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별의별 일들

2012.09.28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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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원과 나선체와 인공위성을 좋아했다. 지구 궤도를 선회하는 먼지와 쓰레기들이 둥둥 떠 있는 머리 위 하늘은 그 자체로 스릴러였다. <스타워즈> 초반, 농장 소년이 타투 인의 쌍둥이 해를 보는 장면은 내 주위 360도를 별들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성인이면서도 ET가 입 두 개에 망치상어 머리를 한 초식동물일 거라고 생각했던 건, 그 많은 소설과 매체가 영화의 암시에 살을 찌웠기 때문이라고 변명할란다.

지식의 형태로 존재하는 ‘팽창한 우주’는 점점 더 자라났다. 달에 간 우주비행사들이 고난을 통해 얻은 환호와 흥분과 초자연적인 경험을 기록한 다큐에서, “달에 갔는데 얼마나 우주가 장엄한지 지구로 돌아와선 다시는 날씨를 불평하지 않게 되었다”는 어떤 할아버지의 토로는, 천 번의 힐링을 아우르는 힘이 있었다. 필립 스타크의 진면목이야말로 인공위성을 디자인할 수 있는 지구인 다섯 명 중 하나라는 게 아닌가.

영원성을 위한 기술은 작은 낱알의 거품을 계속 찾았다. 8월 6일, 화성 게일 분화구에 착륙한 큐리오시티호의 분투기, 태양계를 닯은 행성계에서 속속 발견되는 슈퍼 지구의 진실, 초속 17킬로미터로 우주를 따분하게 날아가던 보이저 1호가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 바깥 우주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보도가 이어질 때, 끝이 온다는 종말론자들의 외침은 울울창창한 우랄산맥 어딘가에서 공황에 빠져 흐물거릴 것이다.

35년 전, 보이저 1호가 싣고 간 건 지구의 소리가 녹음된 도금레코드였다. 아기 울음소리, 세네갈인의 타악기,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척 베리의 ‘Johnny B.Goode’, 중국 방언, 곱사등 고래 소리가 포함된 55개 언어는 외계인을 위한 것이었다. “어이, 우주의 친구들. 잘 지내고 있어? 밥은 먹었니? 시간 있음 여기 좀 들러줘”로 번역될 그 말들은 100만 광년쯤은 당장 관통하는 웜홀 속 스피커로 진작 울려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삶은 더 겸손해야 한다. 먼지가 뭉쳐 지구가 되었으니, 인간의 근원은 광물 아닌가. 냉전 시대, 소유스호의 로켓 부스터는 두 번째 시도까지 다 추락했다. 다른 우주탐사선들도 자꾸 바다로 떨어졌다. 포보스 – 그룬트도, 콜럼버스호도 그랬다. 로켓은 하늘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굉장한 금속 파열음이 대기 위로 퍼지고, 독성 강한 로켓 연료가 연기로 변해 대지를 덮을 때, 그 아래 사는 주민들은 우주 침입자가 또 하나의 체르노빌을 만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소원자나 중력을 이용한 장치를 만든다면 은하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과학자, TV나 라디오 주파수는 이미 우주로 전해졌고, ET는 지구의 위치를 다 알 거라는 물리학자의 얘기를 들으면,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지구의 말을 가르친다는 SETI가 성급하달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 우주 탐사의 진짜 기능은 인간적 존재의 범위를 넓히고, ET에게 인류의 지성 안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저 밖의 문명이 이곳보다 몇만 년 앞서 있다면 지구인의 업적과 목표, 생물학적 구조, 태양계의 정보보다, 사람들이 도움을 청한다는 신호가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런데 지식 기반의 삶이 우주 어딘가에 또 존재한다면 두 세계는 어떻게 불일치와 소통 문제를
해결할까?

이전의 위대한 역사처럼 우리 역사에도 마지막은 온다. 석유의 시대가 끝나고 다시 1천 년이 지나 새 문명이 시작되면 그을린 빛깔의 반바지를 입은 미래의 생물들이 현대의 무덤에서 연예인들 코에 얹힌 실리콘을 뒤적거리며 “이게 당시엔 지위의 상징이었대”라고 할 것이다. 미래의 고고학자들이 제정신이 아닌 요즘 인류의 행동에 이성적으로 접근할 거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미래 교실은 요즘 인기 있는 종교들을 민화로 가르칠 게 틀림없다. 포세이돈이 바다에서 말을 창조했다던 고대 그리스인이나,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에서 취했다는 유대의 이야기처럼 어이없어하면서.

정확한 원리가 동반된 상상력의 터전 위에서, 증거로부터 나오는 요소를 실행하는 고고학처럼, 가능한 모든 증거와 사실을 모으면 우주 탐험 또한 논리적인 결과로 드러날 것이다. 진실은 새로움과 구식을 만드는 일그러진 아름다움 속에 있으니, 과학적 증명, 설득력 있는 근거를 원하는 세상에 스타워즈는 학문이 되었다. 상상의 우주는 특이한 현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의 역사는 계속 수정되고 있다. 과학이 완벽할 수 없다고 믿는, 논리적·신학적인 만큼 분별 없는 회의론 때문이 아니라,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형태가 없고, 임의의 것은 다 취소되기 마련이라서….

지금 나의 미래는 당장의 우주 탐험에 달려 있지 않다. 다른 논문도 과학자도 로봇도 필요치 않다. 우주선의 최고 속력과, 언제 로켓 추진을 하는지, 언제 초고속 엔진으로 바꾸는지도. 가끔, 과거에 대해 배우고 말하는 동안, 앞으로 얼마나 더 잔혹한 시대가 올지 궁금하긴 하다. 그래서 말인데, 척 베리가 필요한 이 시점에 그는 대체 어디 간 걸까.

    에디터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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