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파이는 누가 다 먹었을까?

주말 예능 시청률이 떨어졌다. 아니, 통째로 증발해버렸다. 시청자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주말 프로그램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마다 방송국 사무실의 어른들은 골이 아프지만, 후배와의 식사 자리에서 비관적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후배들은 무너지는 전선에 투입될 순서를 기다리며 눈치를 살핀다. 방송국, 적어도 주말 예능을 전쟁으로 비유하는 건 꽤 똑 떨어지는 비유인 것 같다. 지난 7월 첫째 주 일요일의 주말 예능 시청률은 KBS 11.3%, SBS 17.2%였다. MBC는 <나는 가수다 시즌 2>로 6.6%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주에 KBS 19.1%, SBS 12.9%, 그리고 MBC <나는 가수다 시즌 1>이 18.3%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올여름은 꼴찌였던 SBS의 완벽한 역습이다. 나는 KBS에 다니고 있으니까, 이런 일은 좀 곤란하다. 사실 일요 주말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의 수도’ 같은 상징성을 가진다. 두 시간 반이 넘는 방송시간이나 회당 7억에 가까운 광고 수익 때문만은 아니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잡고 있으면 다른 건 다 내줘도 된다”고 말할 정도로, 주말 예능은 해당 방송국의 자존심 문제에 가깝다. 이 도성이 함락된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만도 했다. “이게 다 파업 때문이다”라는 말은 관리자들로서 상당히 손쉽게 책임을 덜 수 있는 논리였지만, 전적으로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걱정하던 일이 조금 더 빨리 닥친 것뿐임을 다들 알기 때문이었다.

