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그날의 장혁 2

장혁은 인터뷰가 좋다고 했다. 어떤 정리 혹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에 대한 환기로서.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강채윤’은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홀로 불협으로서 존재했다. 요컨대 그는 흐름 속에 있지 않았다. “그건 정말 확연한 부분이거든요.” 이건 무슨 말일까.

의상 협찬/ 재킷은 꼼 데 가르송, 셔츠와 바지는 폴 스미스, 신발은 아디다스 제레미스콧 ,반지는 구찌, 왼쪽 페이지의 셔츠는 프라다.
의상 협찬/ 재킷은 꼼 데 가르송, 셔츠와 바지는 폴 스미스, 신발은 아디다스 제레미스콧 ,반지는 구찌, 왼쪽 페이지의 셔츠는 프라다.

<연기대상> 얘기는 그냥 우스개 삼아 했던 건데….
뭔가 설득하고 싶어서 이런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 장혁이라는 사람의 성향이나 색깔이 분명히 드러날 텐데, 내가 내 입으로 얘기하는 상황이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설득이 안 된다면 내가 더 가는 수밖에. 중요한 건 내가 일부러 어떤 의도와 색깔을 갖고 어떤 식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거다.

철없는 짓도 하나?
항상 주변에 아이가 있고, 밖에 나가면 배우로서의 포지션이 생긴다. 어느 날엔가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기적으로 그냥 좋아하는 게 뭘까, 이유 없이 막연하게 좋아하는 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냥 쉽게 묻고 답하는 얘긴데 쉽지 않았다.

그런 질문 가끔 흥미롭지 않나? 좋아하는 영화가 뭔지, 색깔이 뭔지, 꽃이 뭔지….
그게 정말 재미있는 게, 좋아하는 영화는 너무 많다. 좋아하는 배우도 너무너무 많고. 어렸을 땐 확실했다. 그런데 지금은, 꼭 이런 색깔은 아니에요, 꼭 그런 부분만은 아니에요, 하는 식으로 얘기하게 된다. 확연하게 이게 좋다는 느낌은 지금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유연해지는 것일 수도.
오히려 혼란스럽다고 느낀다. 어떤 연기를 할 때, 예전엔 정말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을 던지면 직구였다. 정확한 속도가 나오는 직구. 그런데 요즘은 이걸 뭘로 던져야 되지? 거기서부터 계속 이런저런 여지들이 끼어든다. 그러다, 그냥 다 내려놓고 던져볼까? 이러기도 하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글쎄, 중간? 중간을 좋아하게 된 거 같다. 아, 약간 정리 안 되는 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피규어 좋아하나?

좋아한다고는 못한다.
피규어를 좋아하게 되면 이것과 저것이 조화가 되는 게 있고 아닌 게 있고, 그런 걸 맞춰나가는 과정이 생긴다. 또 어떤 것은 따로 독단적으로 세워두고 싶은 것도 생긴다. 그렇게 각각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흐름이 보인다.

말하자면 그게 장혁의 선택인가?
그렇다. 캐릭터라는 것도 그런 시선에서 짚어봤으면 좋겠다. 확연하게 이렇게 가야지 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런 부분이 좋아져서 그리로 갈 수도 있고, 그러면서 새롭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거다. 중요한 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거다. 배우는 배우의 영향을 받는 거 같다. 그게 정말 키워드인 거 같다. 감독이나 작가와는 뭔가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이해하고 이해당하고 그런 관계라면, 배우와는 그냥 그런 생각 자체가 없어진다는 느낌? 뭔가가 정리되고, 또 다른 뭔가가 다가와서 정리되고 그런 게 아니라, 뭔가 불협화음이 생기는데, 그걸 빼내면 다른 걸 다 바꿔야 하고, 그걸 다 바꾸면 또 다른 뭔가가 끼어들고, 큐브를 맞추려 하는데 자꾸 안 되는 그런 상황이랑 비슷하다. 확연하지 않으니 말도 시원하지가 않다.

하필, 오늘 그런 날인가 보다.
맞다. 하필 내가 이런 날이다. 되게 재미있는 게, 난 진지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진지한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저, 정말 재미있어요.”

확연하다는 말을 오늘 참 많이 했는데, 정작 확연하게 말한 건, “저 정말 재미있어요”였다.
지금 당신의 말이, 이거냐 저거냐 정답을 묻는 게 아니라, 어떤 느낌을 내게 툭툭 던지니까, 그리고 그 느낌을 알 것 같아서 나 역시 이런저런 생각에 자꾸 빠지고 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맥주가 필요한가?
세 캔 정도면 기분 좋다. 담배 좀 피워도 되나?

물론. 세 캔으로 기분 좋고 나면?
좋은 얘기 많이 한다.

하하, 여기서 정리할까?
내가 진짜 시원하게 정리가 잘된 후에 이 인터뷰에 다시 답하고 싶다. 잘 말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는데 답하면서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지간하면 뭔가 드러내지는 않는 편인데, 오늘은 내가 이렇게도 드러나고, 저렇게도 드러나는 인터뷰를 한 것 같다. 시원하게 뭔가를 얘기하고, 맞아요! 그렇지 않아요! 하는 인터뷰를 너무 하고 싶은데, 오늘 나는 이렇다. 정리되지 않고, 이건 아닌데, 그건 이런 부분인 거 같은데, 그런 생각들. <추노> 끝나고 만났을 때보다 내가 좀 더 흐트러지지 않았나?

글쎄,이대길보다는 강채윤에게 말하고 싶은 게 더 있긴 했다. 아까 스튜디오로 들어오는데, 불쑥 ‘어이 강채윤’하고 부르고 싶었고.
오늘 내가 확연함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사실은 평소에 전혀 안 쓰는 말이다. 그런데 답하면서 계속 그 단어가 나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확연하게 느끼지 않는 부분에 대한 것이 많았기 때문일 거다.

생각보다 인생이 길까?
길었으면 좋겠다.

의상 협찬/ 재킷은 구찌, 셔츠는 꼼 데 가르송, 바지는 발렌시아가 at 무이.
의상 협찬/ 재킷은 구찌, 셔츠는 꼼 데 가르송, 바지는 발렌시아가 at 무이.

“열정은, 정말 열정에서는 누구한테도 안 질 자신있어요. 그런 만큼 어떤 원동력을 잃으면 금세 흥미를 잃어요. 작품 끝낸지 한 달도 안 됐지만, 뭔가 막 긁고 싶고, 너무 현장에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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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