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도전자 패스벤더

2012.02.02GQ

여자들이 ‘갑자기’ 난리 난 듯 좋아하는 남자. 말하자면 마이클 패스벤더도 그런 남자다. < 밴드 오브 브라더스 >에서, < 300 >에서, 또한 < 엑스맨 >에서 늘 그를 봤지만, 지금처럼 뚜렷한 적은 없었다. 그의 무엇이 그토록 새롭고 섹시하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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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 패스벤더의 인기엔 각자의 고유한 방식이 작용한다. 비평가들은 패스벤더의 연기를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비교하고, 블로거들은 스스로를 ‘패스벤더 빠Fassinator’라 칭하며, 극장에 모인 어떤 여자들은 그가 나오는 장면마다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까무러친다. 패스벤더가 애절한 섹스 중독자 역을 맡았던 영화 < 셰임 >의 첫 상영이었던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는 실제로 영화를 보던 한 여성 관객이 졸도하는 바람에 병원으로 응급 후송되는 사건도 있었다. 폭스 서치라이트가 배급을 맡은 < 셰임 >은 아카데미상 후보 선정을 노리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인 12월 중순에 개봉했고, 마이클 패스벤더라는 이름은 정점을 향해 슬슬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겨울 햇살이 가득한 뉴욕의 아침, 패스벤더가 인터뷰를 위해 약속 장소에 나타나던 순간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왜 그렇게 난리인지 사실 구체적인 감이 오진 않았다. 그는 가벼운 인사를 건넨 후 카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졸린 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그의 왼쪽으로 허드슨 강의 전경이, 오른쪽으로는 야자수 화분이 보였다. 실물로 본 그는 화면에서 보던 모습과는 꽤나 달랐다. 키가 작다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하는 게 아니라, 엄연히 중립적인 사실이다.< 제인에어 >에서 봤던 곱슬거리는 머리 대신, 붉은빛이 도는 금발을 짧게 다듬은 모습.<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에서 봤던 정돈된 피부와 부메랑 같은 아래턱선은 온데간데없고, 덥수룩한 구레나룻과 시원한 이마가 대번 눈에 띄었다. 그리고 <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에서와는 달리 투시력이 없었고,< 300 >에서처럼 우람한 근육도 없었다. 하긴, 철갑 같은 매그니토 복장을 갖춰 입었을 때도 외모 때문인지 그게 오히려 조잡해 보이기도 했다. 빛 바랜 티셔츠에 가죽 재킷, 아저씨들이나 신는 흰색 양말과 부츠. 그런데도 패스벤더는 ‘패션과 스타일의 영역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을 것처럼 보였다. 보는 순간 까무러치기보다는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보고 싶은 얼굴이랄까? 여전히 길거리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며 그는, “군중을 관찰하고 군중 속에 섞여 사라지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런 말에 공연히 믿음이 가는 것은 아마도 그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오직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 익숙한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 댄저러스 메소드 >에서 패스벤더는 칼 융 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이 영화의 감독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패스벤더가 캐릭터에 워낙 잘 녹아든 연기를 펼친 까닭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관객에게 패스벤더를 일부러 소개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베니스에서 남우주연상을 탔지만, 크로넨버그는 물론 패스벤더조차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점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생각지도 못하는 인물로의 다양한 변신은 배우가 갖추어야 할 가장 귀하고환상적인 능력이라고 크로넨버그는 덧붙였다. “마치 팔색조같이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 변신할 수 있는 배우야말로 훌륭한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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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누드 촬영을 어떻게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패스벤더는 전형적인 무산자 계급이 내놓을 법한 대답을 던졌다. “어색하고 창피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죠. 그런데 사실 저는 그리 쉽게 부끄러움 타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거든요.”

올해 서른다섯인 패스벤더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얼굴이다. 대다수의 미국 배우들과 달리 그는 외모에서나 행동에서나 제 나이대로 보이는 드문 배우다. 여기에는 그가 배우 활동을 일찍부터 시작했다는 점도 한몫한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패스벤더는 아일랜드에서 런던으로 이주해 연기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성공일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10년 동안, 다 잡은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수없이 실망하며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관객을 졸도시키는 매력적인 배우가 되었다. 그저 행운아일까? 그리고 그는 일련의 TV 드라마 작업을 발판으로 마침내 전업배우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크로넨버그는 “패스벤더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적인 태도를 가진 배우”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패스벤더의 접근법에는 육체노동이라는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역할을 준비할 때 그는 매일 7시간씩 대본 연습에 지독하게 매달려 무려 3백 번이나 대본을 통독할 정도다. 영화를 선택할 때 그가 가장 먼저 보는 요소는 문학적 가치다. “저는 독자의 입장에서, 관객의 입장에서, 그리고 배우의 입장에서 뭔가 확실한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를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패스벤더가 맡은 배역에는 배우 자신을 지우고 캐릭터 자체로 승부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았다.

패스벤더가 이런 성취를 이룬 작품 중 가장 최근작인 < 셰임 >은 섹스가 끝난 흐트러진 침대 위에 그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마치 기다란 베이컨 조각처럼 누워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작품은 2008년 작 < 헝거 >에서 함께 작업했던 영국 감독 스티브 맥퀸과의 두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 헝거 > 촬영 당시 아일랜드공화국 군인인 수감자 바비 샌즈 역을 맡아 무려 18킬로그램을 감량하는 투혼을 발휘했던 패스벤더는 < 셰임 >에서도 만만치 않은 육체적 희생을 치렀다. 사치와 자기혐오에 빠져 사는 강박적 섹스 중독자 브랜든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그의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과 모공이 하나하나 화면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브랜든은 ‘패트릭 베이트먼’(영화 < 아메리칸 사이코 >의 주인공 캐릭터)의 우울한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패스벤더는 마치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사이보그라도 된 것처럼, 브랜든이라는 캐릭터를 ‘인공적으로’ 쫀쫀하게 연기했다. 어떤 일에 대한 반응은 더디고, 시선은 불안정하며, 늘 뻣뻣하게 굳어 있는 태도를 보이는 인물. 하지만 < 셰임 >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누드 촬영을 어떻게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패스벤더는 전형적인 무산자 계급이 내놓을 법한 대답을 던졌다. “어색하고 창피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죠. 그런데 사실 저는 그리 쉽게 부끄러움 타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거든요.”

어쩌면 패스벤더의 쾌활한 익명성은 < 셰임 > 이후에도 여전히 보전될지 모른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 프로메테우스 >가 개봉하면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 에이리언 >의 프리퀄격인 < 프로메테우스 >는 7월이 되기 전에 패스벤더를 ‘나만 좋아하는 배우’에서 누구나 그에 대해 말하는 톱스타로 발돋움시킬 보증과도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은 주연배우 패스벤더가 삼척동자도 아는 스타로 자리매김할지 어떨지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패스벤더는 진짜배기니까요. 스타가 되는 건 연기와는 상관이 없을지도 몰라요.” 이제, 패스벤더의 독보적인 도전은 어디다 향하게 될까.

    에디터
    글/ 몰리 영(Molly Young)
    포토그래퍼
    Nathaniel Gold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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