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 탁구에 전하는 16가지 충고

2012.06.15유지성

중국 탁구엔 적수가 없다. 한국이 간간히 무찔렀을 뿐. 양영자와 김택수, 그리고 탁구 전문기자 이동윤은 이런 답을 내놓았다.

현재 남녀 세계랭킹 1위부터 5위까지가 모두 중국 선수다. 왜 이리 잘하는 걸까?
김택수 (<대우증권 토네이도> 감독) 예전엔 스웨덴보다 뒤처지던 때도 있었고 나나 유남규 감독도 중국을 꽤 많이 이겼다. 중국 탁구의 기술이나 스피드를 이용한 전진속공, 러버의 특수성은 당시에도 뛰어났지만, 파워나 풋워크가 지금에 비해 좀 약했다. 그런데 요즘 중국 탁구는 발도 빠르고 힘도 뛰어나다. 또한 중국이 프로 리그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자체적인 프로 리그를 시작하면서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 유발이 됐다.

양영자 (전 탁구 국가대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중국의 탁구 인구를 4천만 정도로 보고있다.선수 숫자만큼이나 자국내 대회가 많다. 나이별로 시합을 시켜서 우수한 선수를 선발하는데, 잘하는 선수들은 한 단계씩 올라간다. 수준이 높아질수록 상금이 뛰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고 경기력도 뛰어나다. 국가대표팀의 경우, 우리나라는 코치와 감독이 모든 대표팀과 상비군 선수들을 지도한다. 중국은 선수 세 명당 코치 한 명이 붙을 정도로 지도자의 비율이 높다.

이동윤 (<문화일보> 선임기자) 탁구가 중국의 국기에 가까운 종목이다 보니 일단 선수가 많다. 실업팀 선수만 2천명 정도 된다. 주니어는 그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는 유명무실한 시·군청 소속 선수를 제외하면 실업 선수가 1백 명이 채 안 된다. 그러나 기술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못하는 기술은 없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선수라면 웬만한 기술은 다 습득할 수 있다. 결국은 숙련도, 누가 자기 범실을 줄일 수 있느냐의 차이다. 중국 선수들은 좋은 선수들끼리 서로 연습하고 경기하니까 훈련의 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많지 않다. 몇몇은 뛰어나지만, 동료들의 수준이 떨어지니까 아무래도 훈련의 질이 중국에 비해 처진다.

이런 중국 탁구에도 불안요소가 있을까?
김택수 중국 탁구계엔 최고들만 모여 있다. 축구로 치면 바르셀로나나 맨체스터 유니이티드 같은 팀이다. 거기서 내부 경쟁을 하니까 뛰어난 스타들이 나온다. 어린 선수들도 우상이 확실하니까 열심히 한다. 당분간 무너질 일이 없다고 본다. 유럽이나 한국에 밀렸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더 전력투구할 것이다.

양영자 시스템을 확실히 갖춘 중국 탁구에 큰 불안요소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최근 중국 선수들이해외로 빠져나가 다른 나라의 국가대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싱가포르가 한 국제대회 여자부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한것처럼 이런 선수 유출이 중국에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해외로 나가는 선수들은 1진급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을 자주 이기긴 어렵겠지만, 일단 중국의 훈련방식이나 기술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동윤 중국에서 축구 같은 종목의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 탁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면 중국 탁구도 평범해질 수 있다. 이미 국가대표 1진과 2진 선수들 간의 실력 차가 꽤 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전통의 유럽과 일본, 싱가포르 등 범아시아권의 성장으로 한국 탁구는 이제 세계 2위를 쉽게 자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냉정히 볼 때, 현재 세계 탁구계에서 한국 탁구의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택수 2위라 얘기하긴 좀 무리가 있고 4강권 정도라 본다. 그렇지만 여자부의 싱가포르나 홍콩은 사실상 중국 선수들이 가서 뛰는 거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일본과 한국의 경쟁인데, 토종 본토 선수들을 놓고 봤을 때 일본이 좀 낫지 않나 싶다. 2위 자리가 만만치 않다. 남자는 오상은, 주세혁, 유승민 다 잘한다. 중국을 못 이기다 보니 계속 압박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 선수들이 인위적으로 물러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랭킹 10위권 선수들이다. 후배를 위해 양보하고 스스로 나가는 거면 모르겠지만, 밀어내는 형식은 부자연스럽다.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좋지만, 신구의 조화도 필요하다. 훈련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된다.

