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get

무게가 자동차에 미치는 진짜 영향

2012.04.10GQ

가벼우면 빠르고 무거우면 더디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이것은 자동차의 성능에 관한 아주 오래된 논쟁이다. 사실 일상적인 영역에서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논란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가벼운 차의 가속이 무거운 차의 경우보다 빠를거라 믿는 사람이 대다수고, 그 근거없는 믿음이 실제로 자동차를 사는 데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를 사는 마음에는 결국 실제와 이미지가 반반이라서.

포르쉐 911 터보가 독일 뉘르부르크링 트랙에서 열리는 24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1, 2, 3위를 휩쓸었다는 뉴스는 911 터보를 갖고 싶은 마음을 명확히 부추긴다. 또한 911 터보가 빠르고 단단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다른 모든 회사와의 경쟁을 통해 증명한다. 하지만 뉘르부르크링에서 달리는 양 한국 어디를 달릴 수 있을까? 영암 F1 트랙이나 태백 레이싱 파크에서 맘껏 달리는 주말은 가능하다. 하지만 차의 성능, 드라이버의 실력과 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레이싱과 취미 차원의 달리기 사이에는 수만 가지 세부적인 차이가 있다.

속도에 관한 경쟁은 이제 끝났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시속 25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는 굳이 표기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지금 기술로 시속 50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인들 못 만들까? 최고속도 경쟁을 대신한 건 트랙에서의 승부다. 트랙엔 오르막과 내리막, 직선과 곡선이 섞여 있다. 곡선의 정도, 곡선을 공략하는 속도와 각도까지 생각해볼까?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 독일에 있는 뉘르부르크링은 그중 최고난이도의 트랙이다. 고성능 자동차를 만드는 모든 회사들이 시제품 단계부터 그곳을 달리는 덴 이유가 있다.

뉘르부르크링의 한 바퀴는 대략 21킬로미터다. 국제경기 공식 트랙의 약 5배에 달한다. 코너의 숫자만 170개가 넘는다. 저속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는 헤어핀부터 시속 200킬로미터 이상 속도를 낼 수 있는 2킬로미터가 넘는 직선구간. 코너 저쪽이 보이지 않으면서 곧바로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다른 코너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곧 발매 예정인 자동차가 최고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면 그건 자체로 놀라운 마케팅 효과를 낸다.

2008년 4월엔 닛산 GT-R이 그 주인공이었다. 7분 29초 03은 놀라운 기록이었다. 포르쉐 911 터보, 911 GT2의 당시 공식 기록보다 빨랐다. GT-R은 닛산이 6년 만에 부활시킨 양산 스포츠카로, 자신들의 경쟁자는 포르쉐 911 터보라고 공표했었다. 그 선언에 집중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독일차 포르쉐는 일본이 만든 슈퍼카가 자신들을 경쟁자로 지목하든 말든 이미 최고였으니까. 하지만 모든 게 뉘르부르크링에서 뒤집혔다. GT-R이 포르쉐 911 터보의 공식 기록을 넘어서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도전, 속도, 마케팅에서도 닛산의 승리였다.

포르쉐의 수석 엔지니어 아우구스트 아프라이티너는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포르쉐 자체 기록 측정도 했다. 거기선 포르쉐가 이겼다. 그 시합에서 닛산 GT-R의 기록은 닛산이 측정한 공식기록과 차이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포르쉐는 닛산이 GT-R을 시험할 당시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양산차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접지력이 더 크고, 트랙에 맞도록 양산차와 다르게 세팅했다는 얘기였다. 닛산은 당시 영상과 사진을 공개하면서 반박했다. 고객에게 인도되는 상태 그대로의 자동차로 최고기록을 갱신했다는 자신감이었다.

