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여름향수 5

여름이면 또 생각난다. 전설이요 상징인 남자 여름 향수 5.


ENERGETIC 폴로 피케 셔츠와 면 반바지를 입은 남자에게서 풍길 법한 향기라고 보면 정확하다. 공간으로 치면 수영장이나 락커룸의 샤워실. 씻고 나와서 방금 얼굴에 뭘 착착 두들긴 젊은 남자들이 있는 곳. 대부분의 여름 향수들이 오이 향에 의지하지만 폴로 스포츠는 굳이 따지자면 레몬 향 쪽이다. 그래서 남자 향수인데도 청순한 분위기가 있다. 폴로 향수 삼총사 블랙, 블루, 스포츠 중 가장 젊고 유쾌하고 만만해서 대학생들이 특히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니 병부터 ‘새파랗게’ 어린 놈의 활기가 있다. 1995년 출시되었고 아직까지 늙지도 철들지도 않고 여전히 청청하다. 오드 트왈렛 75ml 5만8천원, 폴로 스포츠.

COOL 잘 드는 칼로 착착 깎아놓은 것 같은 유리병은 1988년 처음 나온 후 지금껏 바뀌지도 않았는데, 볼 때마다 모름지기 남자 향수 병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향수계의 오스카라는 피피어워드에서 베스트 남성 향수, 베스트 광고 캠페인 등을 수상했고, 20년이 넘도록 여름이면 가장 잘 팔리는 향수 중 하나로 꼽힌다. 바닷물에 옴팡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남자를 전면에 배치하는 쾌남 이미지의 광고 캠페인도 모델만 바뀔 뿐, 망설이는 기색 없이 이어졌다. 남자들의 첫 향수이거나 가장 오래 쓴 향수, 그래서 여자들에겐 옛 애인의 냄새로 기억되는 향수. 오드 트왈렛 75ml 6만3천원, 다비도프 쿨 워터.

 

SENSUAL 톡 쏘는 각별한 향이 있다. 생강이나 담배 꽃인가 하면 그것만은 아닌 것 같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향취다. 불가리 블루 옴므가 아무리 흔한 향수가 됐어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이 첫 향 때문이다. 여름 향수로는 드물게 따뜻한 잔향이 있고, 시트러스보다는 스파이시와 우디 계열이다. 처음엔 시원하지만 곧 깊고 섹시한 느낌이 이어진다. 그래서 2001년 출시 이후 줄곧 여자를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남자 향수로 인기가 많다. 한 가지 단점은 향이 오래 안 간다는 것. 하지만 큰 병으로 사서 자주 뿌린다면 그것도 별 문제는 아니다. 오드 트왈렛 50ml 8만6천원, 불가리 블루 옴므.

CLEAN 씨케이 원 향수는 향보다는 이미지다. 젊고 중성적이며 화끈한 부류라는 자부심 같은 것. 파비안 베론이 만든 병은 휴대용 위스키 병처럼 무뚝뚝하게 생긴데다 뚜껑도 굉장히 캐주얼하다. 그래서 1994년, 이 향수가 처음 나왔을 땐 디자인의 무성의함에 대해서 지탄 받았다. 곧 그게 당대의 아이콘이 될 줄은 그땐 아무도 몰랐겠지. 무조건 남자는 ‘머스크’하고 여자는 ‘플로럴’하게 구분짓던 향수 업계에서 처음으로 내놓은 남녀 공용 향수라는 점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녹차 향을 기본으로 샴푸 향 같기도 하고 재스민 향 같기도 한 것이 낮게 퍼진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깨끗하고 무구한 향기. 오드 트왈렛 50ml 4만9천원, CK one.

 

FRESH 유연하고 부드럽다. 남자 향수라면 우선 내세우는 ‘스파이시함’이 거의 없다. 날카롭거나 자극적이지도 않다. 상쾌하고 세련된 향인데 애들 같다거나 새초롬한 풍도 아니다. 생각나는 건 바닷가의 바람, 싱싱한 샐러드, 과장해서 말하면 방금 잡은 단단한 오징어? 나무나 담배 향 대신 물 향이 가득하다. 독한 향수를 싫어하는 남자와 꽃과 과일 향 향수를 싫어하는 여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1996년 출시 이후 8천만 병 넘게 팔렸다. 이세이 미야케 로디세이, 르 빠 겐조 옴므와 함께 오이 향 향수의 대표 주자. 단, 그 둘보다 조금 더 지적인 뉘앙스가 있다. 오드 트왈렛 50ml 7만2천원, 아쿠아 디 지오 뿌르 옴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