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의 구세주

어느 날, 갈색 구두가 나타났다. 온갖 패션 미디어와 블로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을 자처하며 구세주처럼 갈색 구두를 받들었다. 지금 구두를 산다면 반드시 갈색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거의 선교에 가까웠다. 멋내기를 갈망하는 남자들에게 갈색 구두는 절대적이었다. “처음 구두 가게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갈색 구두야말로 멋진 구두라고 생각했어요. 선지자를 자처하는 몇몇 블로거는 연신 갈색 구두 예찬론을 펼쳤어요. 모두가 갈색이 구두의 정도인 양 전파했죠.” 유니페어 대표 강재영의 말이다. 유니페어가 처음 소개한 알든 구두도 열에 아홉은 갈색 계열이었다.

아한 영국 구두 에드워드 그린은 오직 짙은 갈색만 팔렸다. 최상급 코도반 가죽을 쓰고 미려한 세부를 가졌어도, 검정색이라면 외면당했다. 분위기는 낮은 가격대의 브랜드로 번졌다. 2년 전 금강제화 헤리티지의 판매량 중 약 65퍼센트는 검정색이었다. 갈색 구두의 약진은, 단 2년 만에 판매량 65퍼센트를 갈색으로 갈아치웠다. 갈색 구두는 멋의 표상이 됐다. 멋 좀 낸다는 남자들은 모두 갈색 구두를 골랐다. 출근용 검정색 구두를 사는 몇몇의 표정은, 엄마 손에 끌려와 브랜드도 없는 동네 마트 반값 교복을 입어보는 중학교 입학생 같았다. 검정색 구두는 아저씨의 유물로 전락했다.

물론 갈색 구두는 구두에 대한 남자의 생각을 바꿨다. 지구의 모든 구두가 검정색인 걸까 의심하게 만들던 도시에 다른 색깔을 더한 것도 환영할 일이었다. 문제는, 갈색이 정답인 듯 변질됐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유행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언제나 이분법적이다. 피코트가 대세일 때는 더플코트를 촌스럽다고 말한다. 클래식이 득세할 때는 힙합이 너저분하다고 생각한다. “갈색은 스타가 됐어요. 검정색은 보수와 고루함의 상징이 되어버렸고요.” 로크 코리아 대표 임준영의 말이다. 갈색 구두를 띄우기 위한 허울 좋은 말이 넘쳐났다. ‘남자여, 브라운을 신어라.’ ‘신발장에 단 하나의 구두만 있다면, 갈색 윙팁이어야 한다.’ 그럴싸하지만 꼭 맞는 말은 아니다. 가진 옷이 짙은 회색 수트 한 벌뿐인 남자는 오히려 검정색을 사는 게 더 현명하다. 게다가 옥스퍼드와 더비 같은 구두의 미세한 요소까지 보게 되면, 색깔이 기준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갈색 구두는 구세주도 진리도 아니다. 조촐히 말해서, 황무지였던 남자 구두에 다른 사상을 세운 공이 있다는 정도.

진짜 멋은 경계를 허물고,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매 순간 절묘한 카드를 꺼낼 때 나온다. 갈색이 휘몰아친 덕분에 고를 카드가 많아졌으니, 검정색은 다시 허를 찌르는 카드로 떠올랐다. 요즘 눈치 빠른 남자들은 당장 질 좋은 검정색 구두를 산다. 검정색 구두는 온갖 핍박을 견디다 서서히 부활했다. 갈색은 멋지고 검정색은 후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검정색 구두야말로 남다른 구세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