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대본, 어디까지 가봤니?

연기인가 진짜인가, 대본인가 애드리브인가, 작가가 쓴 대사인가, 출연자가 한 말인가. 예능 대본엔 대체 무엇이 쓰여있기에.



우선, 작가가 있고 대본이 있다. 작가들은 출연자 캐릭터를 분석하고 시청자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온갖 ‘갤질’을 마다하지 않으며 깨알 같은 대본을 만든다. 그런 후 출연자에게 미리 대본을 숙지시키고 녹화날엔 스케치북에 주요 내용을 써가며 그들의 입을 부추긴다. 영리한 출연자는 여기에 살을 붙여 프로그램을 자기 쪽으로 끌어가는데, 작가들은 이때를 포착해 풍구질을 하기도 하고, 만들어 놓은 ‘구성’으로 진입할 수 있게 깔끔히 끊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 뭘 어디까지 쓰는 걸까? 작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도대체 뭘 쓴다는 거냐? 상황만 주면 출연자가 알아서 거 아니냐, 대본이라는 걸 정말 만들긴 하냐, 이런 질문 너무 많이 받아요.” 심지어 작가들의 가족이나 동료조차 예능 대본에 대해 비슷한 MEDIA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대사까지 저희가 다 쓰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말을 하게 하고, 자막은 뭐라고 올려야겠다고 미리 생각하지 않고는 작업을 할 수가 없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만으로 10여 년 째인 한 작가가 한탄한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이길 원하는 대사를 쓰는 건 아니다. 대본을 받은 출연자들이 자기 스타일과 언어에 맞춰 그 대사롤 다시 ‘새롭게’ 말하는 것이 예능의 정석이다. 그리고 돌발 상황이 계속 생기는 버라이어티의 경우에는 출연자에게 캐릭터와 전체 구성을 얘기해두고 – 상황에 따라서는 모르게도 하고- 잘 짜인 구성안인 ‘대본’에 충실할 수 있도록 미리 ‘짜고’ 들어가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연자들이 대본의 존재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죠.”

출연자들은 대본대로만 따라가는 ‘연기자’로만 보이거나, 어떻게 보이도록 억지로 설정된 느낌을 거절한다. 그저 해당 프로그램에 유들유들하면서도 맞춘 듯 딱 들어맞는 캐릭터로만 보이고 싶어한다. “그러니 대본이 있고, 그것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일종의 영업비밀로 생각하는 거죠. ‘리얼’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프로그램 출연자라면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어요.” 어디까지가 대본이냐는 질문은 이렇듯 작가와 출연자 모두에게 뚜렷할 수 없는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웃는 포인트를 짚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면, 웃다가 뒤로 넘어가게 하거나 웃다가 울게 하는 것은 출연자의 몫이다. 개그인지 아닌지 방송용인지 아닌지 경계가 모호한 말로 웃기는 것이 대세인 상황에서, 어떤 작가도 애드리브와 그 애드리브를 받아칠 애드리브와 그 애드리브에 얹어 더 웃길 수 있는 애드리브까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지는 못한다. 웃기기로 한 어떤 공감의 테두리 안에서 나눠가진 전략과 전술, 이것이 지금의 예능 대본이다.

취재하는 내내, 작가와 출연자 모두 대본의 유무며 범위 따위가 도대체 왜 궁금하냐고 물었다. 때에 따라서, 너무 웃겨서 궁금했다고도 했고, 정말 재미가 없어서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어졌다고도 했다. 사실, 보는 입장에선 웃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완벽한 애드립 방송이든, 바늘 하나 꽂을 데 없는 대본에 따른 것이든 웃으면 그만이지만, 예능이 ‘리얼’이 아닌 ‘리얼 표방’의 마수에서 벗어날 때, 이런 불필요한 관심과 질문도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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