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磁

白磁

2015-09-16T22:27:22+00:00 |CAR & TECH|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고 깨끗한 흰색 자동차 다섯 대를 찍었다. 이조 백자를 굽는 마음으로, 아주 투명하게.

포르쉐 911 카레라 S 카브리올레
지금 포르쉐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까? 포르쉐는 항상 기대 이상을 보여줬다.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태양계 밖에 있는 누군가와 SNS로 교신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어떤 자동차 전문가가 말했다. 하물며 911이야. 911은 포르쉐의 고집과 품질, 도전과 성취의 상징이다. 3,800cc 가솔린 엔진이 내는 400마력의 최고출력과 44.9kg.m에 이르는 최대토크는 인간의 피돌기까지 가속시킨다. 발바닥부터 올라오는 흥분이 전두엽 언저리를 땅! 때리고 다시 내려갈 때의 흥분.

포르쉐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없는 건 아니지만, 포르쉐 911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다른 차에서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는 4.3초 걸리고, 그대로 가속페달을 더 밟을 용기가 있다면 시속 299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다. 1억 6천50만원.

인피니티 JX 3.5 2WD
JX는 영리하다. QX의 거대함과 FX의 어떤 전위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았다. 엔진에선 온화한 성격의 거인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넉넉하고 여유 있게 그르렁대면서 항상 그 이상을 비축하고 있다. 인피니티 최초로 적용한 무단변속기CVT는 변속 충격 없이, 한 걸음에 동산을 넘는 듯 가속한다.

V6 3.5리터 가솔린 엔진의 최대토크는 34.3kg.m, 최고출력은 265마력이다. 앞좌석에 둘, 뒷좌석에 셋, 3열에 두 명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완연한 7인승. 2, 3열 시트를 접으면 냉장고나 책장 같은 가구도 실어 나를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 나온다. 2륜구동 모델은 6천7백50만원, 항시사륜구동 모델은 7천70만원.

시트로엥 DS3 1.6 e-HDi SO CHIC
막 대학에 입학한 여동생 같기도 하고 아직 철없는 큰누나 같기도 하다. 종종걸음으로 활보하면서 생머리는 아무렇게나 날리게 두던 선배 같기도 하고. DS3은 한국에 최초로 선보이는 프랑스 회사 시트로엥의 자동차다. ‘아름답다’ 혹은 ‘프랑스 감성’ 같은 수사는 빈말이 아니다.

곰곰이 뜯어보면 볼수록 예쁘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주행감각도 합리적이다. 1,560cc 디젤엔진은 최고출력 92마력, 최대토크 23.5kg.m을 낸다. 변속은 자동이지만 수동 기어를 기반으로 해서 변속 때마다 멈칫거리는 경향이 있지만, 그 어색함을 리터당 19킬로미터를 달리는 연비로 보답할 줄도 안다. 푸조 시트로엥 그룹의 핸들링은 예민하고 차지기로 평이 나 있다. 3천1백90만원.

2013 폭스바겐 CC 2.0 TDI
자동차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어떤 기준이 있다면, 폭스바겐이 만든 자동차가 적격이다. 모든 과목에 충실한 모범생 같은 기질, 모나지 않은 성격, 긴박한 수술을 집도하는 뇌외과 의사 같은 냉철함이 폭스바겐에는 있다. CC는 그중 멋쟁이인데, 무턱대고 호사스럽지도 않고 어느 것 하나 소홀한 구석도 없다.

1,968cc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은 170마력, 최대토크는 35.7kg.m이다. 1리터로 15.3킬로미터를 달리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에는 8.6초 걸린다. 날렵한 쿠페면서 정직하게 다섯 명이 탈 수 있고, 트렁크 공간 또한 넉넉하다. 주말의 향락으로부터 멀고, 그저 정확한 메시지가 주는 신뢰만이 궁극적인 힘이라는 걸
CC가 증명한다. 4천7백90만원.

아우디 R8 스파이더
속으면 안 된다. 섣불리 짐작해도 곤란하다. 지붕이 열리는 차라고 무턱대고 낭만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우디 R8은 광폭하다. 뒤통수를 떡매로 내리치는 것 같은 변속 충격, 패들시프트를 건드리는 손가락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기어, 네 바퀴가 동시에 굴러갈 때만 느낄 수 있는 끈적함 같은 것들.

5,204cc V10 가솔린 엔진의 최대토크는 무려 54.1kg.m이다. 최고출력은 525마력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313킬로미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는 딱 4.1초 걸린다. 보닛과 앞유리를 타고 넘어가는 후끈한 공기, 펑펑 터지는 배기음을 듣다 보면 세상에 R8과 나만 남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것들은 다 스쳐가니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귀여운
여자애가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해도. 2억 2천7백7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