양영자 어렵게라도 중국을 이길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중국의 적수는 한국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중국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잠재력이 있다. 탁구는 순발력이 중요한 종목이다. 순발력은 노력도 중요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쪽에 가깝다. 탁구 선수에게 유독 신동, 천재 같은 수식어가 자주 붙는건 선천적 재능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 같은 생활체육 활성화가 중요하다. 부모가 탁구를 치면 자녀를 가르칠 맘이 생기기 마련이고,그래야 어려서부터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해 키울 수 있다. 중국의 탁구 열기는 굉장하다.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탁구대가 다 있다. 심지어 공원에도 탁구대를 놓을 정도다. 또한 중국의 국영 TV 채널 CCTV5에선 중요한 탁구경기를 빠짐없이 방송한다. 언제 어디서든 탁구를 접할 수 있다.

이동윤 남자 탁구는 단체전 세계랭킹이 3위로 밀렸다. 독일이 2위다. 우리가 계속 2위를 유지하다 랭킹 포인트에서 밀려 3위로 떨어졌다. 그런데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거라 2~3위권 정도로 내다본다. 여자 탁구는 옛날에는 2~3위권이었는데 요즘은 좀 떨어졌다. 2010 모스크바 세계 선수권에서 처음으로 4강에 못 들었다. 그래서 랭킹이 5위까지 떨어졌다가 다행히 이번 도르트문트 대회에서 4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세 명의 실력이 고른 나라는 드물다. 유럽 같은 경우엔 에이스 한 명만 뛰어난 국가들이 많다. 단체전은 세 명이 필요하다.

중국 탁구는‘ 대상 탁구‘’, 전진 탁구’라 불릴 정도로 간결하고 빠르다. 공이 정점에 오르기 전에 재빨리 때리고,최대한 탁구대에 붙어서 경기한다. 유럽 탁구가 하락세로 접어든 이후, 중국 탁구가 선진화된 탁구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가야 할까, 혹은 우리만의 방식을 개발해 나가야 할까?
김택수 글쎄,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탁구를 친다. 탁구는 네트를 치고 하는 종목이라, 가장 높은 정점에서 공을 때리는 게 제일 안전하다. 배구랑 마찬가지다. 올라오는 공을 치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중국이 빨리 친다기보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선수들이 좀 늦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탁구는 미세한 차이가 중요하다. 오히려 일본 여자 선수들이 빠른 탁구를 구사하는데, 중국에 비해 파워가 떨어진다. 우리 선수들도 최근 많이 빨라지는 추세인데, 정확도나 기술의 완성도가 아직 떨어진다. 우리만의 방식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중국 탁구를 모방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만의 고유한 장점이 예전엔 확실히 있었지만, 중국은 이미 그런 장점도 다 흡수했다.

양영자 누가 더 빠른 타구점을 잡아 공을 때리느냐가 현대 탁구에선 매우 중요하다. 중국 탁구는 정말 빠르다. 이런 기본적인 차이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복훈련이 필요하다. 한국 탁구의 세부적인 강점을 계속 유지하는 건 좋지만, 우리 식의 탁구를 고집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공격할 때 드라이브와 어택을 함께 구사하는 점은 한국 탁구의 전통적인 장점이다. 이런 장점은 유지하되, 중국 탁구의 좋은 점은 빨리빨리 공부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중국 탁구를 보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탁구가 완벽히 구현되고 있다. 서브, 서브 넣고 공격 자세, 공격, 그 다음의 랠리….

