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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오는 소리에

2012.09.17유지성

역사는 아침에도 이루어진다.

남자는 아침이 싫었다. 섹스는 밤이면 충분했다. 세 번의 시도를 꽉꽉 채워 금메달을 획득하고, 시상대처럼 불룩 솟은 여자의 엉덩이에서 내려왔다. 섹스가 끝나면 여자는 기권을 선언하듯 팔다리를 쭉 뻗고 침대에 엎드렸다. 여자의 몸이 내는 진동이 남자를 간지럽혔다.남자의 밤은 길었다. 런던 올림픽을 시청하는 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아침이면 실격당한 수영선수처럼 넓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알람시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덴 언제나 여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자는 아침만 되면 노인처럼 구는 남자에게 불만이 있었다. 귀를 간지럽혀도 보고, 가슴을 남자의 얼굴에 파묻어보기도 했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겨우 일으켜놓고 나면, 남자는 발기된 채로 콘돔보다 숟가락을 먼저 찾았다. 여자는 혹시나 하는 기대에 몰래 먼저 일어나서 이를 닦고 화장을 했지만, 그저 부지런하다고 인정받는 게 전부였다. 남자가 게을러서만은 아니었다. 성욕만 놓고 보면 아침까지 2연패에도 충분히 도전할 만했다. 취향 문제였다. 남자는 밤에도 전원 스위치부터 찾았다. 밝은 데서 보는 여자의 몸은 눈이 번쩍 뜨이게 했지만, 눈으로만 보는 건 남자의 하드디스크 안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불을 끄면 손끝이 병아리 감별사처럼 예민해졌다. 소리도 좀 더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 형광등, 에어컨에서 나오는 소음까지 모두 제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남자는 코끝에 땀이 맺혔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남자는 여자에게 간혹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맡겼다.

“넣어줘, 넣어줘.”
“네가 좀 찾으면 안 돼?”
“안 보여.”

암순응에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은 7분. 맘이 급한 섹스에선 삽입 직전까지 장님 코끼리 만지듯 했다. 여자는 답답했다. 중요한 순간 남자의 코끼리는 혼자 길을 찾지 못했다. 남자의 복근은 손가락으로만 짐작할 수 있었다. 간혹 침대 모서리며 벽에 부딪치고 긁혀 멍도 들었다. 이래선 뭣 하러 운동하고 속옷을 고르나, 하나도 안보일 텐데. 그렇다고 대뜸 불 좀 켜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밝은 아침에 하고 싶다고 옷을 벗기고 나설 정도로 대담한 여자는 아니었다.

“모닝섹스를 하면 여자의 클리토리스가 더 흥분한대. 몸이 예민한 상태라 그렇대.”
“행복 호르몬이란 것도 있네? 옥시토신이란 화학물질이 아침부터 하루 종일 지속되면서 남녀 모두 기분이 고조된대. 응?”

여성지 섹스 칼럼을 보다 신이 난 여자가 남자에게 원고를 읽어줬다. 남자는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텔레비전의 볼륨을 올렸다.

“다 상술이야.”
“아니, 대체 뭘 파는데?”
“음…. 토스트기?”

낙심한 여자는 머리띠를 꺼내 앞머리를 바짝 넘겼다. 그런 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온 하늘로 머리가 뻗쳤다. 집에 있을 때나 쓰곤 했지만, 이 남자와 있을 땐 아침까지 예뻐야 할 필요가 없었다. 모닝섹스가 뭐 그리 대수냐지만, 여자의 불만엔 이유가 다양했다. 무엇보다 밤에만 하는 건 의무방어전 같았다. 남자가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았으면 했다. 모닝섹스는 연인만의 특권이다. 눈곱 낀 눈과 이불 자국이 선명한 뺨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가 모닝섹스를 피하는 이유를 여자는 명확히 납득하지 못했다. 아침엔 남자의 사랑에 대해 좀 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한 날엔 좀 다를까, 하는 기대. 여자는 곧 다가오는 남자와의 기념일을 기다렸다. 8월말은 여행을 떠나기엔 너무 더웠다. 수영장에 가고 싶은 여자를 위해, 남자는 덜컥 호텔을 예약했다. 창문은 북쪽을 향해 나 있었다. 기념할 만한 밤을 시내에 자랑하고 싶었는지, 남자는 여자를 창가로 밀었다. 역시나 불은 켜지 않았다. 여자가 깜깜한 창문에 가슴을 묻었다. 남녀는 같은 방향으로 창밖을 쳐다보며, 교대로 유리에 입김을 뿜었다. 다행히 이번엔 여자가 ‘찾아줄’ 필요가 없었다. 도시의 밤은 밝았다. 어두운 방 안에선 바깥을 보는 시력이 두 배로 좋아지는 것 같았다.

“잠깐만, 저쪽에선 안 보이겠지?”
“불 켜봐.”

