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의 여자

열 살 아래는 어떤지 물었다. 보채듯 한 번 더 물었다. 전미선이 쳐다본다. “내가 그렇게 섹시해요?”

의상협찬/ 시폰트렌치코트는 디아서 at Lamb, 블랙 레이스 뷔스터에는 벨 엔 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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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협찬/ 그레이 핀 스트라이프 블랙 셔츠는 lamb, 핑크 레이스 브라 톱은 CK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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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마음에 드나? 드라마든 영화든 사진이든 벗어야 하는 이유만 명확하다면 언제든 벗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맥락이다. 생뚱맞게 갑자기 베드신 하나 넣고 벗으라고 하면 하겠나? 무의미해서 싫다.

베드신이라면 아무래도 <살인의 추억>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이 좋다고 꼽아주는 영화지만, 나에겐 좀 충격이었다. 반응이 극과 극으로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으니까. 한쪽에선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결국 나이 먹고 벗는구나’ 했고, 반은 연기에 대해 극찬했다.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중간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베드신에 응했던 건, 그건 필요한 장면이었으니까. 맥락이 명확했다. 박두만(송강호)이라는 캐릭터에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마지막까지 내가 부인인지 애인인지 모르지 않나? 사실, 부인 역할은 따로 있었는데, 봉준호 감독이 촬영 전날 과거의 애인이었던 내가 결국 부인이 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며 결정을 내렸다.

당신의 무엇이 섹시한지 알고 있나? 어떤 사람에게나 섹시함은 있다. 온전히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돼서 그 섹시함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사진 촬영은 전미선을 보여주는 거니까 나를 통해 온전히 발산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사진이 예쁜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면서 촬영했다.

당신을 처음 본 건 <번지점프를 하다>부터였다. 불안해 보였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몸에 힘을 빼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굳어 있던 몸을 펴주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당시 몸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보다 2년 전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에선 아예 불편해 보이는 쪽이었다. 촌스러운 립스틱이 기억난다. 나도 그 립스틱 기억한다. 그때 화장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촬영장에서 한숨만 나왔다. 너무 거북했다. 내가 싫어하는 작품 중 하나가 <8월의 크리스마스>다. 그때 얼굴이 보기 싫어서.

20대부터 ‘아줌마’역을 했다. 자다 말고 느닷없이 분하진 않나? 아주 어렸을 때 CF나 드라마가 많이 들어왔었다. 그때 좀 할걸, 왜 그렇게 피했는지 후회가 된다. 그땐, 연기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만 하라면 좋겠는데, 부수적인 것들이 너무 힘들었다. 결혼해서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게 가장 아쉽다. 그런데 되돌릴 순 없으니까 할 수 없지. 만약 그때 꾸준히 해서 스타가 됐으면, 김혜수, 오연수처럼 되었을 텐데. 내 스스로가 잘 안 되던 시절이다. 하지만 내가 아줌마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한적일 거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감독이 용기가 있고, 나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멜로에도 써줄 수 있지 않을까? <로열패밀리>나 <해를 품은 달>에서 감독이 용기를 내줘서 나의 이미지를 깰 수 있었다. 배우에게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나이때 여배우를 보면 어떤가. 어린 친구들이 마음을 잘 열지 못한다. 사실, 선배들도 마찬가지겠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거니까. 서로 마음을 전부 열지 않고 연기를 했을 거다. 그러니 배웠을 테고. 특히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여배우는 예뻐야 한다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 젊은 여배우들이 연기력이 늘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다. 얼굴만 예쁘면 연기는 괜찮다 괜찮다 하니까. 안 그래도 모 여배우의 연기에서 10퍼센트의 진정성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 아, 이정도만 계속나와도 제대로 되겠구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봤다. 그랬더니 바로 감정이 닫히더라. 꽤나 상처가 깊은 것 같았다. 그렇게 바로 문을 닫아버리니, 뭐라 조언을 할 수가 없었다. 참 아쉽다. 그 10퍼센트만 계속 끄집어내도 연기의 앙상블과 시너지가 굉장할 텐데.

연기력 논란, 이런 것 때문에? 아니. 내가 연기를 정성껏 했는데, 받아주는 배우가 성의가 없으면, 딱 그만큼밖에 안 하게 된다. 적당한 만큼만 하고 그만하는 거다. 그러면 맥이 탁 풀린다. 그건 어떻게 보면 같은 배우로서의 신뢰다. 만약 어떤 상대와 연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탁 닫는 게 보이면, 못 다가간다. 그러면 나도 딱 그만큼까지만 할 때가 있다. 이런 게 습관이 되면 다시 열려고 해도 못 연다. 젊은 배우들이 이런 식으로 숙달돼 있다. 계속 퍼부어주려고 하는데, 조금 열렸다가 닫히니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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