제원은 포르쉐가 유리했다. 포르쉐 911터보는 3,800cc, 닛산 GT-R은 3,799cc였다. 911터보의 최고출력은 500마력, GT-R은 485마력이었다. 최대토크도 911 쪽이 6kg.m 높았다. 최고속도도 911이 시속 2킬로미터 빨랐다. 911의 제로백은 3초, GT-R의 제로백은 3.5초였다‘. 가벼운 차가 빠를 것이다’라는 관념을 뒤집는 다른 수치 또한 있었다. 911의 공차중량은 1,670킬로그램, GT-R의 공차중량은 1,735킬로그램이었다. 요약하면, 전반적인 성능 수치가 모두 뒤지고 심지어 60킬로그램 가까이 무거운 닛산이 더 빨랐다. 모든 물리 법칙을 거스른 결과로 보였다. 이건 마술일까?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동차 생활> 김태영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타이어와 노면의 접지력과 관련이 있어요. 심지어 당시 닛산 기술자들은 50킬로그램 정도의 각종 촬영 장비 때문에 더 무거운 상태에서 달렸다고 말했거든요.” 백 수십 개의 코너가 이어지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트랙에서, 접지력이 높은 자동차가 유리한 건 상식에 가깝다. 차체 무게가 타이어를 적절하게 눌러주면 노면과 접촉하는 면도 넓어진다. 접지력이 커진다는 뜻이고, 바퀴가 노면을 움켜쥐고 모든 코너를 더 민첩하게 돌 수 있다는 의미다. 그 차이로도, 무거운 차가 가벼운 차보다 느릴 거라는 편견은 깨진다. 참고로, F1 경주에 쓰는 자동차의 무게는 운전자를 포함해 640킬로그램 이상이어야 한다. 각 회사들은 그 범위 안에서 최대한 가벼운 차체를 만들기 위해 기술력을 총동원한다. 이들은 가벼워서 빠른 걸까?“ F1 레이싱 자동차가 실제로 달릴 때 하중은 1,800킬로그램 가까이 된다고 해요. 엄청난 속도로 달리면서 생기는 공기의 흐름이 차를 눌러주도록 디자인돼 있는 거죠.” 이를 총체적으로 다운포스라고 한다. 자동차가 달릴 때 공기와 닿는 모든 부분에서 생기는 소용돌이가 자동차를 노면으로 끌어내리거나 짓누르는 힘을 총칭하는 단어다. 그 힘이 자동차의 중량을 높이고, 타이어를 더 짓누르며, 결과적으로 노면과 타이어 사이에 닿는 면적을 넓히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김태영 기자가 이어 말했다. “페라리가 시속 250킬로미터로 달리면 약 270킬로그램 정도의 다운포스가 생긴다고 해요. 이건 차 전체가 영향을 받는 공기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계산한 수치예요. 페라리 트렁크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는 공기가 차를 눌러주는 힘만을 계산한 게 아니라.” 트렁크에 날개를 다는 튜닝은 흔하디 흔하다. 모두 고속 안정성을 위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작은 날개로 증가하는 다운포스가, 실제로 속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것이 생산하는 다운포스도 미미해서다.

고속에서 공기의 흐름은 차 위에 잡혀 있는 미세한 주름 하나, 면이 흐르는 각도에 의해 좌우된다. 보닛에 나 있는 구멍 하나, 타이어에 끼운 휠의 흐름 하나가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트렁크에 단 날개 위에 한번 올라서보세요. 그 장비가 차의 다운포스를 책임진다면, 70킬로그램 정도 성인 남자를 견뎌야 하거든요. 백이면 백 휘어집니다. 어떤 경우는 손가락으로만 눌러도 부러져요.” 아우디 A6의 차체는 철보다 단단한 알루미늄으로 짰다. 업계는 강철보다 견고하면서 가벼운 소재를 계속해서 적용하고 있다. 이 논쟁의 핵심은, 가벼운 차를 만들려는 이런 노력이 더 빠른 차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다만 더 적은 연료로 더 멀리 가기 위한 시도. 엔진 배기량을 줄이면서 터보를 달고, 더 가벼운 소재를 쓰는 목표는 오로지 효율이라는 뜻이다.

자동차의 무게가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라는 데 이견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차체에는 눈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쉽게 계측할 수 없는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운전자의 기술, 담력, 경주 당일의 심리상태, 날씨까지 고려해야 한다. 배기량, 출력, 토크 같은 제원과 더불어 공기의 흐름이 차체 구석구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도 간과하면 안 된다. 따라서 “가벼운 차가 무조건 빠르다”는 말은 틀렸다. 자동차는 하나의 편견, 혹은 공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목받아 마땅한 세 대의 신차, 그리고 엄격한 정론직필.

