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우리 젊은 날 1

지난해 겨우 꼴지를 면했던 KGC 인삼공사는 올해 보란 듯이 우승을 차지했다. 경험이 부족하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말은 이 젊은 친구들과 상관이 없었다.

의상 협찬/ 왼쪽부터 이정현이 입은 수트는 아르코 발레노, 박찬희의 수트와 보타이는 YSL, 김태술의 수트는 존 갈리아노, 보타이는 콜 신 라브 돌리 by 10 꼬르소 꼬모, 오세근의 수트는 자신의 것, 타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양희종의 수트는 존 갈리아노, 보타이는 콜 신 라브돌리 by 10 꼬르소 꼬모.
의상 협찬/ 왼쪽부터 이정현이 입은 수트는 아르코 발레노, 박찬희의 수트와 보타이는 YSL, 김태술의 수트는 존 갈리아노, 보타이는 콜 신 라브 돌리 by 10 꼬르소 꼬모, 오세근의 수트는 자신의 것, 타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양희종의 수트는 존 갈리아노, 보타이는 콜 신 라브돌리 by 10 꼬르소 꼬모.

(왼쪽부터) 이정현이 점프하자 박찬희가 슬며시 팔꿈치로 밀어내며 장난을 걸었다. 키가 가장 작은 김태술은 골대에 매달렸고, 오세근은 리바운드 싸움을 하듯 몸에 힘을 꽉 주고 상체를 낮췄다. 한 발 늦게 뛴 양희종이 덩크슛 할 기세로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왼쪽부터) 오세근, 김태술, 양희종,박찬희,이정현
(왼쪽부터) 오세근, 김태술, 양희종,박찬희,이정현

 

오세근

족저근막염은 좀 나았나?
여기저기 아프다. 발목도 안 좋고.

빅맨들은 특히 하체 쪽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리한 거 아닌가?
쉬고 싶은 마음도 좀 있었다. 그런데 쉴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일단 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부상이 좀 있어도 안고 뛰는 게 선수의 도리라고 생각하나?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큰 부상이 아니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규리그에서 딱 두 경기 못 뛰었는데, 팀은 다 졌다. 팀에서 당신의 지분은 몇 퍼센트일까?
일단 다섯 명이 뛰는 거니까 20퍼센트 정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식스맨, 빅맨 형들이 정말 잘 메워줬지만, 아무래도 내가 다른 선수들과 손발을 더 맞춰봤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유리하지 않나 싶다.

당신은 파워포워드인가, 센터인가?
굉장히 애매한 부분인데, 내가 지향하는 플레이는 센터보다 파워포워드 쪽이다. 팀 사정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편인데, 굳이 정해놓고 하지는 않는다. 일단 지금 포지션상으론 센터로 들어가 있다.

우상인 더크 노비츠키처럼 슛을 더 던지고 싶나?
고등학교 때 코치님이 내 미래를 보고 그렇게 지도해주셨다. 키가 큰 편은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은데 한국 농구엔 안 맞는다.

골밑을 벗어나면 지금 위력을 발휘하는 여러 장점을 잃을 수도 있다.
많은 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발전하려면 일단 활동반경을 넓히고 슛이든 돌파든 여러 기술을 갖추는 게 선수 개인에게도 더 좋다고 생각한다. 너는 골밑에서 더 해줘야 하지 않냐, 같은 말을 종종 듣는데 골밑에서만 해서 쉽게 넣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한다.

팀의 주득점원으로서 김태술과 박찬희, 두 명의 포인트가드 중 누구와 뛰는 게 더 편한가?
잘 모르겠다. 왜냐면 둘 다 편하다. 태술이 형은 내가 스크린을 많이 걸어준다. 형만의 공격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나한테 찔러주는 패스도 참 좋다. 찬희는 대학 때부터 대표팀도 같이 다니고 그러다 보니 말 안 해도 잘 맞는 부분이 있다.

굳이 꼽자면?
음… 찬희? 오래 발을 맞춘 것도 있고, 또 친구고. 하하.

중앙대 52연승의 주역이다. 대학 때 우승이라면 신물 나게 했을 텐데 프로 우승은 좀 달랐나?
대학 때는 열 번도 넘게 우승했다. 프로는 한 팀이 우승하기가 정말 힘들다. 우리 팀도 우승을 한 번도 못했다. 지금도 너무 벅차다. 동부가 이길 거란 얘기가 많았기 때문에 오기로 계속했던 게 잘된 것 같다.

7차전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하…. 어렵지 않았을까? 원주에서 또 하는 경기고, 좀 힘들었을 것 같다. 다행히 6차전 막판에 젊음의 저력을 발휘한 덕에 기분 좋게 이겼다.

내리막에 대한 불안감도 있나?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텐데.
대학교 4학년 때 선배들한테 그런 얘길 들었다. 계속 이기다 프로에 갔더니 지는 게 적응이 안 된다고. 난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겼던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제 1년 차다. 앞으로 몇 년을 할지 모르겠지만 굴곡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

내년부터 용병이 두 명으로 늘어난다. 체격조건이 좋은 빅맨 한 명을 더 상대해야 한다. 자신 있나?
나는 오히려 더 좋다. 우리 팀은 아마 빅맨을 한 명만 뽑을 것 같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테니 플러스 요인이 더 크지 않을까….

