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 않는 꿈이어라, 이은미

다 지나가는 거라고. 우울이나 슬픔, 독기도 결국은 그런 거라고 이은미가 말했다.

장식이 있는 흰색 셔츠는 문영희, 담백한 흰색 셔츠는 에이 콜렉터, 검정색 반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즘 당신은 변한 것 같다. 이은미의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날이 올 줄이야. 괴로움 자체를 즐기는 것이 결국 살아남는 길이었다. 한참 우울할 때는 선배들이 충고를 해도 몰랐다. 당장 지금 지옥불 안에서 활활 타고 있으니까. 근데 좋은 일이 생겼다고 너무 기뻐해도 지나가는 것이고, 나쁜 일도 지나가는 거라는 걸 이제 알았다.

당신이 한국 공연장 실태에 대해 쓴 칼럼이 실린 2004년 1월호를 가져왔다. 2001년 에는 “노래하지 않는 가수는 가수가 아니라 ‘립싱커’라고 불러야 한다”는 칼럼이 있다. 요즘 인터뷰에도 그 칼럼 얘기가 계속 나온다. 당신이라서, 이은미의 기백으로 쓸 수 있는 글이다 싶었다. 그때 그랬다. 그러다 2004년 연말 공연 끝내고 우울증이 시작됐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 “이은미 씨, 이제 사십 대예요. 이십 대처럼 몸을 사용하시면 몸이 못 견뎌요.” 몸과 마음이 같이 나이 들어갈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다. 그 차이가 너무 크니까 충돌이 생겼다. 몸이 못 견디겠다고 신호를 하는데 나는 안 듣고 있었다. 어느 순간 건강을 잃게 되니까 마음줄도 탁 놓게 됐다. 그 공허. 그렇게 삼 년 반을 지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나는 그래도 노래해야 했다. 밴드도 먹여살려야 했다. 그런데 마이크 앞에만 서면 절망감이 밀려왔다. 하하, 진짜 괴로웠다.

어딘가에 100퍼센트 헌신하는 사람이 그걸 잃었을 때의 허무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늘 시달리다가 그런 일까지 겹쳐지면 그 충격이 몇 배로 온다. 즐기면서 해야 새 것이 계속 형성된다. 자기 만족도 생긴다. 그래서 뭘 만드는 사람들은 적당히 ‘자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순간엔 “나 이대로 죽으면 너무 억울해!” 그러면서 버킷 리스트도 썼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그러면서.

리스트에 있던 건 다 했나? 일단 스쿠버다이빙, 했다. 한국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기는 너무 힘들어서 아직 못했다. 미국 같은 데 가야 되는데, 강사하고 한 번 뛰어내리는 건 의미가 없다. 나는 내가 스스로 할 때까지 해야 한다. 혼자 여행한 적도 없었다. 철이 들면서 음악을 시작했고, 늘 일만 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스태프들이 항상 옆에 있었다. 밤에 산에 올라가서 혼자 있어 보기, 그런 걸 썼다. 소박했고, 거의 다 했다. 아, 이건 정말 아직까지도 못했다. 내 마음에 쏙 들도록 온 집 안 살림을 다 뒤엎고 정리하는 거.

하하. 그건 엄두가 안 나서 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리모컨 버튼 사이 먼지까지 다 제거해야 하는 성격이라서. 맞다. 평생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 신체의 한계를 느껴보는 것, 그 기쁨, 짜릿함. 몸을 움직이면서 느끼는 성취감이나 만족도가 노래할 때만큼 크다는 걸 안다. 그릇 빚는 것도 배워보고 싶다. 담배 많이 피우는 작가 친구들한테 투박하지만 자주 비우지 않아도 되고 냄새도 밖으로 안 배어나오는 재떨이를 만들어주고 싶다. 커피 좋아하는 친구한테는 식지 않고 넉넉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잔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런 것들이 꿈이다, 이제는.

이은미의 말을 듣는 게 무슨 소용이지? 이은미는 노래로 얘기하는 사람 아닌가? 무대에 있는 당신이 진짜 아닌가? 사실 그런 회의가 있다. 그게 맞을 수도 있다.

<위대한 탄생>도 있었지만, <나는 가수다 2>가 그 생각을 바꿨다. 당신이 변한 것 같았다. 말도 노래 같았다. 진심이었고, 음률도 있었다. 하하, 그렇게 들렸나? <위탄>때는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오는 아이들은 몇 단계 걸러져서 가장 마지막에 서 있는 아이들이다. 더 잘하는 아이들은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뭔가 하고 있거나 자기 음악을 하고 있다. 국카스텐처럼 그냥 자기 걸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아직 잡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실력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더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화면에 좋게 보이기 위해서 친절하게 대하는 게 아이들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디션 이후가 더 큰 문제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게 더 컸다. 그게 가르침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방)시혁이랑 나만 했다. 우리가 욕먹는 게 너무 익숙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그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다. 이 아이들이 정말 간절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간절함을 오기로 바꿔줘야 했다. 그런데 제대로 못한 것 같다. 큰 후회로 남았다.

<나는 가수다>에서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남는 어휘가 별로 없다. 말에도 온 기력을 다하기 때문일까? <위탄> 녹화를 하거나 <나가수> 생방을 하고 나면 콘서트 2회 한 것처럼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나가수> 초반은 생방송이었는데, 나는 방송을 진행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진행 시간을 감안해야 했고, 애드리브도 필요했다. 거기 서 있으니 여기저기 카메라에 불 들어오고 난리가 나는 거다. 긴장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는데, 나는 방송하고 나면 다리 기운이 풀려서 푹 주저앉을 정도였다.

