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놀이는 끝났어요 1

2012.05.31GQ

하지만 철없는 마음은 끝나지 않았다. 배두나는 유치하게, 말랑말랑, 들쑥날쑥 살 거라고 했다.

원피스는 까르벤.

원피스는 까르벤.

<코리아>를 봤어요.
어땠어요?

탁구 선수 복이 저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 찾기도 힘들겠다.
아하하하. 감사합니다. 저 배바지 입은 거 봤어요?

배바지 말하는 거예요.
선수 복을 한 군데서 협찬 받았는데, 한 사이즈로 몰아줘서 저나 종석이처럼 좀 큰 사람들한테는 다 짧았어요. 어떤 신에서는 남자 바지도 입었죠.

생각해보니까 당신은 인상적인 ‘코스튬’을 많이 입었어요. 다분히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의상요.
<공기인형> 말이에요?

<린다 린다 린다>의 교복도 있죠.
그렇네요. 사실 대놓고 섹시한 거보단 그런 게 좋아요.

어느덧 ‘중견’ 배우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소녀 같은 배역이 많이 들어올 것 같아요.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저는 야한 옷을 입어도 별로 안 야해서 과감하게 입을 수 있거든요. 내가 막 벗어도 그렇게 섹시하지 않다는 거 알아요. 몸 생김새도, 얼굴 느낌도 그렇죠. 누구는 저보고 중학생 몸매라고 하던대요?

야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요?
야해 보이려고 찍은 영화도 없어요. 영화에서 필요한 베드 신이나 누드 신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섹시해서는 안 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좀 달랐거든요. <공기인형> 때 뒷모습이 예쁘게 나왔다, 는 말은 들어봤어요.

섭섭하지 않나요?
전혀요! 전혀, 전혀.

섹시한 영화는 어때요?
노. 남 앞에서 벗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요, 웬만하면 벗는 건 안 하고 싶어요. 너무 좋은 감독님이 너무 좋은 역할을 주면서 하자고 그러면 할지도 몰라, 하지만 정말 섹시한 부분은 그냥 내가 갖고 있고 싶어요. 정말 프라이빗한 거잖아요. 그걸 대중한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내 남자한테만 보여주면 되지.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지는 않나 싶어서 물었어요. 상관없다?
제가 아직까지 연기할 수 있는 건, 뛰어난 미인도 아니고 엄청난 연기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 부분이 있었던 덕분인 것 같아요. 그걸 버리고 굳이 변신할 필요가 있을까요? 또 나이가 들면서, 제 안에서 다른 게 나이를 먹어가요. 십 년 전의 제 얼굴은 같아 보여도 또 다른 얼굴이에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다가 계속 복제인간이랑 인형 배역만 들어오면요?
그래서 <코리아>를 한 거예요. 아하하하. <공기인형>의 다음 역할이고,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복제인간 이전 역할이잖아요. 저로서는 <공기인형>부터 이어지는 그 행보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안배를 한 건 아니잖아요.
아니죠. 저는 전략적으로 일하지 않아요. 딱 마음에 들면 하는 거지, 로맨틱 코미디를 했으니까 다음에는 호러를 해야지, 이런 거 없어요.

<코리아>라는 작품은 당신의 배우 경력에서 도전이었나요?
<코리아>의 제 역할이 당신이 생각한 제 이미지랑 같던가요?

그건 좀 복잡한 얘기죠.
예. 왜냐면, 전 영화에서 그런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실존 인물 자체가 처음이잖아요.
리분희는 정말 딱 맏언니. 정은 많지만 티 안 내면서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 그런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가 처음이었어요. 모든 게 저로서는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투 톱 영화지만,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주인공이 아닌 점도 좋았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장르였고.

그래서 복잡한 얘기라고 했어요. 이렇게 ‘감동’에 집중하는 영화도 처음이죠.
그렇죠. 생각해보면 없어요. 하지만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었던 것 같아요.

왜 하필 <코리아>였나요?
제 자신이 좀 지겨워서, 신선한 게 필요했어요. <공기인형> 이후로 한동안 영화를 안 했는데, <괴물>로 천만 배우라고 불리고, <공기인형>으로 일본에서 여우주연상을 다섯 개씩 타니까 이룰 거 다 이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나를 보여줄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직 나이가 몇인데.
<괴물>이 흥행 배우라는 꼬리표를 줬지만, 솔직히 제가 가져온 게 아니잖아요. <공기인형>이 현재까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긴 해요. 그냥 여러모로 제가 지겨웠어요. 쉽고 친근한 영화를 하는 게 신선해 보이는 제가 좀 별난 거겠죠.