작년 1월 25.6% 대 9.4%로 시작된 KBS와 SBS의 주말 시청률 싸움은 일 년이 지난 올해 1월 22.1% 대 17.4%까지 격차를 좁혔고, ‘1박2일’이 출연자 교체의 영향을 받고 있던 4월 셋째 주에 15.0% 대 15.4%로 역전을 허용했다. 이날을 변곡점으로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의 주도권은 SBS로 넘어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일요일의 MBC는 <마지막 황제>에 나오는 청나라 같은 상태라서, 진작부터 시청률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숨이 붙어나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나가수>같은 명코너가 있었지만, 겹치는 내홍과 외환에는 버틸 재간이 없없던 듯하다. 한편 ‘1박2일’이 파업으로 인해 재방을 내보내며 어려움을 겪는 동안, SBS는 와 <정글의 법칙> 같은 새로운 코너에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여 진지를 구축했다. 파업 기간 KBS와 MBC 양사의 주말 예능이 간신히 편집 스케줄을 막아내느라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런닝맨>에는 박지성이 유재석의 등짝에 스티커를 뗐다 붙였다 하고 있었다. 상업 방송국답게 유연한 제작, 편성 전략을 구사한 SBS의 승리였다. 이제 MBC와 KBS의 제작진은 대단히 힘겨운 추격전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올여름의 시청률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시청률이 단순히 SBS가 여름 전쟁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보다, 좀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청률을 나타내는 지표 가운데 HUT라는 값이 있다. 현재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가구수, 즉 총 시청가구수를 말한다. 올여름 주말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이 수치 자체가 거의 5% 가까이 떨어져 있다. 작년 7월 첫째 주말의 저녁시간대 HUT는 67.2%였다. 하지만 올해 같은 기간의 HUT는 57.8%. 주말의 TV 시청자가 작년보다 10%가량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7월 첫 주차 일요일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작년 같은 날은 비가 내린 반면 올해는 날씨가 맑았는데, 일반적으로 날씨가 좋으면 시청률이 떨어진다. 외출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여름 주말 HUT는 날씨 문제가 없었던 그 전 주에도 7%, 그 전 주에는 또 5%씩 각각 전년도에 못 미치는 수치를 나타냈다. HUT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말에 TV를 보는 사람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불길한 징후다. 적어도 TV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파이가 작아져 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KBS, MBC, SBS의 주말 버라이어티 시청률을 단순히 더한 값을 보아도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다. 7월 첫째 주의 3사 예능 시청률 합계는32.5%였다. 작년에는50.3%까지 나왔었으니 18% 감소. 이건 격감이라고 표현해도 될 일이다. 토요일의 상황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토요일 예능의 독재자라 할 <무한도전>은 아예 180일 가까이 결방되고 있다. 올 1월 28일 마지막 방송에서 19.5%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 대체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지금 3% 선까지 떨어졌다. 여기는 딱히 공방전이라 할 만한 상황도 아닌듯 하다. <불후의 명곡 시즌 2>와 <스타킹>이 그 감소분 가운데 약간의 포션을 나누어 가졌지만 평균 16%를 유지했던 <무한도전>의 시청률 가운데 절반 이상은 그냥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최근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종종 했던 불평들-요즘 예능이 좀 시들시들한 것 같아, 등등-은 위에 열거한 수치들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들은 돌이킬 수 없는 침체의 시기로 접어드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은 침체기에 들어섰다기보다, 큰 호황을 누린 뒤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물론 그 원래의 자리라는 것을 딱 꼬집기는 어렵지만, 예컨대 그 자리를 2007년 초여름으로 잡아보면 어떨까? 2007년 7월 넷째 주의 주말 예능들의 시청률은 다음과 같았다. KBS의 ‘준비됐어요‘’, 불후의 명곡’이 13.5, MBC의‘ 경제야 놀자’가 11.8, SBS의 ‘옛날TV’가 6.9를 기록했다. 이 수치를 합산하면 32.2%다. 같은 방식으로 그 다음 주의 합산 시청률은 32.1, 그 다음 주에는 33.7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위에서 열거한 올여름 주말 예능 시청률 33% 선과 거의 동일하다. 이어지는 2007년 8월 넷째 주의 주말 시청률에도 큰 변화는 없다. 다만 <해피선데이>가 그주에‘ 1박2일’이라는 신규 코너가 더해졌다는 작은 메모가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름에 시작된 이 코너는 그 해에 평균 20% 선을 돌파하고, 이듬해엔 30%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결국 최근의 시청률 감소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난 몇 년간 예능이 그 자신의 황금기를 통과해 왔다는 점이다. 작년이나 재작년 여름에 나타났던 주말 예능 종합 43%라는 시청률은, 그 숫자의 주인이 누구든 간에 최근 몇 년간 예능 프로그램들이 10% 이상 더 행복했던 시기였음을 의미한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예능 프로그램은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오락 프로그램에 불과했던 버라이어티쇼에 여론과 미디어가 열광과 비평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TV 앞에 앉아 진정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웃음에 대한 기대는 차라리 당연하고 기본적이어서 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1박2일’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등 몇 개의 중요한 주말 프로그램들이 예능 시장의 전체적인 파이를 키워냈다는 사실은 최근의 침체기를 통해 더 확실해지고 있다. 그들은 도전을 통해 예능의 신규 시장을 개척했고, 그들의 침체가 시장 전체의 위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웃음과 눈물을 뽑아내는 것은, 유정을 퍼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사회상과 트렌드, MC들을 잘 관찰한 뒤, 그 미묘한 어떤 지점에 포맷이라는 파이프를 제대로 박아 넣으면, 아이템과 아이디어가 저절로 콸콸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지점을 찾고 적절한 파이프를 고르는 것이 늘 어렵지만 맥이 제대로 잡히면, 그 이후 한참은 큰 어려움 없이도 풍요로운 웃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는 언젠가 싫증을 내는 존재고, 초기 조건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늘 쉽지 않다. 웃음의 우물은 서서히 고갈되고, 그럼에도 프로그램의 포맷과 내용은 지켜야 하기 때문에, 결국 쥐어짜이는 단계가 온다. 예컨대 2007년의‘ 1박2일’은 3명의 PD가 제작, 편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9명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로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동선과 편집은 이전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다. 그러지 않으면 이야기가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단순하고 굵직한 웃음들이 뽑혀 나오지 않으니까, 제작진의 정교한 가공이 점차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장르 전체를 보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리얼’의 자극을 한층 강하게 한 끝에 나타나는 것이 <정글의 법칙>이다.야생이라는 포맷으로 그보다 더 원칙적이고 강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역시 ‘마지막 오디션’을 표방하는 <슈퍼스타 K 시즌 4>에 맞서야 하니, 기시감을 피할 수 있는 독한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나 잘 알 듯이,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실 더 거대하고 독한 굴착 펌프가 아니라 새로운 유정 그 자체다. 사실 예능의 경기 순환은 낯선 현상이 아니어서 90년대 초‘ 몰래카메라’나 <퀴즈 아카데미>, 90년대 후반의 <캠퍼스 영상가요>‘ 양심냉장고’ 시절, 2000년대 초반의‘ 공포의 쿵쿵따’와 <천생연분>‘ god의 육아일기’. 2000년대 중반의 <상상플러스>와 <해피투게더 프랜즈>등 굵직한 히트 프로그램이 잇따라 등장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의 트랜드와 MC 성향에 잘 맞아 떨어지는 좋은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굵직한 리듬을 두고 몰려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큰 파도가 한번 지나간 지금 예능 PD들의 고민은 새 파도를 어떻게 만들지에 집중되고 있다. 물론 방송 중인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일선 제작진들의 고민 속에서 전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상상플러스>나 <해피투게더>, ‘1박2일’ 모두 새로운 기획팀의 작품이 아니라 기존 프로그램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제작진이 코너성 기획으로 시작한 작품들이다.

방송 3사는 새 프로그램과 기획을 현재 올림픽 이후로 벼르고 있다. 우연하게도 런던 올림픽이 SBS의 새 시즌과 MBC의 파업 복귀, KBS의 중간 개편 등을 정리하는 기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MBC는 비록 기세가 많이 밀려 있는 상황이지만, 파업 기간 동안 전례 없이 창의력을 충전한 PD들의 아이디어가 대기 중일 것이고, KBS는 지난해 PD 유출 후 세대교체가 급속하게 진행 중이다. SBS는 우리나라에서 힘들다고 여겼던 예능 시즌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으니 더 과감해질 것이다. 올 하반기에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것은 시청자들에겐 즐거운 일이다. 제작을 맡은 스태프들에게는 몹시도 혹독한 기간이 되겠지만. 이제 곧 큰 전쟁이 날 것이야, 라는 무슨 정감록 같은 소문이 조연출들 사이에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