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완의 이종이식

홍승완을 만났다. 그는 이번에도 서로 다른 유전자를 이식해 새로운 하나를 만들었다.



2012 F/W 로리엣 쇼의 런웨이는 좀 어두웠다. 핀 조명 사이로 걷는 모델들이 꼭 야생마 같았다.
어떤 상황을 의도한 건 아니다. 이번엔 소재도 주제도 무거운 편이어서 일관성을 맞추려 했을 뿐이다.

제노 그레프트라는 주제 말인가? 도대체 그게 뭔가?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유전자를 이식해서 새로운 하나를 만든다는 뜻이다. 인위적으로 붙이거나 이식한다는 의미에서 이종이식이라고도 부른다.

왜 그렇게 어려운 주제를 택했나?
로리엣은 늘 1920년대 영국 남자를 염두에 두고 만든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 인물, 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다뤘다. 작년에 했던 ‘캠브리지 이중 스파이’나 ‘헨리 로열 레가타’처럼. 그런데 이번엔 1920년대 여러 요소를 자연스럽게 더하거나 빼서 새로운 걸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제노 그레프트라는 의학용어를 알게 됐다.

의자 위에 놓여 있던 제노 그레프트라는 글자가 새겨진 쇼 노트는 작고 예뻤다. 이 노트에 그려진 그림도 혹시 1920년대 사진 중 어떤 걸 도용한 것인가?
그건 우리 팀이 직접 그린 거다. 첫 번째 옷부터 쭉 차례대로. 얼굴만 옛날 사람들의 것을 따다 붙였는데, 그것 때문에 옛날 책에 나오는 그림처럼 보였을 거다. 그걸 의도하고 만들었다.

당신에겐 1920년대 남자가 왜 그렇게 매력적인가?
1920년대는 사회가 어수선하고 뒤바뀌는 시기라 사람들이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술과 약에 취해 살기도 했다. 그때처럼 보수적이고 억압된 사회에서도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은 있었는데, 바로 그런 남자들이 멋있었다.

런웨이에서 본, 앞은 단정한 모직 코트인데 뒤는 식스팩처럼 부푼 패딩 코트가 참 인상적이었다.
앞뒤만 다른 게 아니라 안팎도 달랐다. 겉은 울 소재지만, 안감을 ‘빈티지’한 면으로 골라 손으로 다 이었다. 솜 덩어리를 물에 적셔 가래떡처럼 말아 만든 굵직한 니트 톱도 모두 수작업 했다. 신발 발등 부분에 악어 가죽을 끼워 넣는 등 생산기법에서부터 이종이식 방법을 적용하려 노력했다.

패딩이나 핸드메이드 니트는 뻔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으로 보였다.
요즘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과 구매하는 것이 다르다는 거다. 로리엣이 보여지기만 하는 옷이 되는 건 싫다. 현실과 가깝고 편한 옷이라면 좋겠다. 그래서 요새 실용이라는 단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패션의 중요한 기능은 누가 입느냐는 것이다. 요즘은 옷 외의 다른 게 너무 부각된다.

매번 전문 모델이 아닌 모델을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
보통 남자들이 좋다. 물론 남자 모델이 너무 적고, 캐스팅할 수 있는 모델은 더 적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다른 디자이너의 쇼에 섰던 친구가 금세 머리와 화장을 바꾸고 내 쇼에 선다고 해도 잔상은 남아 있게 마련이니까. 좀 어눌하게 걷더라도 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떤 사람처럼 현실적인 모델이 우리 옷을 입는 게 좋다.

그래서 홍승완 옷이 야외 쇼 장에 더 어울리는 걸까?
사실, 지난 시즌 스크린을 통해 우릴 강가로 초대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뭔가 있길 바랐다. 그건 봄, 여름이니까 어울렸지. 가을, 겨울에 밖으로 나가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얼마나 추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