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어떻게 보세요?

잡지에 실리는 광고에 대한 몇 가지 아주 기본적인, 그러나 거의 무시해버린 이야기.

매달 편집부로 들어오는 독자엽서의 일정 부분은 광고에 대한 내용이 차지한다. 광고가 너무 많다, 디자인이 촌스럽다, 외국 광고도 못 봤느냐, 종이 질이 마음에 안 든다…. 개인적이며 다분히 부정적이기도 한 감상들. 또한 빼라 마라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는 전형적인 네티즌 댓글풍 명령들 “광고 줄이고, 기사 늘려라.” 그리고 전혀 다른 극단으로서 “잡지는, 광고 보려고 보는 거 아닌가? 광고는 많을수록 좋아요” 하는 사람들. 내로라하는 굴지의 브랜드들이 계절별로 쏟아내는 광고의 행렬은 그 자체로 시대를 관통하는 좌표일 수 있다. 가장 잘나가는 사진가와 디자이너가 총동원되니 과연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편집부는 그런 멋진 행진과 거의 광년 단위로 동떨어진 듯한 전화를 받는 날도 있다. “끝까지 읽어봤더니 완전히 광고더라고요. 기사 이렇게 써주면 브랜드한테 얼마 받습니까? 독자를 속여도 되는 건가요?” 가만, 이건 문제가 있는, 아주 심각한 내용 아닌가? 독자가 지목한 페이지를 펼쳤다. 광고였다. “그 페이지는 광고가 맞습니다.” 전화기 저쪽은 잠시 조용했다. “아니, 그럼 왜 광고를 기사처럼 내는 거죠? 심지어 에디터 이름도 있는데요?” 그 대답은 편집부가 할 수 없다. “말씀하신 페이지의 에디터가 편집부 소속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기사가 아니라 광고인 이상, 다른 부분은 광고를 만든 쪽에 질문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한편 이런 경우도 있다. “아무개 런던에서 <GQ> 화보 촬영.” 뉴스 한마디면 이미 삼천리 국토의 기정사실이 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트위터 계정에 멘션을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느낌표를 남겨놓는다. 하지만 편집부에선 언감생심 처음 듣는 일인 경우도 있다. 에디터 모두 사무실에서 마감 중인데, 누가 런던에서 화보 촬영을 진행한다는 걸까? 예외 없이, 광고다. 광고란 기본적으로 브랜드가 매체의 공간을 사는 것이니, 응당 내 돈 주고 내가 산 공간을 내 맘대로 하겠다는 자유가 넘쳐흐른다.

거기에 뭘 펼쳐놓을지는 온전히 광고주의 몫. 기사 형태를 취하든 화보 형식을 따라가든 그건 지불한 돈에 대한 일정한 권리다. 알게 하려고, 팔고 싶어서, 좋게 보이려고 광고하지, 모르게 하려고, 팔고 싶지 않아서, 나쁘게 보이려고 광고하지 않는다. 그러니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요! 저요!’ 봐달라며 밀어붙인다. 광고를 둘러싼 모든 시각적 문제는 어떤 조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 조화는 다양한 형태로 접근할 수 있다. 우선은 이 매체에 이 광고가 어울리느냐 하는 문제. 단적으로 말해 <GQ>엔 <GQ> 같은 광고가 실리는 것이 합당하고 멋지며, <월간 붕어>엔 <월간 붕어>같은 광고가 실리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그 조율은 항상 민감한 문제다. 어떤 것을 고려하고 선택하며 체에 거르는 과정은 매체마다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지만, “여기에 이런 광고도 나와?”라는 말의 부정적 인식은 매체나 브랜드 모두에게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모노클>은 “광고주가 뉴욕에만 있다는 편견을 버리라”는 강령 아래 벨기에 가죽 업체, 한국 카드회사, 일본 타일 브랜드, 오스트리아 자전거 회사 등의 광고를 실었고, 그것으로부터 매체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했다. 또한 패션 브랜드 광고가 즐비한 미국 <W>에서 안드레아 거스키의 전시 소식을 알리는 가고시안 갤러리의 광고를 대하면, 매체의 파워와 브랜드의 감각에 동시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조화는 광고와 기사가 만나는 장면에서 발생한다. 왼쪽 면에 기사가 있고 오른쪽 면에 광고가 있다면 대번 한눈에 보이는 문제. 아트 디렉션이 뛰어난 잡지들은 이 과정의 중요함을 깨닫고, 광고 이미지에 맞춰 편집 디자인에 손을 대기도 한다. 어차피 그 자리로 들어올 광고 이미지라면, 둘 다 돋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는 인식에서다. 이것은 ‘갑과 을’의 권력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오직 조화로운 페이지를 위한 섬세한 작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강력한 이름, 파비언 바론이 이끄는 <Interview>는 이런 부분을 가장 절묘하고 영악하게 창조해낸다. 왼쪽 페이지의 기사와 오른쪽 페이지의 광고가 거의 처음부터 그렇게 놓여 있었던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니까. 광고야말로 지금 가장 잘나가는, 가장 앞서가는,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들이 압축된 비주얼 작업이니,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바다 건너 얘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모든 국내 매체는 기사 옆에 어떤 광고의, 어떤 이미지가 있는지 모르고 편집을 마감하는 시스템이다. 고로 이 칼럼 옆에 혹시 어떤 광고가 붙게 될지 어떨지, 기사를 쓰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그런 채 매체와 광고는 아찔한 동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