수비할 땐 올해와 달리 용병을 막아야 할 텐데?
올해도 용병을 막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일단 뛰어봐야 알겠지만.

MVP는 정말로 기대 안 했나?
시즌 중반까진 기대 많이 했다. 그런데 갈수록 동부가 너무 잘해서 맘을 좀 내려놓았던 것 같다. 1위 팀에서 나올 거란 예상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MVP는 개인 성적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우승팀에서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
우승팀에서 성적이 제일 좋은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묵묵한, 같은 수식어는 좀 지겨운가?
아니. 일단 내 경기 스타일 자체가 좀 그렇고,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일단 묵묵한 모습은 꾸준히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에서도 시끄러울 것 같고, 안티 팬도 생길 수 있고. 하하.

김태술

인삼공사 경기는 신난다. 포인트가드로서, 그런 팀을 조율한다는 건 어떤가?
농구를 한 15년 했는데, 지금이 제일 재미있다. 물론 이겨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대학 시절부터 대형 유망주였고, 아직까지도 그 인상이 진하다. 그런 당신이 벌써 서른이라고?
나도 안 믿긴다. 공익근무 하면서 너무 나이먹은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은 아직 20대 초중반이다. 경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김태술로 이어지는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의 마지막 주인공이다. 김태술은 결국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는 말은 어떤가?
6년 주기설의 다른 선배들이 워낙 뛰어난 분들이다. 어쩌다 보니 나이가 그 ‘6년 주기’에 걸리다 보니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온 것 같다. 물론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였으니까…. 난 아직 진행 중이다. 정점을 찍은 선수가 아니다.

군대에 가면서, 스포트라이트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은 어땠나?
그게 두렵진 않았다.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건 두렵지 않았다. 두려웠던 건, 나와의 약속이나 계획을 못 지킬까 봐, 그런 게 두려웠다. 내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을까 봐. 몸이 망가질까 봐.

어떤 약속을 했나?
프로 1~2년 차 때 DVD를 엄청 많이 보면서 내 플레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수비할 때 스크린에 자꾸 걸려서 슛을 허용하는 게 보였다. 그땐 몰랐는데. 그래서 엄청 노력했다. 일부러 힘 좋은 센터들이 스크린 와도 뚫으려고 해보고. 나중엔 요령이 붙으니까 많이 좋아졌다.

올해가 당신의 전성기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농구를 잘할 때의 리듬이 있다. 그게 다 안 돌아왔다. 시즌 초반에 사람들이 “와, 김태술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 잘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난 이해가 안 갔다. 이게 내 농구가 아닌데, 내 리듬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데.

그 리듬은 언제가 최고조였나?
신인 시절 (방)성윤이 형 다치고 나서, 한 2라운드부터?

슈터들은 리듬을 찾기 위해 한 경기에 슛을 열 개, 스무 개 이상 던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포인트가드는 리듬을 어떻게 찾나?
10이 제일 빠르게 뛰는 거라고 치면, 난 8로 뛰어야 내 리듬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감독님은 10을 원하신다. 8의 리듬을 못 찾아서 계속 10으로 뛰었다. 웨이트 트레이닝 안 해놨으면 시즌 중후반쯤 체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김태술의 스피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빠르다, 빠르지 않다.
난 스스로 빠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빠른 농구를 별로 안 좋아했다. 날 상대한 선수들은 내 순간 동작이 굉장히 빠르다고 했다. 그 다음 동작은 항상 8의 속도로 뛰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은 안 빠르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리듬을 타는 게 중요하다.

경기장에서 표정이 없다. 지금도 그렇고.
세리머니나 그런 것들이 귀찮아서 그런 것 같다. 빨리 다음 수비하기도 힘든데…. 성격 때문이기도 한데, 일단 나는 가드니까 바로 앞 선부터 수비를 해야 해서 감정을 표현할 시간이 없다.

강동희와 이상민 중에서라면 누구를 더 닮고 싶나?
강동희 선배. 선배님 선수 시절에 연습경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귀신 같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빠르지 않다. 몸도 엄청 크시고. 그런데 따라다닐 수가 없었다. 리듬 때문이다. 은퇴하기 직전이셨는데도.

강동희나 유재학처럼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날린 감독 밑에서 뛰었다면 좀 더 몸 상태를 빨리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
그건 누가 찾아줄 수가 없다. 내가 찾아야 하는 거다.

포인트가드는 감독과 독립적인 존재인가?
그렇다. 경기장 안에선 내가 머리를 다 굴려야 한다. 감독님이 원하는 틀 안에서 내가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상범 감독님은 공격은 무조건 나한테 알아서 하라고 맡겨주신다. 그게 너무 고마웠다.

오랜만에 국가대표도 기대하나?
기회가 있는데 못했으면 자존심 상했겠지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 있다 없으면 소중한 걸 안다고, 해보고 싶다.

