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여자 옷

E.L.

여자들이 가장 심했던 숙취를 영웅담으로 꺼낼 때, 소주나 막걸리, 별의별 폭탄주가 후일담을 드나들어도 하이힐에 대해선 그들 자신도 간과한다. 하물며, 힐을 신은 채 술을 마신 여자의 다음 날 아침이든, 종일 밤비처럼 힐을 신고 다니다 술자리가 없어 집으로 퇴근한 여자의 발이든, 구두를 벗으면 힐 모양 그대로 굳은 발을 만져줘야 한다는 걸 남자가 알 리 없다.

남자에게 패션은 대문자 F(ashion)로 시작하는 여자만의 방언이 아니다. 하지만 남자가, 모호한 확신, 순전히 공상인 여자들의 패션 이미지에 응답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한 일 같다. 옷에 대한 여자의 욕구와 조롱, 불신과 인내를 오해한 건 똑똑한 칸트도 마찬가지였다. “패션은 허영으로 가는 것,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가는 것.” 박식한 니체도 덩달아 이죽거렸다. “입는 것 갖고 잘난 척하기는.”

두 훌륭한 분의 말씀에 감히 동의하진 않겠다. 남자들이, 여자가 옷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그렇게 무관심하다는 게 부정적으로 신선할 뿐. 남자에겐 스포츠, 여자에겐 옷이란 공식도 어이없을 따름이다. 특정 팀의 열혈 팬 남자들은 김이 확 새는 성적에 상관없이 그 팀을 지지하지만, (나쁜) 여자들은 옷이건 사랑이건 식으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들 중에서도 입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하는 족속이 있으니, 여자라고 모두 하나가 아니다. 플레어스커트가 하체를 더 통통해 보이게 한다는 진실, 지난해를 휩쓴, 예쁘지만 거북한 색깔이 준 결론은, 남자들이 섹시하다고 느끼건 말건, 트렌드는 전부가 아닌 소수에게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어그부츠가 국토를 중공군처럼 덮을 때도 그 몇몇만 ‘결정된’ 룩에 굴복할 뿐이었다. 물론 이 논리에 수긍한다고 해서, 여자와 옷의 상관관계를 더 잘 알 순 없을 것이다.

…여자들은 왜 키가 더 크고 싶은 걸까? 왜 여자가 압정 같은 힐을 신는 건 괜찮고 키 작은 남자가 굽 있는 구두를 신으면 비웃을까? 루이 14세가 힐을 신을 때도 그렇게 웃었을까…?

패션 코드를 안다고 여자의 암호를 다 풀 순 없겠지만, 그녀의 옷장에 관해 부분적인 정보만 얻더라도 윤곽은 약간 뚜렷해진다.(개인의 분류 시스템이 심화돼 있을수록 그 정체성에 다가가기 쉽다.) 동굴 같은 옷장, 옷과 가방을 위한 침실로서의 옷장, 음영에 따른 정렬이 만화경 같은 옷장, 물감의 색상표를 걸어가는 것 같은 옷장…. 여자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로서 옷을 분류하고 ‘편집’할 때, 그녀의 옷장은 트렌드와 상관없는 저장소이자 보관소가 된다. 그런데 사실, 여자가 열망하는 진짜 패션 상패는 옷이 아니다. 몸에 소심하게 돌출된 부분, 가방, 구두 그리고 강조점으로서의 보석이다. 즉, 어떤 가방은 옷태 나게 해주는 참 좋은 소품이며 미치도록 비싼 투자이다. 3백만원짜리 가방은 3백만원짜리 드레스보다 더 쳐준다. 드레스는 몇 번만 입어도 주변에서 “쟤는 왜 자꾸 같은 걸 입는 거니?” 떠들어대니까. 하지만, 멀버리 베이스워터, 펜디 바게트, 에르메스 버킨은 아무도 지겨워하지 않는다.핸드백은 다이어트도 필요 없으니 옷 치수에 상관없이 들 수 있다!

요즘 여자들에겐 셀린, 발렌시아가, 지방시, 발맹이 주인이다. 패션의 국제어로서 트렌드를 발설하는 것은 ‘멤버십’의 기초. 단, 회원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경계태세를 늦출 수 없다. 현재의 것은 3초 만에 그 당시의 것으로 변하니, 그것이야 말로 샤넬을 입은 여자가, 좀 있어 보이기는 하나 왜 이제 와서 고전적이고 오히려 평범무쌍해졌나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눈 깜박할 새에 진짜 멋진 친구와 패션 사기꾼을 가려낼 수 있게 된 지금도, 어쩌다 여성복 쇼를 볼 땐 목에 링을 백 개나 끼운 듯 목을 빳빳이 쳐든 이들 사이에서, 허리 굽은 노인처럼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다.(파리나 밀라노의 습기 속에서 남성복 컬렉션을 볼 때, 두꺼비 복부로는 도대체 난감한 쇼츠와 블레이저와 보타이와 페니 로퍼를 착용한 채, 제2의 유년기를 보내는 외국 패션 에디터 군대 속에선 좀 다르군. 남자 옷 역시 여전히 키 크고, 엉덩이 작고, 날카롭게 ‘크롭트’된 이십 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게 매번 섭섭하긴 해도.)

뮬에 새겨진 로고, 꽃들이 만발한 하얀색 메시 스커트, 저녁을 위한 검정 레이스 블라우스의 모델이 순진한 얼굴 밑에 여자의 독선을 감추고, 수영장에 들어가듯 무대 가운데로 미끄러지면, 저 생기 찰찰 넘치는 옷은 누굴 위한 건가를 생각한다.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저 조금 달라진 저 옷들이….

유행의 만장일치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는 건 개인의 일. 드레스건 수트건 허리띠건, 사물엔 제약이 많다. 유행 또한 미숙하든 인공적이든, 기한이 있는 존재감만 뿜어댈 뿐이다. 이번 시즌의 백을 가져야만 끝장나게 살 수 있다고 약속하는 광고가 천지에 휘날린들, 내륙이 바다로 확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젠 아무도 옷의 ‘현재’를 다루지 않으니, 남자나 여자나 의미 없이 사치스러운 공상 뒤에 숨기 바쁘다. 옷으로 자기를 표현하려다가 아무것도 못 찾고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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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