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패스트 벤더, 패스벤더

2012.08.03GQ

지난 20년 동안 마이클 패스벤더는 거의 어둠 속에 속한 배우였다. 하지만 < 엑스맨 >과 < 쉐임 >과 < 프로메테우스 >는 순식간에 그의 어둠을 다른 뭔가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남자배우의 섹스어필에 대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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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런던 동쪽의 한 공원을 걸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퍼부었고, 패스벤더는 자기 아파트가 근처에 있다고 했다. “딱 2초면 돼요. 조금 치워야 해서요.” 우리는 그의 아파트로 갔고, 문밖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이제 됐어요. 제 아파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영화배우가 살 것 같은 언덕 위의 대저택도, 복층 구조의 펜트하우스도, 호숫가의 그림 같은 집도 아닌, 그냥 방 세 개짜리 아파트. “혼자 살기에 완벽해요. 정말이에요.”

이 아파트로 이사할 때, 그는 20대 후반이었다. 근근이 배역을 따내며 연기를 보다 넓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올지 궁금해하는 신인 배우. “에너지가 좋은 곳이에요. 전통적으로 이 동네는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어요. 그러면서도 살짝 첨단인 부분이 있는 동네랄까? 어디를 가든 공원이 있고요. 내게 정말 잘 맞는 곳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세 편의 영화, < 쉐임 >, <데인저러스 메소드 >, < 헤이와이어 >를 거의 동시에 홍보하는 배우라는 증거는 이런 걸까? 거기에 < 엑스맨 퍼스트클래스 >와 < 프로메테우스 > 까지, 지난 2년을 미친 듯이 촬영하고 홍보하느라 보낸 그에게, 집이란 그저 다음 시사회나 영화제에 참가하기 전 잠깐 들르는 곳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방 한가운데에는 미니 탁구대가 놓여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최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 게 바로 이 탁구대예요. 이 탁구대는 여러 액션을 목격했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웃었다. “음,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네요.” 뭔가 성적인 뉘앙스로 들리는 이유는 모두 < 쉐임 > 때문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 영화에서 패스벤더는 전라로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 후 그는 끊임없이 성기와 관련된 얘기를 들으며 웃어야 했다. 심지어 동료 배우의 공개적인 농담에도 말이다. 조지 클루니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이클, 자네는 손을 등 뒤로 하고도 골프를 잘 칠 수 있을 거야.” 패스벤더는 언제나 웃으며 대처했다. 그런 그에게 탁구대 농담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10대 때 마이클 패스벤더는 헤비메탈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 얘기를 꺼내자 그는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메탈리카의 ‘Orion’. 세풀투라의 ‘Beneath the Remains’, 무엇보다 슬레이어의 ‘Reign in Blood’죠.” 그는 아이패드로 슬레이어의 노래를 검색했다. 그는 친구와 밴드를 만들었지만, 드러머와 베이스 연주자를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한 콘서트는 대낮에 동네 술집에서 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조용하라는 말만 들었다. “아무도 메탈리카를 점심시간에 듣고 싶어 하진 않았어요.”

그는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10대일 때는 다들 그렇잖아요. 그냥 내 관심을 끄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뭔가를 찾는 거죠.” 그것은 연기였다. 첫 TV 출연작인 영국 코미디물 <하츠&본즈>에서 그는 독일 남자 역을 맡았다. 종종, 스타가 된 배우들의 첫 작품을 보면, 작은 비중일 지라도 어떤 예감으로 가득한 설렘이 있다. 그걸 발견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의 경우는 달랐다. 어린 시절의 그는 너무 엉뚱해 보였고, 지금 같은 매력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연기학원을 1년 다니고, HBO 2차 세계대전 시리즈 < 밴드 오브 브라더스 >에서 배역을 맡았을 때 변화가 생겼다. 9개월을 세트장에서 보내며 잔혹한 현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달까? 매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지만, 실제로 방송을 보면 눈 깜빡할 사이에 자기가 나온 장면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LA에서 보낸 몇 달 동안 그는 수많은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졌다. “오디션에서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어요. 확실한 한 방이 없었거든요.” 그는 런던으로 돌아와 몇 년을 영국 TV 속에서 보냈다. 역할은 점점 커졌지만, 특별히 주목할 만한 어떤 것을 발산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2007년, (나중에 그의 첫 번째 영화가 되는) < 헝거 >의 감독 스티브 맥퀸을 만났다. < 헝거 >는 IRA 단식 투쟁자인 바비 샌더에 대한 영화로, 그는 영국 당국에 저항하여 1981년 스스로 굶어 죽은 인물이었다. 첫 만남에서 패스벤더와 맥퀸은 서로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패스벤더는 그런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에 신중했고, 맥퀸은 그저 배우로서 패스벤더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캐스팅 디렉터가 둘의 만남을 한 번 더 주선했을 때, 두 사람은 전에 놓쳤던 것을 보았다. 패스벤더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내가 오랫동안 찾았던 사람 같았어요. 나를 정말로 고양시키고, 바른 길로 가게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끌어내는 어떤 사람.” < 헝거 >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진 듯했다. 바야흐로 그는 저예산 영국 드라마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동시에 넘나들 수 있는 배우가 된 것이다.

몇 주 후, 우리는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 그전에 < 쉐임 >에 함께 출연했던 니콜 비해리와 손을 잡고 소호를 거니는 사진을 파파라치가 찍었고, 타블로이드 미디어들이 그녀를 패스벤더의 여자친구로 지목하는 일이 벌어졌다. “니콜과 사귀는 중이고, 가능하면 자주 만나려고 해요. 니콜이 뉴욕에 살고 내가 영국에 살아서 힘들긴 하지만요.” 지금 뉴욕에 며칠 머무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마이클 패스벤더에 관한 자잘한 이야기는 계속 타블로이드 지면을 채웠다. 그러다 하나 또 터졌다. 패스벤더는 인권 보호와 관련한 한 행사에서 여배우 샤를리즈 테론을 수상자로 호명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상을 전했다. 그녀는 감사의 몇 마디를 전하더니 갑자기 영화 < 쉐임 >과 마이클 패스벤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배우로서, 정말로 마이클 당신이 그렇게 ‘큰’ 연기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내 말은, 다른 배우들은 ‘작은’ 연기를 했을 거라는 거죠. 저를 믿으세요. 전 알아요. 그들 대부분과 일해봤거든요. 당신의 페니스는 신의 계시예요. 전 언제든지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어요.” 패스벤더는 무대 뒤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얼핏 들었지만, 정작 샤를리즈 테론이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테론은 패스벤더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마이클, 부디 당신이 페니스에 대한 농담에 언짢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패스벤더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에디터
    글/ 크리스 히스(Chris Heath)
    포토그래퍼
    Mario Te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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