불을 켜자 남자는 더 밀어붙였다. 주차장 같은 시시한 공공장소와는 달랐다. 자정을 넘겼고, 호텔의 수백 개의 방 중 불이 켜진 방은 몇 개 남지 않았을 터. 도로에서 하늘을 보면 달과 방이 동시에 보일 것이다. 이젠 오히려 밖이 잘 안 보였다. 남자는 만족했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는 객석을 잘 볼 수 없지만, 그래서 좀 더 설렌다고 했다. 여자도 만족했다. 남자처럼 스릴 때문은 아니었다. 밝은 곳에서 섹스한 건, 남자를 만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자는 잠들기 전, 남자 몰래 속옷을 벗었다. 가운 안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아침을 기대했다. 마침 조식을 신청해둔 터라, 다음 날 퇴실시간까진 시간이 넉넉했다.

여자는 일찌감치 모닝콜을 준비했다. 커튼을 활짝 열고, 남자의 밑으로 내려갔다. 남자가 가재눈을 뜨자, 입에 칫솔을 쑤셔 넣었다. 모닝섹스의 가장 큰 적인 단내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단 시동을 걸고 나면 남자도 어쩔 수 없을 테니, 중간에 불이 꺼지는 일만큼은 막아야 했다. 남자가 못내 끙끙거리며 이를 닦고 돌아왔다. 여전히 기진맥진. 출근길 택시에서 푹 자기 위해, 아침에 샤워할 때도 스스로 잠을 온전히 깨우지 않는 남자였다. 여자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아침마다 눈을 못 뜨는 남자의 얼굴을 보면 열불이 나다가도, 비몽사몽 잠꼬대를 하는 모습까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특별한 아침 인사가 좋았다. 북향 창문에선 직사광선 대신 은은한 볕이 들었다.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방에선 아침 햇살은 고역일 뿐이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어미를 핥는 강아지처럼, 남자는 여자의 몸을 구석까지 훑었다. 몸은 어두운 밤보다 좀 더 예민했다. 굳이 커튼을 쳐서 더 이상의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었다. 밤엔 남성호르몬이 1/3 정도로 떨어진다. 잠자는 동안 다시 남자의 몸엔 테스토스테론이 축적된다. 아침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번쩍번쩍 서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즉, 모닝섹스를 하고 출근하면 다리가 후들거려 하루 일과에 지장이 생긴다는 말은 터무니없다. 잠만 푹 자고 일어나면 당연히 힘도 더 세진다. 여자가 모닝섹스를 선호하는 데는 논리가 확실했다.

아침의 몸에선 좀 더 본능적인 냄새가 났다. 여자는 향수보다 남자의 체취가 더 좋았다. 술이나 과로 때문에 혹시 도중에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아예 할 필요가 없었다. 잠이 덜 깬 남녀는 섹스와 잠 사이의 어떤 영역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환각과는 다를지라도, 오르가슴과 훨씬 더 가까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치고 들어올 여지도 없이 싱싱한 아침의 세포가 요동쳤다.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살아 있는 밤의 섹스와 정반대였다. 어쩌면 수면욕이 지배하는 아침은, 성욕이 오락가락하는 밤보다 더욱 본능적인 시간인지도 모른다.

“창가로 갈래?”
“왜 이때까지 아침에 안 한 거야?”
“아침부터 고기 먹으면 부담스러운 거랑 똑같아.”
“고기는 언제 먹어도 맛있어.”
“아침부터 못하는 말이 없네.”

여자는 호텔 창문 앞에서 좀 더 대담해졌다. 주말 아침까지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맞은편 고층빌딩에서 팩스 업무를 지시받은 신입사원이 이 광경을 보면, 그 종이를 세절기에 넣어버리는 건 아닐는지. 자세는 점점 아크로바틱해졌다. 아침 기지개 켜듯 여자의 등근육이 쫙쫙 늘어났다. 모닝섹스는 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여 피부와 모발까지 윤기 있게 한다니, 여자의 몸은 아침부터 호강하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다시 잠들었다. 여느 때보다 더 충실한 주말 아침잠이었다. 일어나선 개운했다. 이제껏 남자의 생활계획표엔 아침 일정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런 식의 아침 운동이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잠들었다 일어났을 뿐인데, 남자는 또다시 솟아올라 있었다.

“눈뜨니까 옆에서 옷을 입은 둥 만 둥 하고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는데, 너 같으면 출근할 수 있겠냐?”

며칠 전 열애 중인 동료가 전날과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했을 때, 지각한 동료의 변명 치곤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모닝커피 마시듯 모닝섹스를 한다는 친구에겐 그래서 자꾸 커피를 들이붓는 게 아니냐고 핀잔을 줬다. 남자는 조식을 먹는 식당에서 숟가락 대신 스마트폰을 먼저 들었다. 배가 몹시 고팠고, 앞으론 토스트기와 커피머신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아침엔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았다. 섹스는 그 신호탄이자, 결승점이었다. 호텔 방을 나오며, 남자는 베갯머리에 호텔 메이드를 위한 팁을 가득 꽂았다.

    에디터
    유지성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Finger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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