아요. 제가 관리하는 매체는 3백 개쯤 되요. 기사 퀄리티는 계속 떨어져요. 기자는 일단 노출이 많이 되는 기사를 써야 해요. 자동차 출시 행사엔 항상 모델이 등장하잖아요? 그 사진찍기 위해서라도 기자들은 와요. 예쁘고 섹시한 여자 나온 기사는 일단 한 번씩 눌러본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광고 효과를 계산하는 건 비교적 쉽다. TV는 시청률, 포털은 유입량, 신문은 발행 부수로 판단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기사의 홍보 효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애매하다. 잘 쓴 기사를 판단하는 도구는 없다. 산업에 중요한 건 통계다. 지성이 아니라 숫자다. K 과장이 말을 이었다. “미국은 어떤 매체에 어떤 기사가 나왔다는 것 자체를 평가해요. < 타임 >에 몇 페이지 칼럼이 나오면 그 자체가 엄청난 파급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거죠. 한국에서 중요한 건 오직 양이에요. 물론 매체별로 가치가 다를 수 있죠. 하지만 집계할 순 없어요. 기사는 개수로 판단해요. 전쟁터에서 사망자 집계하듯.”

한 시사 주간지가 지난 1월 6일 보도한 ‘한식 세계화’ 관련 보도에는 기사의 홍보 효과를 수치로 환산한 몇 개의 실례가 적혀있다. 이것은 그 중의 하나다. “농식품부는 2011년 3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를 초청해 연 한식 홍보대사 위촉식의 경우 국내 언론에 1백70건이 보도됐고, 이는 1억 6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34억 7천만원의 홍보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시, 갯수를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신차가 나왔을 때 같은 내용을 쏟아내는 수많은 기사들처럼, 이 경우에서 1백70건이라는 숫자에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걸 돈으로 환산한 통계에도 별 의미가 없다. 인터넷 전문지 M 기자의 말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자동차 업계는 적어도 언론사 입장에선 아주 흡사해요. 요즘 개별 기사는 포털에 전시되잖아요. 연예인, 레이싱 모델, 자동차가 나오면 일단 클릭수가 많아요. 그래야 매체에 광고 영향력이 생기고. 클릭수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아이템인 셈이죠.”

난 1월 14일 토요일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던 ‘김연우 좋은날’의 경우, 첫 기사는 < 유희열의 스케치북 > 방송이 끝난 새벽 2시 20분이었다. 토요일 오후까지 30여 개의 기사가 줄줄이 올라왔다. 검색어 순위가 오르면 기사 숫자는 더 늘어날 일이었다. 지난해 < 나는 가수다 >에 출연했던 한 가수를 담당하는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잡지까지는 솔직히 신경을 못 쓰고 있어요. 여력이 없어요. 혼자 관리해야 하는 매체, 기자님 숫자가 1백 80명이 넘으니까요. 한 군데서라도 잘못 나가면 큰일이에요.”

이런 현상은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고 기사 하나의 파장이 큰 분야에 집중된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는 제품만큼 ‘홍보’에 집중할 필요는 없는 분야다. 진입 장벽도 높다. 기자실 출입처 제도도 완고한 편이다. 기자 명함을 갖고 있다 해서 취재원 접근이 쉬운 것도 아니고, 웬만한 특종이 아니고서는 대중의 관심도 낮다. 자동차, 화장품, 가전, 외식 분야에 블로거 활동이 집중되는 것도 그래서다. 회사는 홍보 업체를 고용해 그들을 따로 관리한다. 어떤 자동차 회사는 기자에게 시승차를 제공하지 않는다. 같은 차를 몇 개월씩 시승하는 블로거는 있다. 그들이 ‘클릭수’ 중심으로 쌓은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홍보 담당자 입장에선 기자와 블로거의 경계마저 모호해졌다. K 과장이 물었다. “저희가 보도자료를 뿌리면 기사는 블로그에도 나오고 매체에도 나와요. 그런데 어떤 블로그는 하루에 3만 명이 들어와요. 어떤 매체는 포털에 검색해도 안 나와요. 어느 쪽의 영향력을 우대해야 하는 거죠?”

로거의 콘텐츠도 데이터베이스로 기능한다. 실제로 유용한 정보들이 잘 정리돼 있는 알찬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다 1인 미디어를 차리기도 한다. 어떤 온라인 매체는 블로그에서 영향력을 쌓은 운영자와 콘텐츠를 공유한다. 그럼 그들은 기자일까? 여전히 블로거일까? 공개된 정보를 다루는 데 신분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정리되지 않은 질문 사이에서 기사는 양적으로만 팽창한다. 산업부는 기업을 다루고, 기업은 돈을 다루고, 돈은 숫자다. 그 세계에선 기사도 숫자일 뿐이다. 내용보다 개수가 중요한 시대다.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간다. 회사는 종종 잘못된 정보가 버젓이 실려 있는 기사를 본다. 정정해도 의미가 없다. 이미 수많은 다른 매체가 그대로 ‘컷 앤 페이스트’한 이후다. ‘리트윗’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매체력은 이렇게 와해되는데, 홍보사는 여전히 협박에 시달릴 때가 있다. “아들이 체육대회를 하는데, 홍보사에 전화를 걸어 해당 음료수를 얼려서 학교로 배달해 달라는 기자도 있었다. 지금 구조상,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건 L 부장의 말이다. 부정적인 기사를 들고와 광고를 요구하는 것도 구태의연한 악습이다. 권한을 악용하는 기자들은 항상 있었다. 정확한 사실로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는 이런 전화를 받는다. M 기자의 말이다. “비판적인 기사를 쓸 때가 있어요. 당연하잖아요? 그럼 업체가 전화를 해서, ‘광고 필요하시냐’고 먼저 물어봐요. 순수한 비판도 상업적 액션으로 치부되는 거예요. 구걸하는 기자가 너무 많으니까, 다 같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거죠.”

산업부에 돈이 몰리고, 매체 살림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 못한다. 하지만 ‘파이’는 한정돼 있고, 그 일부를 보고 뛰어든 매체와 기자는 이미 포화 상태다. 포털엔 그들 모두의 기사가 부러진 액자처럼 걸린다. 기사가 추구할 수 있는 지적 가치를 평가하는 도구는 전무하고, 모든 건 ‘분당 몇 개’ 안에 포함된다. 정보는 넘치는데, 제대로 된 걸 찾으려는 독자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기사, 매체, 기자의 신뢰도 모두 디플레이션에 빠졌는데, 출구는 안 보인다.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김종현
    아트 에디터
    김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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