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동안의 박정자 1

박정자의 연기. 박정자의 무대. 박정자의 목소리. 박정자라는 이름. 71년 동안의 박정자. 그리고 오늘 지금 여기의 박정자.

의상 협찬/ 모든 의상은 배우 박정자의 것.
의상 협찬/ 모든 의상은 배우 박정자의 것.

어서 오세요.
오래간만이에요.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오늘은 하필 어떤 날이세요?
오늘은 결혼식이 많았어요. 강북과 강남을 오가는 날. 피곤해요. 요즘 계속 전시를 준비하느라.

배우 박정자의 50년을 기념하는 전시라지요?
뭐 기념할 것도, 늘어놓고 걸어놓고 보여줄 것도 사실 없는데, 준비라는 건 언제나 피곤해요. 그래서 요새 내 카피가 뭐냐 하면, 머리가 다 빠지겠다, 머리가 다 터지겠다. 하하하 근데, 이런 시간이 또 필요해요. 정리를 할 수 있으니까. 나한테 뭐가 소중한지 생각하게 하니까. 난 평소에도 참 잘 버려요. 굉장히 잘 없애는 사람인데, 그래도 뭔가는 자꾸 쌓이더라고요. 세월이 가면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그래서 이렇게 가볍게 좀 털어내고도 싶고, 사진 한 장이라도 다시 들여다 볼 기회가 되고. 그러느라 마음은 이렇게 가벼워지는 것 같은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해요. 누가 대신해줄 수도 없으니까. 다 내가 해야 하니까. 삶도 죽음도 내가 결정을 못하잖아. 내가 갑자기 비약을 했나? 하하하.

오늘 날씨가 축 가라앉았는데, 언젠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러 갔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추운 날인데 얇게 입고 가서 떨었다는 기억이 있어요.
2월이었어요. 추웠을 거예요.

꽃이 더딘 봄입니다.
아, 봄이 더디 왔어요. 그렇다고 내가 봄을 간절히 기다렸던 것은 아니에요. 그건 뭐, 칠십 년 살면서 늘 왔던 봄인데. 어느 봄하고 뭐 크게 다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봄이 더디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많이 추워요. 계절은 그게, 마음에서도 오는 거라는 생각을 해요. 워낙 내가 나목을 좋아하는데, 이파리 없는 그 모습이 너무 솔직해서. 그냥 아무 치장도 안 하고 이렇게 가지가 쭉쭉 뻗어 있는 걸,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보면 너무 아름다워요. 꾸미지 않아서. 근데 그 좋아하는 나목에서도 잎이 안 나나 매일 쳐다봤어요.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런 것 같애. 이번에는 그렇게 봄이, 굉장히 더디 왔어요.

봄은 기다려야 겨우 오는 것 같지만, 훌쩍 가지요.
기다려야 오는 거, 확실히 그래요. 우리 집 마당에 이렇게 싹들이 나는데, 참 놀라워요. 그 얼어 있는 땅을 이렇게 비집고 뽀개면서 딱 올라와요. 넌 어디서 그 힘이 나오니? 묻고 싶어요. 그 싹이 너무 이뻐서, 경이로워서 이렇게 만져봐요. 놀람 그 자체예요. 하물며 마당의 그 싹들도 언 땅을 비집고 나오는데 사람들이야 뭐, 뭘 해도 다 견뎌내야 되는 거지. 내가 오늘같이 구름 끼고 우중충한 날을 좋아하거든요. 디자이너 진태옥 선생은 그런 날이면 왠지 내 전화가 기다려진대. 전화가 올 거 같대. 내가 안 하고 있으면, “박정자 씨 왜 전화 안 해? 박정자 씨가 전화할 만한 날씬데.” 전화가 먼저 오기도 해요.

두보의 말이라는데, 세상의 모든 것은 깜짝 놀래켜주기 위해 있다네요.
맞아요. 우리가 까꿍! 그러잖아. 무심해 보이더라도 정작 무심한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거지.

일흔이 되셨죠.
얼마나 좋아요. 난 늘 이야기하는데,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어떤 그런 불안이나 뭐 또 서글픔이나 그런 거 없어요. 글쎄, 삶이라는 자체가 사실은 지루하잖아요. 나는 가끔 그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시간이 빠르게 가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끝나는 날도 있겠지? 하는 생각. 그 끝이 뭔진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 하면 나이에 대해서는 전혀, 나는 아주 둔감할 정도로 느낌이 없어요. 자랑스러워요.

<19 그리고 80>의 모드에 비하면 아직 열 살이나 어립니다.
올가을에도 그 공연을 해요. 근데 뭐 박정자가 연기한 지 50년 됐다고, 몇 주년이다 그러는 건 싫어요. 그냥 박정자, 그래 참 용타, 50년 동안 한결같이 정말 한결같이, 한 해도 쉰 적은 없으니까, 그게 참 나한테 고맙죠. 내가 일흔하나가 됐으니까 ‘50’이라는 것도 얻어지는 거지, 그냥 공짜로 생기는 거 아니잖아요.

