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슈퍼맨의 비애

2012.08.27GQ

대중음악계에 스타는 있어도 슈퍼스타는 드물다. 슈퍼스타가 있어도 슈퍼음반은 없다.

작곡가는 자영업자다. 물론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계약관계를 막론하고, 대부분은 뮤지션의 소속에 따라 작곡가의 이름을 예측할 수 있다. 비스트나 포미닛의 음반엔 신사동 호랭이가, 씨스타의 음반엔 용감한 형제가, 카라의 음반엔 스윗튠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테디의 단단한 비트에 동방신기가 춤을 추고, 2NE1이 유영진의 유려한 멜로디를 부르는 광경은 아쉽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한 뮤지션의 음반에 여러 유명 작곡가가 동시에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다.

몇몇 기획사에선 작곡가들에게 음반을 맡긴다. 알아서 만들어달라는 식이다. “회사에서 주문해요. 제 곡이 타이틀로 갈 거니까, 나머지 서너 곡 맞춰서 빨리 해달라고.” 작곡가 A가 말했다. 앨범을 총괄하는 프로듀서의 존재는 미미하다. 작곡가를 고르고, 알맞은 곡을 선별하는 일엔 담당자가 없다. 작곡가가 앨범을 주무르는 건, 감독 없이 촬영감독만 두고 영화를 찍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매니저들이 그 일을 하기도 한다. “타이틀은 댄스로, 미디엄 템포 하나 넣고. 이런 말을 매니저들이 해요.” 작곡가 A의 불만이다. 기획사는 일단 타이틀곡 한 곡만 터지면 괜찮다. 수익 모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회사 입장에선 앨범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프로듀서보단 파괴력 있는 한 곡을 만들어줄 작곡가가 필요하다. 이미 몇몇 기획사의 균형추는 프로덕션보다 매니지먼트 쪽으로 쏠려 있다. 프로덕션 중심의 회사는 음반이 발매되면 업무가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 이후는 매니지먼트 부서의 일이다. 매니지먼트 중심의 회사는 음반 발매와 동시에 전 직원이 매니지먼트 쪽으로 몰린다. 음반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물론 음반 제작을 떠맡은 작곡가들이 회사로부터 주문받은 음반에 다른 작곡가들을 참여시킬 수 있다면, 그 음반은 프로듀서 없이도 잘 굴러갈 수 있다. 그러나 작곡가들은 시장성을 보고 곡을 쓴다. 시장은 좁다. 국내 시장은 철저히 개별 음원 위주로 돌아간다. 음반이 안 팔리니, 타이틀곡을 제외한 수록곡은 그냥 묻힌다. 작곡가들은 타이틀곡을 제외한 수록곡을 써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 “외국에서도 곡 섭외가 와요. 아니면 외국으로 나가는 뮤지션의 노래. 그런 건 타이틀곡이 아니라도 써요. 수익이 잘 나오거든요. 국내에서도 음반이 한 20만 장 정도만 나가면 충분히 쓸 수 있어요.” 구조적인 문제다. 어쩔 수 없이 음반 제작을 맡은 작곡가들은 자기 ‘사단’을 동원한다. 타이틀곡은 자기가 쓰고, 나머지는 사단 소속 후배 작곡가들이 채우곤 한다.

특정 작곡가 사단과의 연이은 작업으로 뮤지션의 색깔이 확고해지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슈퍼스타’급 뮤지션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슈퍼스타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확고한 음악적 정체성만은 아닐 것이다. 정체성이 뚜렷한 음악이라면 장르음악 뮤지션들들도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당대의 최전선에 서 있는 소리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새롭고 파괴력 있는 음반으로 시장에 환기를 일으키는 건 슈퍼스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능력 있는 작곡가들은 슈퍼스타의 음반에 모이지 않는다. 기획사는 시장을 뒤집기보다, 시장을 받아들였다. 슈퍼스타에겐 슈퍼 음반이 없다.

그런가 하면 요즘 가요계에선 슈퍼스타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건 작곡가뿐만 아니라 뮤지션도 마찬가지다. 최근 기획사들은 로테이션에 가깝게 소속 뮤지션들의 음반을 발매한다. 특정 뮤지션에게 물량을 집중시키지 않는다. 예전처럼 음반을 공들여 준비해 데뷔부터 총력전을 펼치는 경우는 드물다. 음반 한두 개 망한다고 활동을 접지도 않는다. 해외에선 어쨌든 수익이 난다. 뮤지션들이 해외를 도는 사이, 국내의 인기와 해외의 인기 사이엔 틈이 생긴다. 뮤지션이 슈퍼스타로 가는 길목에서, 외도를 하는 격이다.

“비스트가 작년에 KBS에서 대상 받았어요.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음반을 냈는데, 싸이한테 밀려요. 슈퍼스타가 슈퍼스타가 아닌 거죠.” 작곡가 B의 말이다. 이런 현상이 빈번하다 보니, 회사는 모험을 걸기보다 안전한 길을 택한다. 좋은 노래도, 홍보비도 특정 뮤지션에게 ‘올인’하기보다 균등하게 분배한다. “옛날엔 매니저들이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제대로 준비해서 한 번에 보여줘야 해’라고 말했다면, 요즘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나와야 돼’로 바뀌었어요.” B는 요즘 바쁘다. 이런 춘추전국시대엔 곡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 장의 음반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진다. 슈퍼스타에 대한 기대를 기획사 스스로 접을수록, 슈퍼 음반은 점점 멀어진다.

팝 시장의 슈퍼스타는 음반에 참여한 작곡가의 면면만 보면 눈치 챌 수 있다. 저스틴 비버의 음반 엔 칸예웨스트의 ‘Niggas in Paris’를 쓴 히트-보이와 데스티니 차일드의 전성시대를 이끈 닥차일드, 최근 가장 뜨거운 뮤지션인 디플로가 참여했다. 그 와중에 저스틴 비버의 자작곡도 있다. 전작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구성. 전작 엔 브라이언 마이클 콕스, 더-드림, 스테레오타입스 등 또 다른 정상급 작곡가들이 참여했다. 그렇다고 두 음반의 색깔이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크리스 브라운도 마찬가지다. 다소 아쉬운 평을 받긴 했지만 신보 엔 저스틴 비버의 신보에 참여한 더 메신저스를 비롯해, 오랜 조력자 폴로우 다 돈, 베니 베나시, 더 러너스, 디 언더독스 등이 참여했다. 누가 타이틀곡을 써도 이상하지 않은 이름들이다. 슈퍼스타를 위한, 슈퍼 음반을 만들기 위한 흔적이다.

국내엔 그런 음반, 그런 시도가 거의 없다. 태양의 ‘I need a girl’은 분명한 단초였다. 신예 작곡가 전군의 노래를 필두로 태양은 단단한 정규 음반을 만들었다. 테디는 조력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I need a girl’ 이후로 그런 파격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 참여진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였지만, 아이돌의 음악이 타이틀곡만으로 족하단 생각은 이미 빅뱅과 f(x)가 뒤엎었다. 고지가 멀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슈퍼 음반은 없다. K팝스타를 원하면서 슈퍼스타가, 슈퍼 음반이 필요 없다고 여기는 건 어리석다.

    에디터
    유지성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Jung Won 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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