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독립 잡지가 살아남는 법

2012.02.27GQ

독립 잡지는 더욱더 독립적일 필요가 있다. 이름만으로 이해받는 시대는 지났다.

달에 수십 권에 이르는 독립 잡지가 나온다. “줄잡아 30권 정도 됩니다.” 소규모 출판물을 취급하는 서점 유어마인드의 대표 이로가 말했다. 독립 잡지라는 용어는 문제적이다. ‘독립’이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걸까? 정부의 기금을 받아 운영하거나, 공연이나 텀블벅 등의 소셜 펀드 기금을 받아내는 경우, 그것을 독립 잡지라 할 수 있나? 그렇다면, 자기 돈으로 만드는 잡지만 독립 잡지인가? 기준이 애매하다. 중요한 건 내용의 독립이다. “기금까지 받았으면 정말 막가야 해요. 그걸 하라고 준 기금이잖아요. 남과 완전히 다르게 해야 되는데, 기금 받고도 애매하게 나오는 게 많다는 거죠.”

2005년부터 잡지를 만들기 시작한 뮤지션 류한길은 1세대 독립 잡지 제작자다. 독립 잡지는 예전에도 있었다. 지금의 유행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독립 잡지란 말을 잘 쓰지 않지만, 분명 내용은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판업계엔 유행이 있어요. 2007년 즈음, 당시 젊은 디자이너들이 유럽에서 소규모 출판물이 유행이란 걸 알아채고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힙’한 관점에서 시작된 거죠. 우린 우리대로 해오던 상황이었는데, 좀 실망했어요. 함량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 있지만, 소규모 출판물의 꼴이라면 정말 어디서도이야기되지 않는 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풀어내야 해요. 그런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잘 만든 것들이 나왔어요. 기성 잡지와 다른 걸 못 읽어냈죠. 얘기도 보편적이고.”

2011년은‘ 힙스터’란 개념의 유입이 절정에 달했던 해다. 독립 잡지도 함께 늘었다. 과거처럼 그저 ‘힙’한 걸 만들기 위해 시작했는지는 제작자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2007년경과 지금의 태도엔 비슷한 지점이 있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태도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걸 남들도 한다면, 그것을 독립적이라 부르긴 어렵다. 독립이란 말을 거부하며 ‘소규모’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은, 굳이 독립적인 걸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닐까? 주류 매체는 어떤 현상을 규정하는 것을 즐긴다. 현상의 세부를 파고들기보다, 현상을 한 데 모아 큰 덩어리로 보여주려 한다. 이런 방식이 더 이슈가 되고, 독자를 설득하는 데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독립 잡지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주류가 규정지은 현상을 쪼개 가지치기를 하거나, 주류에서 다루지 않는 소재에 대한 접근은 독립 잡지의 몫으로 알맞다. 류한길의 말처럼 눈치 안 보고 ‘막가는’ 과정에서 독자의 동조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그 목표라 할 수 있다. 독립 잡지가 이슈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독립 잡지가 이슈를 만드는 데 성공하는 건 아니다. 너무 개인적이거나, 너무 뻔하거나. “자아에 너무 심취하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책에 대한 피드백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몰아붙이는 경우죠.” 이로의 우려다. 포트폴리오 수준에 그치는, 외국의 독립 잡지를 흉내 낸 잘 만들려다 실패한 결과물은 더욱 많다. 소규모 출판물들을 취급하는 서점에서, 비슷비슷한 독립 잡지가 한 가판대 위에 놓여 있는 걸 보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독립 잡지가 이슈를 만들기 위해 내용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잡지를 다 읽었을 때 큰 입장 하나가 보여야 해요. 주류에선 선뜻 못하는 일이죠. 예를 들어 전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기존 음악계에서 음악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걸 하니까 어느 순간 주류 미디어에 의해 사운드 아티스트로 정의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거꾸로 제가 그것을 공부하고 대응하게 된 거예요.” 타협 없이 독립 잡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확실한 노선이 필요하다. 하나의 목소리를 단단하게 냄으로써 존재감을 과시하는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 류한길은 주류의 평가를 거부하기보다,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노선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가 만드는 잡지 <매뉴얼>은 앞으로 음향에 대한 내용만 다룰 예정이다. 노선이 확실하다.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이다. 스스로를 독립 잡지라 칭하는 집단끼리도 서로 싸우며 자기 입장을 찾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쌍방향의 심한 비판이에요. 주류 대 비주류가 아니라 독립 잡지끼리도 서로서로.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지형도엔 다 함께 힘을 모아야 산다, 같은 생각이 넓게 퍼져 있어요. 그게 아니라 각자 살기 위해 박 터지게 싸워야 하거든요. 서로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각자 살아나감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거죠.” 류한길은 독립 잡지들이 서로의 색깔을 공고히 하며 독립적으로 갈라서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독립 잡지 신의 판이 작고, 엇비슷한 현실 의식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제작자와 유통인, 독자는 친할 수밖에 없다. 비판이 어렵다. 상호간의 차별화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내용의 독립은 입장이 확실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매뉴얼>은 최근 단편소설을 타자기로 치면서 생긴 음향적 결과를 함께 엮고, 이를 책으로 출판했다. 음향적 결과를 음반으로 함께 엮기도 한다. “소리에 관한 것만 출판한다는 사실을 찾는 데 6년 걸렸어요. 오래 버티고, 책에 대해 진지해지고, 평가를 받고 상처받지 말아야 해요. 위력은 단시간에 나오지 않습니다. 어쨌든 꾸준히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죠.” 독립 잡지를 독립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시간과 끈기가 아닐까? ‘독립’이나 ‘소규모’란 말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엔, 기시감이 크다.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김종현
    아트 디자이너
    아트 에디터/ 문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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