이동윤 우리도 이제 전진해서 치라고 교육하는데, 선수들이 밀리다 보니까 자꾸 뒤로 가는 거다. 한국 탁구만의 기술 같은 건 없다고 본다. 서브든 공격이든 선수 스스로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 얼마나 범실을 없앨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현재 한국 탁구는 시스템이 무너져 있다. 옛날엔 태릉 말고 기흥에 탁구 훈련원이 따로 있었다. 거기서 초등학교 대표부터 국가대표까지 다 같이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유남규, 현정화는 중학교 때부터 선배들 공 받아주면서 컸다. 지금 태릉에는 대표팀이랑 상비군만 들어가 있다. 그보다 어린 연령대는 따로 훈련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기초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 좀 이름 있는 코치들은 탁구장에서 개인교습만 해도 한 달에 5백만원 정도 번다. 당연히 돈이 안 되니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려 들질 않는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코치들이 실력이 제일 떨어진다. 양하은은 오른손잡이인데 어릴 때 왼손에 힘을 꽉 주고 탁구채를 휘두르라고 배웠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중국 선수들이 사용하는 러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이 강한 이유는 중국산 러버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탄력이 좋고 타구 시 스피드가 죽지 않는데다, 러버 표면이 끈적끈적해 공을 컨트롤하기 편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국가대표 김민석과 서현덕은 마카오 동아시안게임을 치르던 도중“ 중국 탁구의 비밀은 고무에 있다”“, 탁구공을 러버에 올린 뒤 거꾸로 뒤집었는데 공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중국산 러버가 공에 회전을 걸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엔 거의 장점이 없다고말한다. 어느 쪽이 사실인가?
김택수 국제 연맹에서 러버 접착제에 대해 규제하고 있지만, 중국은 유해물질 없이 탄력 있는 러버를 만드는 기술이 있다. 선수들에게 어떻게 제공되는지도 비밀이다. 실제로 회전력과 탄력 모두 뛰어나다.

양영자 중국 러버가 유리한 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탁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러버가 아니라 공을 때리는 순간의 임팩트 기술 그 자체다. 임팩트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탁구를 잘 치느냐 못 치느냐가 결정된다. 즉, 중국 선수들은 임팩트 시 회전을 걸거나, 힘을 싣는 동작이 아주 뛰어나다. 러버는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동윤 일본엔 수많은 용품 회사가 있다. 우리는 주로 일본 러버를 쓰는데, 그 회사들 기술이 앞서 있으면 앞서 있지 중국 기술이 앞섰다는 생각은 안 한다. 자꾸 지니까 나오는 핑계다. 물론 새롭고 혁신적인 용품이 나오면 적응할 때까진 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캘커타 세계 대회에 처음으로 이질 러버를 들고 나왔을 때, 우리가 졌다. 앞뒷면에 다른 러버를 붙이는 건데,앞뒤 색깔이 같아서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 탁구는 전통적으로 펜홀더가 강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론 셰이크핸드가 주류라 할 수 있다. 중국형 펜홀더로 이면타법을 구사하는 왕하오 역시“ 내가 셰이크 핸드 라켓을 사용했으면 지금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 말했다. 펜홀더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걸까?

김택수 펜홀더는 백핸드가 약점이라 포어핸드로 공을 때려야 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많다. 체력이 아주 좋아야 한다. 요즘같이 빠른 탁구가 득세하는 흐름에선 어렵다. 셰이크핸드 선수들이 훨씬 경제적인 탁구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상급 펜홀더가 사라지는 덴 분명 환경 문제도 크다. 셰이크핸드와 펜홀더를 사용하는 선수들의 수가 비슷하면 펜홀더에서도 훌륭한 선수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대회 나가는 선수들을 살펴보면, 셰이크핸드가 1천 명 정도라 치면 펜홀더는 1백 명도 안된다. 좋은 선수가 드물 수밖에 없다.

양영자 현대 탁구는 스피드 탁구다. 펜홀더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한국 탁구는 꾸준히 우수한 펜홀더 선수들을 배출해왔다. 펜홀더는 손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셰이크핸드보다 임팩트 기술이 다양하고 뛰어나다. 셰이크핸드가 구사할 수 없는 펜홀더만의 백핸드 기술도 있다. 펜홀더를 사용하는 중국 국가대표 마린의 탁구를 볼 때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펜홀더는 그런 아기자기하고 예술적인 탁구를 보여줄 수 있다.

