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붙었네

불이 붙었네

2015-09-28T16:52:24+00:00 |ENTERTAINMENT|

박완규는 불이 붙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의상 협찬/ 재킷은 앤 드뮐미스터, 셔츠 트루젠.

의상 협찬/ 재킷은 앤 드뮐미스터, 셔츠 트루젠.

이틀 전, 당신의 콘서트에 갔다. 세 시간이었다. 너무 길었나?
세 시간이니까. 공연을 기대해주신 분들이 많았으니, 지겹더라도 줄이지 말자고 결정했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단독 콘서트이기도 하고.

그래도 목소리가 쉰 것 같진 않은데?
오히려 나아졌다. ‘하망연’ 부를 때보다 훨씬 목이 좋아질 것 같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때 제일 행복한 게, 심하게 연습을 해서 목이 제대로 한번 가면, 목이 풀리면서 안 나오던 음, 안 끌리던 음, 처리가 안 되던 그런 스킬이 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제일 짜릿한데, 지금 그런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하망연’으로 시작해서 ‘천년의 사랑’으로 끝났다. 다시는 부르지 않겠다더니.
‘하망연’은 꼭 처음에 불러야 하는 노래다. 길기도 길고, 듀엣 곡이기 때문에 중간에 넣기 애매하다. ‘천년의 사랑’은 다시는 부르지 않겠다고 했는데, 부르지 않으면 배신 같다고 생각했다. 안 좋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지켜주던 소수의 팬들이 나를 기다리게 한 원동력이 ‘천년의 사랑’ 아닌가? 지금은 <나는 가수다>를 하면서 팬 층이 확 늘었지만.

넓어진 인기가 좋나?
태원 형님이 그랬다. “이제 불이 붙었네, 좋지? 욕심내지 마라. 휘발유 갖다 붙지 말고.” 형님 말처럼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요즘에 단맛을 많이 봤다. 두 아이의 아빠이고, 경제 활동을 하는 사회인지만 예술에 가까운 음악을 하고 싶은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맛을 어디까지 절제해야 되는지 고민하고 있다. ‘양약고구’ 라는 말도 있지 않나? 쓴맛도 몸에 좋을 수 있으면 행복한 거다. 단맛은 지금이 딱 적당하다.

그동안 단맛이 꽤 부족하지 않았나? 역시 단맛은 금방 질릴까?
최근 TV 패널 요청이 많이 들어왔지만 안 했다. 노래도 안 하고 이야기만 하면, 달달할 거다. 하지만 더 이상의 단맛은 안 된다. 대신 라디오에 나간다. <나는 가수다>에선 달랑 노래 한 곡 부르는데 라디오에선 라이브를 두 곡, 세 곡은 할 수 있다. TV에 계속 비치면 인지도 올라가고, “어, 박완규, 생각보다 재미있네, 막 싸가지 없고 거만한 애는 아니네?” 그러겠지.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에서는 선생님치곤 너무 고분고분했다.
편집이 되서 그렇지 어른신들께 엄하게 한 적도 많다. 하지만 예능이라기보단 다큐멘터리에 가까웠으니 튀기보단 그분들의 인생을 배우고 싶었다. 오히려 제작진과 부딪친 적이 있다. 참가한 분들이 대부분 교회, 성당의 성가대 분들이고 어떤 분은 목회를 하셨다. 그런데 아이돌 메들리로 ‘루시퍼’를 선곡한 거다. 루시퍼가 악마 아닌가. 아무리 유행가지만, 목사님이 루시퍼라는 노래를 어떻게 부르나? 하지만 제작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왜 여기까지 신경을 쓰느냐’는 거였다. 방송하는 사람에겐 3개월짜리 미션일 수도 있지만, 그분 들한텐 평생 남는다. 방송 끝난 후 그분들이 본연의 자리에 돌아가셨을 때 책임질 수 있냐는 거다. 청춘합창단의 주인은 어르신 아닌가? 어르신들 앞이고 스승과 함께하는 자리라 참았다. 그 일로 제작진과는 조금 뻑뻑해졌다.

<나는 가수다>에선 참지 않은 건가?
무대에 오르는 건 내가 맨날 하던 거다. 떤다는 게 오히려 웃기지 않나? 만약 떤다면 이전 십몇 년 동안의 무대에선 집중을 안 했다는 것이다. 떠는 것이 오히려 관객 모독이다. 물론 어떤 무대든 떨린다. 그건 시작하기 전 2, 3초의 긴장이고, 무대 올라갔을 땐 긴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감 없이 점수 좀 주십시오, 해야 할까? 노래를 잘하면 점수를 주겠지.

거기선 노래를 잘 부른 것과 별개로 호응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자존심 때문에 안 하는 건가?
아니, 그건 감정을 강요하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가수가 하위를 했다고 그 다음 주에 뭔가를 해보겠다며 관객을 일으켜 세운다고 하자. 그중에는 일어나기 싫은 관객도 있을 거다. “나 지금 퇴근하고 왔어, 그냥 노래 들으면서 아들 등록금 걱정이나 잊고 싶어”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나는 가수다>의 관객들은 대부분 일어나는 걸 별로 안 좋아 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해’ 때는 무릎을 꿇었다. 임재범의 ‘여러분’이 겹쳐 보였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재범 형님의 원곡처럼 간절한 것이 아니라, 진짜 건방지게 불렀다. 아아 몰라, 이러면서. 전 이렇게 건방진 가수입니다, 라는 걸 극으로 보인 무대였다. 하지만 대중 가수한테 대중이 신적인 존재라면, 용서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있어야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비굴하게 울었나? 그건 아니다. 그냥 나를 보여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