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 아들과 딸

아, 올림픽. 우리는 곧 이들의 얼굴을 보며 가슴 졸이는 밤과 낮을 보낼 것이다. 응원하고 기도하다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른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 10인을 만났다. 아니, 대한의 아들과 딸 열 명을 힘껏 안아주었다.

펜싱 구본길, 남현희

둘 다 세계 랭킹 3위. “랭킹 3위면, 동메달은 따겠다고 생각하는데, 시드 배정에서 유리할 뿐이에요.” 남현희의 눈망울은 흔들림이 없다. 구본길은 고개를 끄덕이다 푹 숙인다. 자신 없냐는 질문에 슬쩍 웃으며 대답한다. “아시안 게임보단 안 떨려요. 이제 군대도 안 가니까.” 병역 문제가 걸려 있던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 했다. 실력으로도 응당 그래야 했기에 시합 전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요즘은 너무 잘 자서 오히려 불안하다. 남현희가 맞장구친다. “요즘은 뭘 어떻게 할지 아니까 하나도 안 떨려요. 그래서 불안하죠.” 둘 다 불안하다는 얘기에, 사주 같은 거 안 봤냐고 채근했다. “부모님이 보신 것 같은데, 나쁘지 않다고, 괜찮다고…. 좋다니까, 얘기 안 할래요.” 구본길이 입을 다무니, 남현희가 다시 거든다. “제가 원래 꿈을 안 꾸는데, 요즘에 꿈을 좀 꿔요. 안 좋은 꿈인 줄 알았는데, 이게 다 길몽이라니까 기분은 좋죠.” 불안과 안심, 걱정과 확신 사이를 오가는 올림픽 한 달 전. 요즘 둘을 소개하는 수식어는 ‘금메달 후보’보다, ‘미남, 미녀’가 많다. “진짜, 모르겠어요. 훈남 검객이니 뭐니, 낯간지러워요.” 구본길이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면서 시선을 피하다, 이청룡 닮았다는 소리에 활짝 웃으며 덧니를 보인다. 남현희는 사뭇 큰 포부가 있다. “손연재 선수가 실력도 있지만, 예쁘니까 리듬체조도 주목받잖아요. 저도 좀 더 예뻐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뒤트임 하고, 쌍꺼풀도 제대로 하고, 좀 더 예뻐져서 올림픽 시상식에 나가려 했는데…. 참, 턱은 협찬도 들어왔어요.” 사이다보다 시원한 대답. 올림픽 끝나고 방송에서도 그런 이야기 좀 해달라니까, 이번엔 까스활명수 같은 대답. “애부터 갖구요.”

유도 김재범, 황예슬

올림픽에서 유도는 한 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기대조차 잊었던 게 무안해 미안할 뿐. 김재범이 한판으로 메치듯 답한다. “긴장감은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주위 분들이 만드는 거 같아요. 올림픽도 이름만 틀린 대회일 뿐인데. 금메달 따본 적도 없고, 부담 없어요. 도전자니까.” 죽기 살기로 은메달을 따냈으니, 이번엔 ‘죽기’로 해서 금메달을 딸 거라고 했다. 공연히 인터뷰마저 부담스럽게 하나 싶었더니 이내 들어 메친다. “부상당했었는데, 액땜했다고 생각해요. 무슨 큰 복이 있으려는지. 그치 예슬아?” ‘티 없이 맑음’이라고 이마에 써 붙인 듯한 황예슬은 올림픽 출전이 처음이다. “못 딴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딸 거예요.” 황예슬은 도복을 입기 전 피아노를 쳤다. “예슬이는 원래 손도 예쁘지만, 지금 이 손이 더 예쁜 손이에요.” 황예슬의 길고 가는 다섯 손가락은 예외 없이 마디가 부풀어 있었다. 1988년 추석날 밤, 김재엽이 용무늬가 한껏 그려진 한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랐던 밤을 우리는 하필 기억한다. 사춘기 소년이 사회의 어른이 되었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가슴을 졸이며 그 악착같은 한판을 들여다본다. 지식도 꽤 있다. 효과가 둘이면 유효고, 유효가 둘이면 절반이며, 절반이 둘이면 한판이라는 것. 그리고 그 하얀 도복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짧고 검은 머리. 유도는 기를 쓰고 버티다 벼락같이 내리꽂는 천둥 같은 스포츠다. 김재범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한다. “사실 현재로선 다들 긴장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자리가 좀… 딱히 좋아할 상황은 아니죠. 상태도 다들 안 좋고. 치료 받아야 해요.” 정색하나 싶더니 메이크업을 받고 와선 다시 너스레를 떤다. “저 눈썹 문신하면 이쁠까요? 예슬아, 우리 고민 좀 해볼까?” “전 아이라인 돼 있어요. 눈썹은 원래 많아서 괜찮아요. 사진 나오면 재범 오빠만 잘라내고 집에 걸어놔야지.” 김재범은 말을 잃었다. 요즘 애들 하루 다르다더니, 그런 배짱이면 구라파 장신이든 미국 떡대든 그 무엇이 두려울까 싶다. 저렇게 앳된 얼굴이면서. 김재범이 마지막으로 선언한다. “저는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고 들어갑니다. 진다는 생각은 절대 안 해요. 제 유도엔 방어가 없어요. 무조건 공격이지.”

핸드볼 주희, 박중규

주희는 말할 때 얼굴이 스르르 붉어졌다가 말이 끝나면 다시 뽀얘졌다. 박중규는 부상 입은 한쪽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금메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둘을 바라볼 땐 딱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올해는 제발, 애가 타고 단장이 끓기는 드라마 없이, 속 시원히 경기를 볼 수 있었으면…. “저희, 죽음의 조예요. 그 소식을 브라질이랑 연습 경기 하던 중에 들었어요. 진짜 한숨이 이렇게 푸….” 박중규가 옆에서 배추도사 무도사처럼 허허 웃으며 말했다. “남자 핸드볼도 죽음의 조예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죠. 넌 특히! 골키퍼잖아.” 주희가 바로 받는다. “다 집어치우고 경기만 생각하려고요.” 주희가 경기를 위해 옆으로 확 제쳐놓은 건 여러 가지다. 틈날 때마다 하는 남자 연예인 이야기(특히 김수현), 대표팀 언니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꽉 잡고 있는 피부과와 미용실 정보 같은 것들 말이다. 여자 대표팀은 이렇게 똘똘 뭉친 여고 동창생들 같다. 그러니 눈물의 드라마는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행여 보는 사람이 먼저 눈물을 흘릴지는 모르겠으나. 남자 대표팀은 어떨까? “다른 종목 선수들보다는 아무래도 다정다감하죠. 저 같은 공격수는 좀 다혈질이지만요.” 사진을 찍기 위해 박중규가 높이 뛰어 올랐다. 동그란 눈이 매서운 기운을 뿜었다. 두꺼운 팔에서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주희가 비밀 얘기하듯 말했다. “저런 얼굴로 골키퍼 앞으로 다가오면 진짜 무서워요. 어떤 땐 공에 맞아 쌍코피가 주루륵 흘러요. 근데요,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아요. 죽어도요.”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