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해불가

자동차, 이해불가

2016-08-03T16:41:56+00:00 |CAR & TECH|

자동차는 어렵다. 그런데 일부 업체의 보도 자료는 이해를 돕기는커녕 포기하게 만든다.

우선, 이런 문장. “디젤 엔진의 진동 및 소음 최소화를 위하여 Decoupling Technology, Mass balance Unit를 채택하여 중, 고속 영역에서의 Booming Noise를 대폭 감소시켰으며, Chain system layout 최적화를 통해 엔진 정숙성을 향상하였다. (중략) Variable line pressure control을 통한 동력 손실 최소화와 함께 저 점도 ATF 적용을 통한 마찰 손실 최소화로 연비를 향상시켰으며, 차량 운전영역 변속패턴 최적화, 토크 컨버터의 Damper spring 튜닝 및 Slip control 최적화 기술을 적용하여 차량 주행소음의 최소화를 도모하였다.”

기계공학 학술지에 실린 교수 논문이 아니다. 지난해 한 자동차 업체가 언론에 나눠준 신차 보도 자료의 일부다. 자료의 국적부터 의심스럽다. 용어를 알파벳 그대로 썼다. 주석도 따로 없다. 정확한 스펠링까진 알려줬으니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라는 식이다. 영어가 워낙 자글자글해 그 사이를 메운 한글이 유독 반갑다. 그런데 그나마도 한자어 천지다. 몇 줄 안 되는 발췌 부분에서만 ‘향상’이 두 번, ‘최적화’가 세 번, ‘최소화’는 네 번이나 나온다. ‘ATF’는 머리글자 모음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전지식 없인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어렵다.영문을 많이 쓴 부위만 악의적으로 발췌한 것도 아니다. 나머지 부분 역시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심지어 ‘베이지’처럼 한글로 써도 좋을 단어까지 굳이 알파벳을 부려놨다. 대체, 이유가 뭘까? 어떤 효과를 노리는 걸까?

이 보도 자료엔 한글화를 외면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읽을 수야 있다. 하지만 그 뜻은파악하기 어렵다. 보도 자료는 기사 작성에 참고하라고 만든 자료다. 알리고 싶은 내용을 기자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다. 그런데 보도 자료가 심화학습이 필요한 숙제 수준이라면, 본연의 목적을 한참 벗어난 셈이다.

가령 ‘디커플링 테크놀로지’의 뜻은 사전에서 찾을 수 있다. ‘연결을 푸는 기술’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용어가 이 기술의 본질은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정녕 이 기술을 자랑하고 싶었다면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명해 주는 게 맞다. 이런 의무를 소홀히 하는 건 언론, 나아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게다가 이 같은 보도 자료는 한심한 연쇄반응의 씨앗이 된다.

행사 직후 기사를 송고해야 하는 속보성 매체 기자를 예로 들자. 자료를 펼쳐드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모르는걸 물어볼 시간도, 사람도 마땅치 않다. 결국 자료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빼고 기사를 쓴다. 그러면 이렇게 짜깁기한 기사가 나온다.

“디젤 엔진의 소음과 진동, 마찰을 줄여 정숙성을 높였고, 변속기에 신기술을 적용해 연비를 개선했다.” 나름 머리 쥐어짜며 보도 자료를 만든 업체 홍보담당자의 수고가 그야말로 물거품으로 승화하는 순간이다. 고막 파르르 떨게 만드는 ‘부밍음’을 조용하게 지운 엔지니어의 노고는 그들만의 무용담으로 남게 된다. 생색도 못 냈을 뿐 아니라 실속도 못 챙긴 셈이다. 해당 업체는 진정 모르는 걸까. 어려운 용어 남발했다는 이유로 첨단 기술이려니 믿는 언론도, 소비자도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얼마 전, 기자 K의 전화를 받았다. 신차 기사를 쓰는데, ‘자기유체 서스펜션’이 무슨 뜻인지 감조차 오질 않는다고 했다. 자기유체는 승차감을 조절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자기장에 반응하는 기름을 뜻한다. 전류를 흘려 자기장을 만들면 오일 속 금속 입자의 배열이 달라진다. 그러면 오일이 뻑뻑하게 또는 묽게 바뀐다. 그 결과 승차감을 딱딱하게 혹은 부드럽게 조절할 수 있다. 이 차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보면 ‘자기유체 서스펜션’이 간혹 언급된다. 하지만 그 얼개나 원리를 제대로 설명한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렵다. 확인해보니 업체가 뿌린 보도 자료엔 ‘자기유체 서스펜션’ 이야기가 아예 빠져 있다. 후배도 처음엔 이 기술의 존재조차 몰랐다. 더 자세한 자료를 요청했다가 홍보대행사의 제안에 따라 홈페이지를 보고 궁금해진 경우다.