한결같이, 한사코 배우 박정자였죠.
그냥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거 아니곤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뭐 50년 동안 이런저런 일은 많았죠. 예를 들어 작품이, 배역이, 내 맘에 안 들고 차지 않기도 하고. 이번에 전시하려고 찾다 보니 옛날 사진을 많이 보는데, 정말 이쁘지도 않은데다 유난히 촌스러웠더라구. 촌스럽다는 게 꼭 나쁜 거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을 딱 보면 그 사람에 대한 기대치라는 게 생기잖아요. 내 이십 대, 삼십 대 사진들을 보면서, 누구도 나한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새삼 했어요. 하지만 50년을 했죠. 그래서 한번 생각을 해봐요. 아, 내가 어떤 후배를 바라볼 때,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냥 겉모습만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건 옳지 않구나…. 그런 생각도 해요.

하지만 박정자는 바로 박정자의 모습이라야 매력이 있잖아요.
내가 매력이 있어요?

치명적입니다.
하하하. 배우에게 매력은 중요하죠. 그럼요.

그런데 연극은 도무지 남아 있질 않지요. 지나가버린, 끝난, 지금은 없는.
어떤 걸로도 기록이 불가능해요. 사진으로 ? 포스터로? 영상을 촬영해서? 연극은 그 순간뿐이죠.

그런, 연극만 하셨습니다.
그건 내 운명이에요. 기분이 좋기도 해요. 왜냐하면 지난 거를 보면 굉장히 남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고, 어후 저걸 어떻게, 그러기도 하니까.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걸 뭘로 남기겠어요. 거기에 내가 따라가는 거죠.

배우 박정자 하면, 몇 편의 연극, 몇 번의 무대 이런 얘기를 하지만 지금 무대는 비어 있지요.
그냥 꿈같은 거지, 인생 자체가 꿈인데. 그냥 한바탕 꿈이잖아요.

회고는 박정자스럽지 않은 낱말이겠죠?
그런 거 안 해요. 회고?

그럼 앞으로 용맹하게 나가는 것만이….
그런 것도 없어요. 앞으로 나가는 것도 귀찮아요. 그냥 지금만. 돌아본다, 내다본다 이런 거 하고 싶지 않아요. 오늘 지금 여기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 시간, 사진 찍히는 이 시간, 그게 내가 살아 있는 거지, 내일 어떻게 될지 내년에 어떻게 될지 나는 그런 건 몰라요.

아홉 살에 연극을 처음 보셨을 때만 해도 오늘 이렇게 될 줄 모르셨듯이.
네, 1950년쯤이었어요. 객석에 앉아 있다는 게 지금과 달랐을 뿐, 그때 이미 연극에 혼을 다 빼앗겼던 거 같아요. 연극할래, 배우가 되어야겠어, 그런 걸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속에서 이미 자라기 시작했다고 봐요. 흥분했었으니까. 흥분이라는 건 뭐예요? 결국 막 이렇게 뭔가 움직이는 거잖아요.

진명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를 가셨죠. 명문 중의 명문, 당시 최고의 엘리트 코스 중 하나였지요?
하하, 명문 중의 명문은 아니야. 그러나 나는 그 학교를 다녔던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거기서 한국무용도 했고, 합창도 했고, 또 웅변도 했고, 청소도 열심히 했어요. 한 가지 유감이자 다행인 것은 연극부가 없었다는 거예요. 연극부가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합창이라든가, 무용이라든가 그런 쪽으로 흘러갔을 거예요. 근데 그게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풍부하게 경험하고,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다녔어요.

60년대나 70년대에 서울에서 멋쟁이 대학생으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어떤 동경이 있습니다. 막연하지만, 서울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죠. 흔히 흑백사진으로 보지만 실은 너무나 당연히 컬러였잖아요?
지금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는데, 서울이 컬러로 기억나질 않아요. 이상하게 들릴까? 음, 통행금지가 있었어요. 그게 제일 생각나요. 근데 일 년에 한 번인가 두 번, 그 통행금지가 해제가 돼요. 크리스마스예요. 그러면 무조건 명동으로 다 모여드는 거야. 무조건 명동. 명동이 터져 나가요. 오비 카페니, 오비 투르니, 오비 케빈이니, 그러니까 그 자유라는 게…. 하지만 참 가난했죠. 대학에 다닌다는 자체도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가난했기 때문에 아름다웠다고 생각해요. 진심이에요. 사람들과 나누던 시간도 그만큼 소중했죠. 지금은 아쉬운 게 없잖아요. 휴대전화 하나씩 다 들고 있잖아요. 개도 소도 닭도. 나는 이런 세상이 하나도 고맙지 않아요. 가난했기 때문에, 너무나 없었기 때문에 더 아름다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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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