이동윤 80년대 말까지 탁구장에 가보면 95퍼센트 정도가 펜홀더였다. 셰이크핸드는 수비형 선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 탁구장엔 펜홀더가 당시 셰이크핸드보다 더 귀하다. 펜홀더가 이 정도로 사장되어야 할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유승민도 불과 몇 년 전 펜홀더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렇게 펜홀더가 사라지는 덴 교육의 문제가 크다. 펜홀더는 처음에 가르치기가 어렵다. 셰이크핸드는 6개월 정도만 가르쳐놓으면 경기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 수 있다. 펜홀더는 3~4년은 해야 선수 레벨에서 경기할 수 있다. 지도자는 성적이 안 나오면 버티기가 어렵다. 자연히 셰이크핸드를 선호한다. 그런데 그 지도자들이 전부 펜홀더 출신이다. 셰이크핸드는 라켓을 잡는 기술만 다섯 가지 정도가 있다. 펜홀더만 쳤던 사람들이 셰이크핸드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면서 전부 셰이크를 가르친다. 지금도 상위권 셰이크핸드 선수들은 코치한테 배우는 게 아니라 외국 비디오 보면서 혼자 공부한다.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현재 남녀 톱랭커인 주세혁과 김경아는 수비가 강한 선수들이다. 두 선수 모두 ‘한 방’이 있긴 하지만, 수비형 선수는 결국 한계가 있다. 유승민 이후 꽤 오랜 시간 동안 뚜렷한 공격형 선수가 나오지 않는 까닭은 뭔가?
김택수 나와 유남규 선배로 한참 동안 대표팀을 꾸렸을 때, 다른 선수들이 많이 죽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유승민, 오상은, 주세혁이 건재하니 김민석, 정영식, 서현덕, 이상수 등 다음 세대가 기회를 많이 못 잡았다. 젊은 선수들 중엔 기존 대표들에 비해 공격적인 선수가 많다. 그동안 공격형 선수가 안 나왔다기보다는 스타가 없었다.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는 선수가 없을 뿐 지금 어린 선수들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다. 탁구는 금메달을 따야 소문이 나는 종목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구기 종목 중 세계대회에서 4강에 오르는 종목이 거의 없지 않나? 그런데 탁구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와도 이슈가 안 된다. 선배들이 너무 잘했기 때문에 후배들이 좀 손해 보는 부분이 있다.

양영자 일단 서현덕, 이상수, 정상은 같은 젊은 선수들이 공격력이 좋기 때문에 다시금 한국 탁구가 공격형 탁구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남자부는 꽤 희망적이다. 셰이크 핸드를 경험한 코치도 없고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현대 탁구의 흐름에 맞춰 잘 변화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당장 메달을 따올 수 있는 세계 최정상급의 스타 선수다. 그런 선수가 얼른 나와서 물꼬를 터줘야 한다.

이동윤 한동안 투자가 안 되면서 선수 수급에 문제가 있었다. 다행히 요즘 어린 선수들, 특히 남자 탁구는 굉장히 비전이 있다. 5년 이내에 중국을 꺾고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선수들이 지금 나와 있다. 반면 여자 탁구는 아쉽다. 세계랭킹을 높이려면 대회에 자주 나가야 하는데, 재정이 열악하니까 세계대회에 출전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유망주들이 1라운드부터 자꾸 중국 선수들이랑 붙게 된다. 그런 식으로 맨날 지고 경험을 못 쌓다 보면 선수가 클 수가 없다. 또한 수비형 선수는 원래 늦게 두각을 나타낸다. 김경아, 주세혁이 옛날부터 수비를 잘했던 게 아니다. 수비 선수는 원래 서른쯤은 되어야 진가를 발휘한다. 그래서 선수생활을 오래 하는 거지, 처음부터 수비형 선수만 많고 공격형 선수가 적고 그랬던 건 아니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가 모두 정해졌다. 주세혁, 오상은, 유승민, 김경아, 박미영, 석하정이 출전할 정이다. 어느 정도의 성적을 기대하나?
김택수 개인전은 상당히 어렵다. 요즘 김경아가 잘하고 있지만, 중국 선수들이 출전 안 한 대회의 성적이었다. 결국 중국 선수를 꺾지 못하면 메달이 어렵다. 다만 단체전은 남녀 모두 메달을 기대해볼 만하다. 동메달이면 절반의 성공, 결승 가면 성공이다.