그런데 K는 왜 홍보대행사에 되묻지 않았을까? 용어풀이 이상의 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만족할 만한 설명이 되돌아올 때도 있다. 최소한 하루 가 걸린다. ‘기자→홍보담당→기술담당→홍보담당→기자’라는, 머나먼 여정을 거치는 까닭이다. 뉴스 하나 쓰는 데 이틀 걸리는 기자를 과연 어떤 데스크가 인정해줄까?

K는 자동차 관련 기사만 쓰려면 겁부터 낸다. 운전도 곧 잘 하는 기자지만, 보도 자료 앞에서는 어깨가 움츠러든다. 왜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지만, 궁금해도 물어볼 데 마땅치 않은 현실은 더욱 답답하다. 같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이유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보도 자료는 담당자에게서 비롯된다.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자료를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차 보도 자료 담당자가 자동차 공학에 해박할 필요까진 없다. 혼자서 다 꿸 수 있을 만큼 자동차가 만만한 기계도 아니다. 자동차 기술은 또한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 많이 안다고 회사에서 당장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스스로 무슨 내용을 쓰는지는 알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면 수긍이 갈 거다. 설명은 내가 아는 만큼 쉽고 간단해진다. 에두르지 않고 핵심을 찌를 수 있다. 중요도에 따라 정보를 재구성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적절한 비유도 동원할 수 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명강의가 좋은 예다. 해당 분야 전문가만의 특권이다.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이 길고 복잡해진다. 지름길이 빤히 보이는데 굳이 먼 길 돌아가는 격이다. 대개는 기술 부서에서 전달해온 내용에 토씨를 붙여 자료의 형태를 만드는데 급급하다. 수입차의 경우 대부분 본사 자료를 번역해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닌 왜곡이 뒤따르기도 한다. 수동태를 우격다짐으로 직역한 건 애교다. 공짜 번역기로 돌린 수준의 낯부끄러운 문장이 난무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스윙암의 혁신적인 엘라스토키네마틱 서스펜션은 또한 자동차 후부에 직선으로 수직 스프링 작동을 통해 종방향력을 상쇄하는 역할을 한다. 그에 따라 스윙암 러버 마운트에 방사상 그리고 축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은….” 업체가 정갈하게 제본까지 해서 나눠준 자료에 나온 내용이다. 이 내용을 기사에서 본 적, 아마 없을 거다. 이걸 그대로 기사에 썼다면 그야말로 해고감이다. 본사 자료를 그대로 옮겼다지만 문제가 심각하다. 한글로 바꿨지만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번역이 아니다. 길어지더라도 다른 표현을 쓰거나, 별도의 설명이라도 달았어야 했다.

그렇다고 외국 자동차 업체의 보도 자료가 더 친절한 건 아니다. 오히려 국산차 업체보다 한층 전문적이다. 상세제원만 A4 용지를 빼곡하게 채워 두 장 가까이 된다. 대강의 자료를 제공한 뒤 추가 요청에 대응하는 국산차 업체와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자동차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춘 전문 기자가 본다는 가정하에 보도 자료를 만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막막하진 않다. 이해를 도울 기술홍보팀이 따로 있는 까닭이다. 포르쉐 독일 본사가 대표적이다. 기술홍보팀은 세부적 기술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다. 엔지니어나 자동차 전문 매체의 베테랑 기자 출신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신차 발표회와 시승회 때 기자 곁을 지킨다. 말로 안 되면 그림을 그려서라도 이해를 돕는다.

국내에서도 종종 쉽고 친절한 보도 자료를 만난다. 질문이나 요청에 대한 대응이 빨라서 성에 차질 않는 자료에 대한 아쉬움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동차 업계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보도 자료가 넘쳐난다. 국산차건 수입차건 마찬가지다. 워낙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관행이라 새삼 문제 삼는 언론도 드물다.

쓸데없이 어려운 자료의 배경엔 관성에 젖어 본분을 잊은 담당자가 있다. 자료를 이해할 수 없는 기자는 되물을 수밖에 없다. 담당자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겸연쩍어하지 않는다. 다른 부서 소관이라고, 중간에서 전달만 하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의사소통은 더디고 개운치 않다.

급기야 스스로 기술홍보 담당자가 되어 자료를 찾기도 한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대충 넘어간다. 그 결과 보도 자료 못지않은 엉터리 기사가 태어난다. 책임은 결국 독자, 즉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악순환은 되풀이된다. 딱히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을 해도 기술담당과 홍보담당, 기자 모두 급여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