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이 처음 한 말 1

주지훈은 헤르난 바스의 그림 <다윗과 골리앗> 앞에선 등을 돌렸고, <불신의 순간적 유예> 앞에선 철퍼덕 누웠다.

헤르난 바스  2012, 243.8 x 274.3cm, 리넨 위에 아크릴릭, 에어브러시, 실크스크린.
헤르난 바스 2012, 243.8 x 274.3cm, 리넨 위에 아크릴릭, 에어브러시, 실크스크린.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돌아왔어요. 장규성 감독이 당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놀랐어요. 그의 페르소나 같았던 차승원과 주지훈 사이엔 거리감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당신의 코믹연기는 상상하기 힘들었죠.
엄청 힘들었어요. 감독님이랑 저랑 개그 코드가 안맞았거든요. 제가 영화 전반을 컨트롤할 능력은 없으니, 당연히 감독님을 따라갔어요. 결국 애증의 관계랄까…. 맨날 티격태격했죠. 특히 감독님의 말버릇도 한몫했어요. 항상“ 아니야”라고 하시는데요, 무엇만 하면 오버랩처럼 따라 나와요. 영화 촬영 초반에는 패닉이 왔어요. 영화 찍으려고 공부를 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대본 파악이 안되는 배우였나 싶었죠. 재밌는 건 저 말고도 출연한 다른 배우들도 패닉이 왔다는 거예요.

김수로, 임원희 모두 장규성 감독과의 경험이 있을 텐데요.
그런 선배들뿐 아니라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패닉이 왔으니까요. 하하.

백윤식 선생님도요?
백윤식 선생님은 아니에요. 감독님이 선생님한텐 “아니야” 말고 “그러니까 선생님! 제 생각은요!”를 쓰시더라고요. 그래도 감독님은 천생 코미디 영화감독이세요. 실제로 정말 웃기세요. 그런데 저와는 많이 달랐죠. 영화적으로 과장된 액션으로 풀어야 할 때는 매우 현실적인 것을 요구하시고, 굉장히 사실적으로 풀어야 할 것 같은 장면에선 또 너무 영화적인 리액션을 원하세요. 그런 의외성이 따라가기힘들었어요. 감독님 삶 자체가 의외성으로 채워져 있어요. 게다가 감독님이 생각하는 캐릭터엔 항상 반전이 있는데, 제가 스스로 파악하기 어려웠죠. 여러 가지 생각의 간격을 줄여야 했는데,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딱 3개월 만에 67회차를 찍었으니까요.

엊그제 크랭크인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벌써 개봉하네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우리 영화가 한국 영화계를 망치지 않을까 하고요. 너무 짧은 시간에 영화를 완성했어요. 드라마처럼, 매일 꽉꽉 채워서 영화를 찍었어요. 낮 장면 찍으면 무조건 해가 져야 끝나고, 밤 장면 찍으면 무조건 해가 떠야 끝났어요. 이런 스케줄은 말이 안 되죠. 우리 스태프들 진짜 잠도 못 자고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가슴 아프게 스물두 살밖에 안 된 카메라팀 막내가 다치기까지 했어요. 불도 났었는데 진짜 다행히도 사람은 안 다쳤죠. 사건 사고가 많았어요. 그리고 저는 1인 2역이라 120신 정도 영화에 나오고, 재촬영까지 포함하면 140신을 찍었어요.

출연료를 두 배 받았나요?
하하. 이번에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어요. 앞으로 영화 찍을 때는 신 개수를 체크해야겠구나.

어쩌다 보니 인터뷰 초반부터 뒷담화가 되었네요.
뒷담화 아니에요. 감독님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했으니까.

장규성 감독의 코미디 영화는 촌스러울 정도의 정情이 기본인 것 같아요. <선생 김봉두><이장과 군수>같은 전작들이 그랬죠. 장규성 감독이 예전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강원도에서 자란 환경을 반영했다고 말한 기억이 나네요.
굉장히 미화시키셨는데요? 그냥 감독님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같은데요. 하하. 저는 엄청 많은 이야기를 하고, 고민도 많은 편이에요. 논리적으로 앞과 뒤를 고민하고 감독님한테 얘기하면, “지훈아, 넌 너무 고급스러워. 좀 대중적으로 생각해”라고 하셨죠. 그럼 전 “감독님, 저도 대중이에요, 세상이 변했어요”하고 말했어요. 촬영장에서 감독님이 리바이스 501에 빨간색 블루종 입고, 톰포드 선글라스 끼세요. 촬영감독님도 얼마나 세련되고 멋있다고요. 감독님의 코미디가 촌스럽고 세련되고를 떠나서 저에게 중요한 건 이해를 하고 연기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 연기를 할 수가 없어요. 납득 될 때까지 계속 고민하죠.