양영자 남자 단체 은메달, 단식 동메달을 기대해본다. 탁구는 상성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주세혁은 유럽이랑 할 때 유리하고, 아시아 선수와 붙을 땐 유승민이 이겨줘야 한다. 여자부도 마찬가지다. 김경아나 박미영은 유럽 선수들과 해볼 만하다. 중국 선수는 누구나 어렵겠지만, 특히 석하정이 분발해줘야 한다.

이동윤 남자는 단체전 2번 시드를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3번 시드를 받게 되면 결국 일본하고 동메달 싸움이 될 것 같다. 여자도 비슷한 상황이다. 남녀 모두 일본과 3, 4위전을 할 가능성이 크다. 남자부는 일본보다 우세라고 본다. 개인전은 김경아의 동메달을 기대해 본다. 사실 올림픽은 세계선수권보다 메달 따기가 쉽다. 국가별로 두 명씩밖에 못 나오니까, 중국 선수 한 명 이기면 결승에 갈 수 있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직이 전임제로 바뀌었다. 집중교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지도자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
김택수 사실 나도 회사에서 잘 안 보내준다. 소속팀을 두고 갈 수가 없다. 전 대표팀 감독들이 이제껏 전임감독이 아니라고 해서 책임감 없이 선수들을 지도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전임제 안 한다고 경기력이 나쁜 게 아니다. 물론 사심 없이 집중해서 가르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전임감독이 성적을 못 내면 문제가 생긴다. 돌아갈 곳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다른 지도자들이 전임감독 자리를 꺼려할 수 있다. 좋은 지도자는 많지 않다. 더 준비를 하고 시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양영자 감독 자리가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실제적으로 선수와 더 많이 호흡하고 부딪히는 건 코치다. 코치는 아직까지 전임제가 아니라 고를 수 있는 지도자의 폭이 넓다. 감독만 전임제로 가는 건 괜찮은 방법이다. 감독은 전체적인 틀을 만들고 선수단을 이끄는 역할이 큰데, 전임감독이 오랫동안 선수단과 함께할 경우 선수들이 좀 더 안정적인 상태에서 경기할 수 있다.

이동윤 너무 바쁜 사람들은 전임감독에 앉힐 필요가 없다. 얼마나 절박하냐, 얼마나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대표선수쯤 되면 감독이 선수에게 기술을 가르칠 단계는 아니다. 얼마나 선수들을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훈련의 양 덕이다. 지금처럼 해선 중국을 못 따라잡는다.365일 대표팀 선수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

반면 아직까지 중국 출신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쇼트트랙, 양궁 등 한국의 강세종목 지도자들은 해외에서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탁구계에 중국인 지도자를 고용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건 왜인가?
김택수 중국인 트레이너(훈련 상대)를 고용하고 있긴 하다. 기술 교류나 트레이너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감독을 맡기기엔 언어 문제도 있고, 좋은 지도자를 데려오기도 좀 어렵다.

양영자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꾸준히 자부심을 가져야 할 부분도 있지만, 버려야 할 자존심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중국의 훈련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실업팀 대한항공에선 중국인 코치를 영입한 적이 있다. 대표팀도 가능하다면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이동윤 점점 문을 열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동안은 좀 배타적이었다. 국내 탁구인들도 실업자가 많은데 굳이 외국인을 데려와야 하나,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중국도 좋은 지도자가 파견될 경우 결국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수한 지도자들은 잘 안 보내주려 했다. 그러나 중국도 중국이지만, 셰이크핸드를 배우기 위한 유럽이나 동구권 지도자가 더 필요하다. 일본은 러시아 지도자를 고용해 셰이크핸드 실력이 급상승했다.

당예서, 석하정, 전지희 등 중국 출신 선수들이 꾸준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 탁구에 어떤 영향을끼칠까?
김택수 일단 한국 토종 선수들이 잘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 뛰고 있는 중국 출신 선수들에게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을 가하는 건 안 된다. 전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선수들이다. 단, 국가대표의 경우 장기적으로 한국 토종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들이 반성하고 분발해야 한다.