 

이은미는 자주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고, 그만큼 크게 웃기도 했다. 오후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는데, “아, 꼭 인생 같네요”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식이 있는 흰색 셔츠는 문영희, 담백한 흰색 셔츠는 에이 콜렉터, 검정색 반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능숙해서 긴장을 안 했다기보다, 그냥 가시 방석 위에 버티고 선 느낌이었다. ‘나 되게 아픈데 할 수 있다’ 그런 오기. “그런데 완규야, 상처는 다 아물게 되어 있다” 같은 말들.. 긴장을 즐기는 거다.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가수들은 대부분 솔리스트다. 혼자 활동하다 보니 그 시대에 같이 방송을 하지 않으면 얼굴 볼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다른 가수들 무대를 보는 게 무척 행복하다. ‘아, 저 친구가 저런 걸 하는구나. 응? 얘가 이런 걸 갖고 있었어?’ 그런 게 새롭게 들린다. 큰 기쁨이다. 기왕이면 시청자도 프로그램을 더 즐길 수 있게 ‘여러분, 이분이 지금 이런 거 했는데, 들으셨나요?’ 그런 식으로 같이 즐기려고 한다. 트집 잡으려는 사람들은 그것도 싫은 모양이다. “왜 잘난 척하냐” 뭐 그런 말들.

그런 사람들이야 어련하겠나. 그나저나 이은미가 본 <나는 가수다> 무대는 뭔가 달랐나? 다르지 않다. 무대는 다 똑같다. 긴장하고, 불편하고, 치열하고, 신성하다. 객석은 내가 이은미이길 바라지 김완선이길 바라지 않는다. 어디서든 ‘내가 이은미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가 제대로 된 무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몰입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대중이 가수에 대한 어떤 존중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아니었을까? 그들이 긴장하는 모습에서 쾌감을 느끼는 부류도 있겠지만.. 지난 시즌의 그런 모습들을 덜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잔소리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시즌 1 시작할 때부터 잔소리를 했다. <나가수>는 1년 이상을 정말 지독하게,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당신을 섭외하려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다 동원해서 그렇게 했다. 그래도 안 나갔던 건 지나치게 자극적인 편집이 일단 싫었고, 가수들을 일렬로 쭉 앉혀놓고 1등은 누구, 7등은 누구 발표하는 모습도 싫었다. 가수들의 반응도 싫었다. 1등을 하면 굉장히 좋아하고, 꼴등을 하면 미안해하는 그 표정. 왜지? 그 무대에서 한 번 7등을 했다 해서 그가 7등 가수는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너무 화가 났다.

한국에서 사는 거, 답답하지 않나? 답답하다. 이건 음악을 듣자는 거야, 아니면 평가를 하자는 거야? 가수들도 처음에는 “순위랑 상관없이 오랜만에 마음껏 내 노래를 할 거야!” 마음먹고 왔다가 자기가 6등, 7등을 해버리니까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심지어 <나가수>식 편곡이 생겼다. 싫었다.

‘가창력’이라는 단어도 이상하지 않나? “그게 대체 기준이 뭔데요?” 내가 항상 물어본다. 물론 태초부터 음악이 있었다고 하니까, 점점 체계화되면서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적어도 듣기에는 좋더라는 정도의 규칙이 있다. 그걸 평균적으로 평가하는 거겠지만,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 누구나 피카소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 건 아니다.

미디어도 같은 장단이었다. “한 곡에 전조 두 번 대박 무대” 그런 것들.. 오늘 화장하면서 그 기사 얘기를 들었다. “이은미 가발 벗는 퍼포먼스.” 메이크업 해주는 아이가 “언니, 그거 퍼포먼스 였어요?” 그래서 “야, 미쳤니, 내가?” 그랬다. 그거 벗으면 머리가 다 땀에 젖어서 흉해지는데 내가 미쳤다고 그걸 퍼포먼스로? 내 머리가 짧아서 가발 고정이 잘 안 됐다. “언니, 그러다 벗겨지는 거 아니에요?” 작가들도, 우리 밴드도 다들 한마디씩 했다. 고개를 딱 한 번 흔들었는데 그 가발이 뒤로 확 갔다. 하하. 그랬는데, 마치 내가 그걸 연출하려고 한 것처럼 기사가 떴다. 그게 그렇게밖에 이해가 안 될까? 그럼 나는 그 가발 벗는 걸로, 퍼포먼스로 한 번 떠보려고 한 꼴밖에 안 되는 거 아닌가? 글쎄, 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사실, 노래는 상상력 80퍼센트에 들리는 것 20퍼센트 아닐까? 가끔 사운드 엔지니어랑 어떤 톤 하나 때문에, 그 몇몇 음정 때문에 밤을 새울 때가 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듣는 사람들은 우리가 음표 몇 개 때문에 이러는 걸 알까?’ 사실 듣는 분들은 그것까지 몰라도 된다. 들리는 거 20퍼센트에 상상력 80퍼센트. 그 말이 정답이다. 음악은 그렇게 들어야 한다. 가끔 홈페이지에 질문이 올라온다. 요즘은 나름 마니아 문화지 않나? 또 이렇게 얘기하면 욕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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