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늦둥이 조정석

2012.05.18GQ

조정석은 집에서도, 영화에서도 늦둥이다. 하지만 어리광따윈 부려본 적이 없다.

의상 협찬/ 흰색 민소매 티셔츠는 H&M, 격자무늬 바지는 빈폴, 멜빵은 스타일리스트 것, 더블 몽크스트랩 구두는 엠비오, 오래된 카세트 오디오는 금성 by 원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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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찍고 싶었는데, 안약을 사양했다. 대신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틀어달라고 했다.
총체적 난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할 때였는데, 미친 듯이 힘들었다. 연극과에 입학하면서부터 항상 배우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방해요소가 많아졌다. 그 당시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받았다. 특히 이 노래의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라는 가사가 콕콕 찔렀다.

그때라면 상을 두 개나 받았고, 뮤지컬 배우로서 티켓파워를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 아닌가?
역설적으로 그랬다. 연기한 모리츠 역할이 암울하고 열등감에 휩싸인 친구여서 더 심했을지도. 가장 큰 원인은 가족 문제였다. 집안에 문제아 한 명씩 꼭 있지 않나? 그로 인해 가족에게 파급되는 효과는 굉장히 크고. 내가 좀 늦둥이다.

문제아와 늦둥이.
그래도 그런 갈등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이 차이가 많은 형제들 때문에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에게서도 세대 차이를 느꼈지만, 반대로 오래된 노래를 접해서 폭 넓은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나를 자극하는 음악은 대부분 1980년대 노래들이다. 감성이 올드한 편이다.

<왓츠업>에서의 연기 또한 ‘올드’했다. 촌스럽다기보단, 튀지 않고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로 봤다. 신인 배우에게서 으레 볼 수 있는 힘만 잔뜩 들어간 연기가 아니라 반가웠다.
힘을 빼자는 의도는 없었다. <왓츠업>에서 병건을 분석한 뒤 예측 가능한 호흡으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버하지 않고 정석을 지키면, 괜찮다는 평가는 받을 순 있다. 하지만, 감탄이 나올 만큼의 연기는 어렵다. 내가 욕이 하고 싶을 정도로 놀라는 연기는, 생각지도 못한 호흡을 찾아내 관객에게 전달하는 연기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도 그런 연기이고. 병건의 호흡도 더 쪼갤 수 있었지만, 자제했다.

<왓츠업>의 김병건, <더킹 투하츠>의 은시경,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모두 말의 속도, 대사 사이의 호흡 길이가 불규칙했다. 자신만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그건 나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각 역할마다의 특징이다. 다 비워놨다가 내 안의 역할을 넣을 뿐이다. 누가 탁 건드렸을 때, 여전히 조정석이면 안 된다. 만약 어떤 연속적인 호흡이 있었다면 캐릭터끼리의 공통점이다.

조정석의 본래 성격은 완전히 배제하나?
그게 내 욕심이다. 나를 지우고 극본 속의 캐릭터가 되는 것. 그래서 고생을 많이 한다. 평상시에도 캐릭터로 살기 위해 노력하니까.

뮤지컬과 연극을 하다가 드라마를 하면, 동작이나 표정이 커서 고생하는 배우도 있다. 드라마는 클로즈업의 연속이니까.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연기를 지향하는 편이다. 그래서 드라마치곤 힘이 너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극에선 그렇진 않을 거다. 학교 다닐 땐 연극할 때도 톤을 많이 낮춰 굉장히 많이 혼났다. 내 톤 때문에 상대방과의 앙상블이 깨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멍청했다. 연극은 극장의 크기에 맞게 발성과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 500석짜리 중극장에선 뒤쪽까지 전달 될 수 있는 임팩트 있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거의 뮤지컬만 해왔다. 그러면 영화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아니, 배우가 될 때부터 영화가 진짜 하고 싶었다. 한데, 학교에서 신체훈련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뮤지컬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오페라의 유령> 초연을 보고 완전히 빠져들었고, <호두까기 인형>으로 데뷔했다. <그리스>를 하면서 어느 정도 주목을 받으니깐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영화는 계속 하고 싶었다. 중간에 <바람 피기 좋은 날>의 이민기 역할이 들어오기도 했는데 뮤지컬 <헤드윅>을 하는 바람에 못했다. <고고70>도 승우 형의 추천으로 미팅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블 데드>를 시작하면서 못했다. 만나보기라도 할걸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독립영화는 어떤가? 뮤지컬에서 티켓파워가 생기면서 확연하게 오른 출연료를 포기할 수 없었을까?
그런 부분도 당연히 있다. 돈이 정말 중요했다. 만약에 경제적으로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작품을 좀 쉬면서 영화를 준비했을 거다. 공연 쪽은 배우가 캐스팅 되면 빠르게 진행하지만, 영화는 길게 기다려야 하니깐. 6개월이든 1년이든 비워놓고 기다릴 여유가 있어야 했는데 그럴 순 없었다. 사실 돈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릴 때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해 누리고 싶은 거 다 누리면서 사는 것에 갈급했다. 그런 조급함이 열심히 살 수 있게 해준 힘이기도 했지만.

    포토그래퍼
    안하진
    스탭
    스타일리스트/김봉법, 헤어/ 김홍민, 메이크업 / 이가빈, 어시스턴트/ 하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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