메르세데스 벤츠 SLS AMG 로드스터
순간의 괘감과 지속적인 흥분. 이 둘 모두를 동시에 누리면 좋겠지만, 세상에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존재는 드물다. 벤츠 SLS AMG 쿠페는 특색 있는 걸윙 도어를 가진 일명 ‘날개차’였다. 위로 쑥 열리는 도어는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힘들여 운전석에 앉아도 문을 닫으려면 몸을 살짝 들고 팔을 뻗어 저 높이 매달려 있는 핸들을 잡아당겨야 하는 신성한(?) 의식이 뒤따랐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둥지에 안착한 듯 안도했다. 희귀한 차를 탄다는 만족감은 여기까지. SLS AMG 로드스터는 다르다. 평범하게 문이 옆으로 열린다. 타는 것도 쿠페에 비해 쉽다. 쿠페가 올라타는 재미라면, 로드스터의 진정한 재미는 타고 난 후 찾아온다. 지붕을 열어야 한다. 6.3리터 571마력 자연흡기 V8이 뿜어내는 천둥 같은 배기음이 가차없이 들려오니 귀가 얼얼할 지경이다. 66.3kg.m의 토크로 밀어 붙이면 머리카락이 뽑혀 날아갈 정도로 강한 바람과 마주하게 된다. 사방이 막혀 있는 쿠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이 솟구친다. 쿠페와 로드스터의 동력성능은 거의 같다. 하지만 체감 성능은 로드스터가 훨씬 원초적이다. 뚜껑을 열고 있다면 흥분상태는 끊임없이 지속된다. 이런 순간의 쾌감에 남자의 본질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지속적인 흥분’을 더 동경하는 게 아닐까? 로드스터 안에선 그걸 느낄 수 있다. 쿠페보다 로드스터에 끌리는 이유다. 2억 8천4백만원.

인피니티 FX30d
인피니티 FX는 우주에서 온 게 아닐까? 디자인은 난해하다.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스타일로 한가닥하는 BMW X6보다 FX의 실루엣이더 파격적이다. 이젠 모델의 5.0리터 휘발유 엔진은 기름값에 대한 고민 자체를 소심한 태도로 치부해버렸다. 우락부락한 얼굴로 세상을 노려보며 아스팔트를 후벼 팔 듯 막강한 힘으로 도로에 기름을 뿌리고 다니는 차가 FX였다. 하지만 지구 대기권 안에서 공중에만 떠다닐 수는 없는 법. 현실과 동떨어져 공중에 머물던 FX가 디젤 엔진을 받아들이면서 지상 착륙을 시도했다. 5.0리터 엔진의 리터당 7.2킬로미터에 불과한 연비(3.5리터 엔진의 연비도 리터당 7.9킬로미터)로는 도저히 지구상에 적응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게 분명하다. V6 3.0리터 디젤의 연비는 리터당 10.2킬로미터다. 디젤치고는 그다지 좋은 연비는 아니지만, 인피니티 FX가 두 자리 수 연비를 기록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최고출력은 238마력, 최대토크는 56.1kg·m로 5.0리터 휘발유 엔진보다 강하다. 휘발유 엔진의 상쾌한 가속에 견줄 수는 없지만, 어마어마한 토크 덕분에 도로 위에서 가속 페달을 한껏 밟아 가속하는 본성이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 FX 디젤은 인피니티 최초 디젤이자 국내 일본차 중 유일한 디젤이다. 좀 평범해지고자 했지만 더 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7천6백40~9천30만원.

렉서스 GS350
렉서스 GS가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 아우디 A6와 동급인가? 이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밑바탕에는 렉서스가 독일 고급 브랜드와 견줄 만한 수준인가, 라는 원초적인 의문이 깔려 있다. 솔직히, 아직은 독일차가 한 수 위다. 하지만 그동안 GS는 독일 라이벌과 대등하거나 더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 그들과 동급이라는 렉서스의 자존심이 가격으로 표현된 결과다. 신형 GS350은 자존심을 내던졌다. 솔직하게 독일차 ‘팔로워’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동안 고집스럽게 집착한 렉서스 고유의 ‘럭셔리 세단’ 공식을 내던지고, 독일 라이벌이 만들어놓은‘ 럭셔리 스포츠 세단’의 표준 공식을 철저히 따랐다. 과격하기까지 한 스타일, 탄탄한 하체, 독일차를 모는 듯 예리하고 정교한 핸들링, 가속할 때 뿜어져 나오는 렉서스 답지 않은 역동적인 배기음 등. 그러면서 부드럽고 정숙한 렉서스 고유의 본성은 고스란히 유지하는 일말의 자존심은 남겼다. 가격은 350이 6천5백80만원,250은 그보다 더 싼 5천9백80만원이다. 배기량이나 내용으로 보면 독일 라이벌에 비해 훨씬 싼 가격이다. 솔직하게 자신을 인정하고 겸허해지니, 스스로 내세우지 않아도 라이벌과 대등한 경지에 올랐다. GS350 운전석에 앉으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글/ 임유신(<톱기어> 기자)

    에디터
    정우성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 이은호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