매번 맥락만으로 연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즉흥적으로 시도하는 연기가 힘든가요?
오늘 촬영에서 한 컷은 힘들었어요. 촬영하기 전에 그림 속 사람 두 명과 제가 어떤 작당모의를 하는 콘셉트라고 말하셨잖아요? 그래서 카메라를 못 쳐다봤어요.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돌리려면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요. 물론 그냥 관심 끊고, 사진 잘 나오게 카메라 보면 되는데, 이미 제 머릿속엔 그림 속 주인공들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만 빠져 있었죠. 그냥 찍는 것은 쉽지 않아요. 만약 그냥 할 거면 다른 사람 옷입혀서 찍어도 되지 않을까요? 요즘 기술도 좋으니까 제 얼굴 합성하는 건 너무 쉬운일이니까. 하지만그런 작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마왕>과 <키친>을 다시 봤어요. 그 당시, 주지훈이 주목받은 이유가 있다면 힘을 빼고 연기했기 때문인 것 같았어요. 당신이 뛰어나게 잘한다기보다는 실제 성격에서 시작된 연기가 아닐까 생각했죠.
<마왕> 땐, 감독님이 현장에서도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지시도 하셨어요. 게다가 작품이 정말 좋아서 일부러 집중할 필요가 없었죠. 대본만 봐도 몰입이 됐으니까요. <키친>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연기를 안 했어요. 제가 연기한 두레가, 스물서넛쯤의 저와 똑같았기 때문이에요. 감독님한테도 이 점을 말씀 드렸고, 둘의 생각이 완벽하게 일치했어요.<키친>은 저예산 영화라서 제 출연료를 반으로 깎고,자비로 일본에 가서 2천만원 정도 들여 의상을 사왔어요. <키친>에 나오는 의상은 전부 제 거예요. 저를 그대로 보여주려면 원래 제가입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협찬 옷을 입으면 누군가의 세팅이 포함되니까요.

어디서 툭하고 떨어져 스타가 된 것 같은 이미지가 있죠. 배우로 데뷔한<궁>부터 줄곧 주연이었으니까요.
제 이미지가 그래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델을 좀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모델도 예술적인 작업이고, 굉장한 표현을 요구하는데 말이죠. 모델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0.1퍼센트가 안 돼요. 수많은 사람 중 0.1퍼센트에 드는 모델은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빨리 성공했다는 점에서 전 딱히 부끄러운 게 없어요. <궁> 때는 처음이고 긴장하고 그랬으니 잘하진 못했죠. 그렇지만 준비 없이 연기를 시작하진 않았어요. <궁> 시작하기 전에 <봄의 왈츠> 신인 오디션을 봤는데 전국 2등으로 뽑혔어요. 여자 분이 1등, 제가 남자 중에선 1등이었죠. 단지 <궁>은 공개 오디션을 따로 안 봤다는 건데, 황인뢰 감독님을 두 번 정도 따로 뵙고 감독님 앞에서 연기했어요. 결국 개인 오디션 같은 걸 본 셈이죠. 사실 저는 모든 과정을 다 해왔어요.

하지만 뛰어난 PD나 에디터 눈에 단박에 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맞아요. 실제로 운이 좋았죠. 스물한 살 때, 1년 반 동안 모델 일을 쉬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에 나올 수 있을까요? 연기 공부를 계속했지만, 한 번에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전에 <한뼘 드라마>, <논스톱>, <압구정 종갓집>에서 단역도 해본 적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그런 경험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했다고 말하겠지만, 저도 오디션에서 2백 번도 넘게 떨어졌어요. 오디션 보러 갈 때마다 184로 키를 줄였어요. 하지만 미팅 갈 때마다 두 마디 이상 안 걸었죠. 키가 몇이에요? 184입니다. 나가요. 왜 그렇게 까매요? 태닝하셨어요? 아뇨, 원래 좀 까맣습니다. 나가요. 눈이 짝눈이네? 네, 저는 원래 짝눈입니다. 너는 배우 할 수가 없어. 그냥, 공부해. 이런 식이었어요. 하하. 그 와중에도 모델 일은 계속했지만요.

처음부터 연기가 목표였나요?
항상 말하지만 연기하려고 모델을 한 건 아니에요. 모델을 하면서 더 큰 표현이 하고 싶었죠. 물론 잡지에서 모델을 하는 건, 충분히 천국이었어요. 환희에 찬, 한 달, 한 달이었죠. 제가 찍은 결과물들을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전 속지 않았죠. 지금 모델을 하는 아이들은 속아요. 정말 자신이 멋있고, 예쁘고,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보는 줄 알죠. 하지만 좋은 결과물이 가능한 건 몇십 년을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린 사진작가, 에디터가 뭉쳤기 때문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정말 잘생기고, 예쁜 사람 한두 명 있잖아요. 똑딱이 카메라로 툭툭툭 찍어도 잘 나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잘났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갑자기 성공하는 사람, 우리 주위에 항상 있잖아요. 하지만 전 분노하지 않아요. 물론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욕을 먹을 수 있겠지만, 그 시간에 하나를 더 챙기겠어요. 화나고 열 받을 시간에 공부 더 하고요. 후배들한테 이야기하는 것도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걸 안다면 어떻게 하면 그걸 깨부술 수 있는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판만 해요. 그럼 제가 직설적으로 얘기하죠. 그러니까 니들이 안 되는 거야. 너 어제 술 먹었지? 그제도 술 먹었지? 차라리 그 시간에 영화 보고 공부해. 저도 그땐 안 먹었어요. 더 하고, 더 하고, 더 했죠. 비판을 하는 건 좋아요. 욕을 한다는 건, 그걸 인식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뱉은 욕에 갇혀서 비관만 하고 있으면, 그건 자기 능력이에요.

주지훈은 후배를 만나면 인사만 ‘슥’하고 말 줄 알았어요. 솔직히 말해 그동안 당신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괜찮아요, 저도 타인한테 별 관심 없으니까. 하하.

인터뷰를 약속하고 지난 인터뷰 기사를 찾아봤지만,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말수도 굉장히 적을 테니, 인터뷰도 꽤 어려울 것 같았죠. 게다가 이렇게 모든 걸 풀어서 이야기하는 지금 모습은 제가 예상한 당신과는 지구인과 외계인 정도의 차이네요.
전 예의 없는 걸 너무 싫어해요. 기본적으로 신문 인터뷰는 좀 짜증나요. 언론과 많은 만남이 있지 않았고요. 게다가 지금도 어리지만 그때는 더 어려서, 이야기를 토해내기보단 듣는 게 많았어요. 지금은 저도 후배가 생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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