주인공이 아닌데 끌린 건 왜죠?
제가 일본에서 느낀 바가 있어요. 오다기리 죠가 <공기인형>에 두 시퀀스 나오잖아요. 근데 오다기리 죠 같은 스타는 그 자그마한 역을 해도 빛이 나더라고요. 왜 우리는 원 톱에 목을 매지? 어떤 배우는 자기 분량이 줄면 막 울고 그러거든요? 그 존재감이 멋있었어요. <킹스 스피치>도 영향을 미쳤죠. 실험적인 캐릭터만 하던 헬레나 본햄 카터가 갑자기 고전 미인으로 나오는데, 거기서 뭔가 느껴졌어요. 아무나 해도 될 아내 역할을 헬레나 본햄 카터가 하니까 무게감이 생겼죠. 헬레나 본햄 카터가 그 역할을 안 했으면, 솔직히 그렇게 멋있진 않았을 것 같아요.

특이한 배우의 평범한 연기라.
나 특이한 사람 아니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하면서 기본기를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당신은 특이한 배우라는 이미지를 내내 신경 쓰네요.
제 나름대로는 힘든 작업이지만, 사실 제 연기가 화면에서는 성의 없어 보일 수 있거든요. 배역의 마음이 되려고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분장할 때마다 읽는데, 늘 표현은 20퍼센트만 해요. 온 마음을 담지만, 제가 생략할 수 있어야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니까요. 관객이 집중해서 내 마음을 알아보려고 노력하면 잘 보일 수 있겠지만, 수동적으로 앉아 있으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엔 좀 다른 영화를 해보자, 내가 못해서 안 했던 게 아니다, 이런. 하하.

별로 다르지 않던데.
그래도 많이 보여주려고 했는데!

글쎄요. 혹시 비평을 찾아서 읽나요? 당신의 ‘성의 없는’ 연기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거 알아요? <코리아>의 평가는 좀 다르다는 것도 알고요?
네, 알아요.

‘코리아’라는 맥락을 강조하기 위해 좀 무리를 한 것 같아요.
제가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서 선택한 거라서 변명의 여지는 없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요. 다만,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다르게 대선배나 대감독한테 기대지 않으면서 새로운 공부를 한, 좋은 경험이었어요. 저로서는 영화에 힘을 좀 빼는 역할을 하려고 했는데, 뭐 그렇게 됐네요.

배우에 대한 평가와 영화에 대한 평가가 불일치하는 상황이 어때요?
좋지 않죠. 힘을 빼주는 역할을 생각한 건 관객 분들을 편안하게 하려고 한 거지, 제가 튀려고 한 게 절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제 연기가 이야기되니까…. 아 진짜, 이건 내숭이 아니에요. 난 내가 튀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튀고 싶었으면 <괴물> 같은 영화를 했겠어요? 저 <괴물>에서 보이지도 않잖아요. 저 그런 배우 아니에요.

당신은 굉장히 개인적이고 고립적인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대중에게 보여왔어요. 그래서, 영화에서 드러나는 격렬한 감정과의 불일치가 더 커 보이는 거겠죠.
미니홈피 보면 알겠지만, 절대 제 의견 말하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영향 끼치기 싫거든요. 글은 거의 안 쓰고 사진만 올리는데, 사진도 제가 꼬집고 싶은 문제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정도로만 올리죠. 제 딴에는 작품으로 소심하게 제 의견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영화배우 배두나와 그 이전의 배두나는 좀 다른가요?
영화배우 하기 전이 더 유명했죠. 플래 카드 든 팬들 만날 서 있고, 아이돌 같았어요. 하지만 일 자체가 재미가…. 모델 하고, 캠퍼스 드라마 찍으면서 N세대 스타 할 때는, 내 길이 아닌데 왜 이걸 하고 있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플란다스의 개> 하면서 이거구나, 진짜 배우를 하고 싶다, 했죠. 화장 싹 벗고, 머리 질끈 묶고, 진짜 세상 못 생기게 관리사무소 여직원으로 나오는데도 그게 좋더라고요.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신선혜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