양희종

포인트가드챔피언결정전에서 윤호영과의 설전이 화제가 되었다.
NBA나 다른 리그를 보면 중요한 경기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윤호영 선수도 나한테 하고, 나도 윤호영에게 한 건데 주변 반응이 안 좋았다. 너무했다, 란 얘기도 들었다.

포인트가드화를 내거나 욕을 한 것도 아닌데?
멘트가 좀 세게 나간 부분들이 있긴 하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래서 호영이한테 고맙다. 내 잠재된 자존심을 건드려줬다. 우리 팀이 져도 난 너한테 안 진다는 생각으로 했다.

포인트가드양희종은 윤호영보다 나은 선수인가?
개인적으로는 내가 낫다고 생각한다. 다른 걸 떠나서 농구는 5:5 게임이다. 만약 같은 팀에서 포지션 경쟁을 한다면 내가 주전으로 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챔피언결정전 마지막 경기에선 좀 못했는데, 호영이가 되게 잘했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방을 내가 넣고 나니 너무 통쾌했다. 네가 아무리 잘했어도 승자는 나다, 란 생각이 들어서.

포인트가드마지막 슛을 지체 없이 던졌다. 평소 인삼공사의 공격 패턴을 생각해보면 의외였다.
원래 하려던 작전은 정규시즌에 한 번 했다가 실패한 작전이다. 감독님이 실패할 걸 감안해서, 원래 계획했던 게 안 되면 윙에 서 있는 포워드에게 공을 줘 아이솔레이션(1:1 공격) 시키라고 말씀하셨다. 왠지 공이 나한테 올 것 같았다. 예전부터 그 정도 거리에서 던지는 점프슛을 꾸준히 연습했다.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을 위해 했던 것 같다. 그날 오전에도 왜 자꾸 똑같은 슛만 연습하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것만 계속 던졌다.

포인트가드챔피언결정전에서 위닝샷을 성공시키는 기분은 어떤가?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데 들어갔다는 느낌이 왔다. 넣고 나선 멍했다. 그러더니 이기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왜, 만화책에서 버저비터 넣고 다음 페이지 넘기면 버저 소리 울리고 하이파이브 하면서 같이 포옹하는 그림 차례대로 나오지 않나? 그런 게 떠올랐다.

<슬램덩크>처럼?
맞다. 착착 지나간다. 정신 하나도 없었다. 그게 한 2~3일 갔다. 그동안 연습하면서 몸이 기억했던 것들이 알아서 반응한 것 같다.

<슬램덩크>의 등장인물에 비교하자면 누구와 가장 가까울까?
서태웅이지. 하하.

이정현의 별명이 ‘벤치 서태웅’이다.
산왕의 정우성이란 선수를 좋아했다. 뭐, 주위에선 강백호 같다고들 말한다.

빨간 머리를 한 적도 있지 않나?
맞다. 그것도 그렇고 플레이 성향이나, 마지막에 결정적인 슛을 넣은 거나. 나쁘지 않다. 어차피 주인공이니까.

대학 시절엔 공격도 꽤 잘했다. 국내 선수들 중 특히 포워드 포지션의 선수들이 프로에 오면 공격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주득점원인 용병과 포지션이 겹치기 때문일 텐데, 불안하진 않았나?
솔직히 많이 불안했다. 이렇게 내가 죽어가는구나, 이렇게 잊혀가는구나…. 좀 가슴 아팠다. 국가대표 경력도 있고, 데뷔할 때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는데. 어디 가서 말도 못했다. 용병이랑 포지션이 겹쳐서 출장시간은 줄어들고, 슛도 많이 못 쏘니 자신감은 또 떨어지고. 그런데 또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용병이 시즌 중간에 바뀌면서 기회가 늘어났다. 그래서 컨디션을 서서히 찾았고, 다행히 플레이오프에 맞춰 몸 상태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수비 전문선수’ 같은 말은 좀 기분 나쁜가?
좋진 않다. 그런데 뭐 팀에서 인정해주는 부분이 있으니까. 내가 수비에서 힘을 100퍼센트 안 쓴다면 공격 쪽에서 더 활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비에서 100퍼센트를 다 쓰면 공격에서 또 힘을 쓰긴 어렵다. 그렇지만 내가 수비를 50퍼센트의 힘으로 하고 공격도 50퍼센트의 힘으로 하면 그냥 일반적인 선수가 될 거다. 찬스가 나면 적극적으로 공격하겠지만, 수비는 꾸준히 할 거다.

동부나 KT같이 조직력이 뛰어난 팀에서 뛰었다면 더 돋보였을 거라는 이야기는 어떤가?
안 가봤기 때문에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 팀에 내가 있었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승리의 주역은 아니지만 주연만큼 비중 있는 조연이랄까? 내가 있는 한 우리 팀이 무시당하지 않게 잘할 거다. 운 좋아서 우승 한 번 한 거네, 같은 소리 나오지 않게. 양희종이 있어서 인삼공사가 무너지지 않는구나, 란 소리 듣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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