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켄이치와 케네스

2012.05.18GQ

빔스 플러스의 디렉터였던 켄이치 쿠사노가 새 브랜드 ‘케네스 필드’를 만들었다.

당신도 옷에 미쳤나?
맞다. 대학교 때 빈티지 청바지를 사느라 없던 빚이 생겼다. 5만 엔짜리 청바지로 시작해서 10만 엔, 20만 엔짜리로 올라갔다. 돈에 쪼들려서 다시 팔았다가, 똑같은 걸 또 사기도 했다. 미쳤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빔스 플러스는 혼을 담은 브랜드고, 나의 피 같은 존재다”라고 말한 걸 본 적 있다. 이제 그곳을 나와 버렸으니, 혼과 피는 다 어떻게 되는 건가?
진짜 나만의 혼을 담을 새 그릇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빔스 플러스엔 여전히 내 피가 흐른다고 믿고 싶다.

그 피가 대체 뭔가?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회색 플란넬 수트에 롱윙 구두를 신고 보타이를 매는 어떤 ‘스타일’이 일본에 정착된 데는 내 영향이 컸다. 톰 브라운과 좀 겹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입고 신어본 것 중에선 뭐가 제일 좋았나?
나이젤 카본의 아우터, 엔지니어드 가먼츠의 팬츠, 알든의 990과 롱윙 슈즈.

빔스 플러스를 벗어나서 해보고 싶은 건 뭐였나?
다른 시대의 재미있는 감각을 마음대로 써보고 싶었다. 1930년대의 우아한 무드, 1970년대의 드라마틱한 실루엣의 수트, 1980년대의 길거리 감성이나 어깨를 강조한 수트, 1990년대의 앤트워프 사람들의 감각. 케네스 필드엔 이 모든 것을 넣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전통인 버튼다운 셔츠 대신 1970년대 월스트리트에서 유행한 와이드 스프레드 셔츠를 썼다. 군복에 쓰는 립스톱 소재로 체크 셔츠를 만들기도 하고, 1차 세계 대전 때 영국군이 입은 구르카 쇼츠의 세부를 살려서 헤링본 팬츠를 만들기도 했다.

그게 케네스 필드의 핵심인가?
더 중요한 건, 공들여 만든 소재다. 옷감이 아니라 실에 염색을 하는 ‘얀 다이’ 염색이라든지, 굳이 탄성이 있는 소재를 쓰지 않아도 신축성을 만들 수 있는 ‘더블 트위스티드’ 가공이라든지. 옷에 어울리는 감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원단이라면 아낌없이 썼다. 폭스 플란넬이나 웨스트 포인트 같은 세계 최고의 원단도 싼 대체품을 찾지 않고 그냥 써버렸다.

앞으로는 어떤 변화를 줄 건가?
옷의 형태를 많이 바꾸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 컬렉션마다 새로운 소재를 쓸 거다. 이를테면 1960년대풍 재킷을 1980년대 아르마니 수트에 썼던 원단으로 만든다든지. 한마디로, 소재를 가지고 노는거다.

한결같은 장인과 변화를 즐기는 선각자,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깝나?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게 목표다.

10년 뒤엔 뭘 만들 건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다른 옷을 만들고 싶어지면 다시 브랜드를 낼 거다. 뭘 하든 본류와 원점을 파헤쳐서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싶다.

마니아를 위한 옷을 만들고 싶나?
그건 싫다. 차이를 알고 세부를 이해하는 사람만 사라는 건 건방진 말이다. 옷을 사랑하는 남자라면 누가 입어도 좋다.

    에디터
    박태일
    포토그래퍼
    현다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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