양영자 중국 출신 선수들이 한국 탁구에 가세하면서 중국 탁구를 좀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토종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그렇지만 1등하고 잘하는 선수를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차별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껏 국제 대회에 나가기 전까진 중국 선수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지금은 국내에서 미리 붙어볼 수 있다. 국내에서 못 넘으면 대회 나가서도 못 넘는다. 만약 토종 선수들이 속상한 맘이 든다면, 더 잘해서 이겨야 한다.

이동윤 좋은 경쟁 상대가 생긴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도 괜찮다. 의외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깨어 있다. 당예서는 중국 출신이지만 ‘당사모’라는 팬클럽도 있다.

중국 탁구는 2000년 프로 리그 출범 이후 더욱 막강해졌다. 국내 탁구계에서도 프로화에 대한 움직임이 서서히 생기고 있다. 지난해 8년 만에‘ MBC 탁구 최강전’이 부활하고 이 대회를 대한탁구협회에서 주관했다. 그러나 지난해 용인시청과 여수시청 실업팀이 해체되는 등, 아직 시기상조란 의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택수 무조건 찬성이다. 앞으로 한국 탁구가 살 길은 프로밖에 없다. 연봉 때문이 아니다. 프로화가 되면 경기력이 현저히 나아질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많은 자료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충분히 어필이 안 돼서 안타깝다.지금 실업팀 예산의 30퍼센트, 많으면 50퍼센트 정도만 더 쓰면 프로구단 운영이 가능하다. 아직 준비가 미흡하다고 말하는데, 그럼 과연 언제 준비가 가능할까? 프로야구도 준비가 완벽한 상태에서 출범한 게 아니다. 관중이 있는 상태에서 경기하는 것과 없는 상태에서뛰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지금 실업팀 선수들은 텅 빈 경기장에 아침부터 나와서 경기를 한다. 평일 저녁에만 경기해도 팬들이 와서 볼 수 있다. 어린 스포츠 유망주들에게도 탁구를 권유할 명분이 생긴다. 지금 한국 탁구의 많은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건 프로밖에 없다. 공청회, 워크숍, 기술 도입, 장기적인 계획 수립도 좋지만, 프로화가 우선이다.

양영자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있던 실업팀도 해체하는 마당이다. 탁구 인기가 좀 더 올라가야 한다. 일단 관중이 와야 프로가 잘 돌아갈 수 있다. 단, 계속 미루고 미루면 못한다는 말도 맞다. 실패할 때 하더라도 일단 한번 해보는 건 괜찮은 것 같다.

이동윤 반드시 프로화를 해야 한다. 지금 실업팀 정도의 예산이면 당장 프로화를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요즘 탁구는 신문사에서 세계선수권 취재도 안 보내는 종목이 됐다. 예전엔 안 그랬다. 영화 <코리아>가 잘되고 있긴 하지만, 사실 탁구는 남북 단일팀 때문에 용도폐기된 종목이다. 그전엔 남북이 종종 4강 길목이나 결승에서 만나곤 했다. 남북 대결이 있다 보니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탁구를 많이 밀어줬다. 그런데 단일팀 이후 남북 대결 효과가 없어지면서, 탁구는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프로화가 필요하다.

김민석, 서현덕, 정영식, 양하은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는 중국을 잡을 수 있을까? 경기 방식이나 역량으로 볼 때 누가 가장 유력할까?
김택수 확실한 결과를 보여준 선수가 없다. 국내에서 누가 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아직 중국을 못 꺾었다. 한두 경기론 안 된다. 큰 대회 타이틀이 필요하다. 강한 선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선수가 강한 거다.

양영자 위협을 줄 순 있어도 당장 중국 선수들을 꺾기는 어려운 것 같다. 미래엔 충분히 해볼 만하다. 김민석이 가장 유력하다. 김민석은 지금 중국에서도 굉장히 위협적인 선수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 선수들도 못하는, 예측이 어려운 백핸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파워와 체력만 보강하면 확실히 경쟁력이 있다.

이동윤 남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김민석 같은 경우 구질이 아주 묵직하다. 야구로 치면 선동렬의 직구 같은 맛이 있다. 양하은은 아직 어렵다.

