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빈지노, 내 머릿속의 지우개

2012.09.14유지성

빈지노는 가사를 한 번 쓰면 안 고친다. 다행히 얼굴도 안 고쳤다.

낙타 인형은 한사토이 www.hansatoy.kr

낙타 인형은 한사토이 www.hansatoy.kr

“요즘 처지가 낙타 같다”는 말을 했다.
스물넷부터 스물여섯까지 음반 준비하랴, 학교 다니랴 너무 바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음반 작업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고…. 사막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지난 연말 [GQ]가 뽑은 ‘올해의 래퍼’였다. 기억나나?
아, 맞다. 기억난다. 그때 되게 기뻤는데.

무슨 얘기를 해도 랩처럼 들린다는 말은 어떤가?
오히려 랩이란 틀 때문에 못한 말이 너무 많다. 못 쓴 표현도 많고. 라임, 플로우, 단어들의 음절 수…. 발음도 잘 굴러가야 한다.

가사 쓸 때 어디서 밀고 당길 건지, 어디서 치고 빠질지까지 다 정해놓고 스튜디오로 들어가나?
플로우, 박자 타는 것까지 다 짜놓고 녹음한다. 써 놓고 바꾸는 방식은 잘 안 맞는다. 그렇게 하면 플로우가 죽는다.

그렇다면 가사는 한 번 쓰면 안 고치나?
안 고친다. 진짜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고칠 힘도 없다.

가사에 규칙을 깨려는 시도가 있어 반갑다. 탈립 퀄리가 ‘Move Something’에서 “Intercontinental”란 단어를 라임을 맞추기 위해 “Inter-conta-nental”로 비틀던 때의 통쾌함이랄까.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데서 오는 긴장, 환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 마디를 쓰더라도 최대한 빤하지 않게 쓰는 데 중점을 준다. 뭐든 신선한 게 중요한 것 같다.

그걸 ‘억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Boogie On & On에서 “되어도”를 “되얼~도”로 발음하는 거, 신선하지 않나? 듣기에 딱 꽂힌다고 생각한다.

컴퓨터로 가사를 쓴다고 들었다.
주로 컴퓨터로 쓴다. 잘 안 써지면 공책으로 옮기고. 그런데 미국 래퍼들은 휴대전화로 쓴다. 설마 요즘에도 “너 공책에 가사 안 쓰냐?너 외계인이냐?” 이런 건 없겠지?

물론. 쓰면서 수정과 퇴고가 많은 부지런한 래퍼일 거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손으로 쓰는 거 좋아하는데, 칸이 모자라면 다음 장에 써야 한다. 그러면 이어지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연습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번엔 EP였다. 정규 음반은 어떻게 다를까?
첫 솔로 음반이라 좀 막무가내였던 것 같다. 트랙의 순서, 흐름을 유지하는 게 좀 어려웠다.

앨범이 좀 더 유기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도 느꼈다. 그런데 곡 수가 워낙 적고 내가 다작하는 스타일도 아니라, 다른 노래를 넣거나 거기 있는 노래를 빼고 싶진 않았다.

일리네어 레코드와 계약한 지 1년이 좀 넘었다. 도끼와 더 콰이엇은 당신에게 어떤 주문을 하나?
별 주문 안 한다. 음반이 너무 차분하거나 우울하면 좀 신나는 게 있는데 이런 건 어떠냐? 정도지, 어떤 음악을 해라, 이런 건 전혀 없다. 그런 게 있으면 안 들어갔다.

메이저 기획사에서도 계약 제의가 들어왔었다고 들었다.
턱 깎으라 그랬다. 특유의 기획사 말투 있다. “아, 턱 좀 깎고….” 초면인데, 예의가 없었다. 내가 그 사람들 없다고 거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학력과 외모 덕도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없다고는 말 못하는데, 음악이 별로면 다 쓸데없는 것 같다.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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