한국 탁구에도 분명 세계 최강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양영자, 현정화, 유남규, 김택수…. 지금 대표선수들과 당시의 대표선수들 간엔 어떤 차이가 있나?
김택수 환경은 우리 때보다 좋아졌다. 아무래도 선수들의 의지가 예전만 못하다. 중국 선수들이 워낙 강하니까 패배의식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양영자 첫째로 풋워크를 꼽고 싶다. 당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거의 전부 펜홀더였기 때문에 경기 중 좌우로 훨씬 더 많이 움직여야 했다. 자연스레 풋워크가 우리 대표팀의 장점이 되었다. 둘째론 집중력이다. 중국은 열세 살 때부터 가능성 있는 선수와 없는 선수를 구분해서 훈련시킨다. 열여덟 살쯤 되면 확실히 진로가 결정된다. 대성하지 못할 것 같으면 일찌감치 탁구를 접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히 강한 선수만 살아남게 되고, 그런 선수들은 탁구에만 집중한다. 반면 한국 탁구는 예전에 비해정신적인 강인함이 좀 떨어진 것 같다. 하다가 잘 안 되면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었기 때문일까?

이동윤 현정화가 탁구 최강전에서 양영자를 만나면 경기가 30분이면 끝났다. 양영자 서브를 현정화가 못받았다. 2회 대회까지 그랬다. 그런데 결국 현정화가 3회 대회에서 양영자를 이겼다. 옛날엔 그렇게 선배를 타넘으면서 성장했다. 요즘은 세대 간의 거리가 너무 멀다. 대표팀 훈련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초등학교 대표부터 국가대표까지 한꺼번에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잘하는 선수는 과감히 위로 올려 보내면서 선수를 키워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약해진 걸까, 중국이 강해진 걸까?
김택수 중국이 강해졌다. 우리도 빨리빨리 최신 탁구의 흐름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기술적인 변화가 더디다. 중국이 흘러가는 물이라면, 우리는 고인 물이라 할 수 있다.

양영자 우리가 약해졌든 중국이 강해졌든 일단 좀 제대로 싸워야 한다. 특히 노장 선수들이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어차피 못 이긴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지더라도 신인처럼 패기 있게 싸우다 졌으면 좋겠다.

이동윤 우리는 정체되었고, 중국은 꾸준히 성장했다. 당예서가 한국으로 나온 이유는, 중국에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최고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까지 와서 땀흘리고 있다. 그 정도 각오가 있어야 한다. 당예서는 정말 탁구밖에 모르는 선수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는 말이 아니다. 선수들이 빨리 프로 정신을 가져야 한다.

한국 탁구에서 딱 한 가지를 고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나?
김택수 빨리 프로화가 되어야 한다. 프로화가 되면 선수들 간의 경기력이 명확히 구분되고, 노력하는 선수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선수들 스스로가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내가 대우증권을 이끌고 있지만, 나 혼자 일방적으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양영자 탁구는 개인적인 운동이라 단결과 협동심이 부족할 수 있다. 뭐가 됐든 선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에선 대표선수들이 다같이 교회에 나가고 예배를 드리는 등 종교로 뭉쳤다. 중국 탁구는 세계 최강이지만 개인적인 성향이 다소 강해, 전통적으로 단식보다 복식이 약하다. 우리가 단합하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 88 올림픽에서도 중국 복식조를 구성했던 자오즈민, 첸징이 세계랭킹 1, 2위였지만 결국 우리가 이기지 않았나?

이동윤 협회. 현역 감독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팀 이기주의가 너무 심하다. 비선수 출신이 많아져야 한다. 여자 배구는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게 처음이자 역대 최고 성적이다. 당시 감독은 김한수라는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이었다. 김한수 감독은 세계 최상위권이던 일본 배구를 배우기 위해 자존심을 버렸다. 직접 일본 대표팀 감독을 찾아가 지도를 요청하고, 선수들을 일본에 보내 훈련시켰다. 이전의 선수 출신 배구인들은 일본 배구를 배울 생각을 안 했다. 비전문가가 감독이나 행정직을 맡으면 분명 장점이 있다. 탁구협회도 변해야 한다.

    에디터
    유지성
    스탭
    Illustration/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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