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위의 전성기 관찰

종종 열이 많은 팬들은 극진한 애정으로 놀랄 만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48세의 로저 그리핀은 데이비드 보위에 대한 숭배로 기상천외한 웹사이트를 구축,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별안간 지구에 떨어진 글램 록 스타에게 무릎 꿇고 경배하는 디지털 제단으로서.

데이비드 보위는 최고의 스타였다. 하지만 그가 항상 빛났던 것은 아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는 데이비드 보위의 경력 중에서 가장 덜 알려진 시기지만, 오히려 가장 훌륭했던 시기라고 인정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순수한 데이비드 보위를 보여주는 그 기간을 고스란히 정리한 타임머신이 탄생했다. 바로 한 익명의 팬이 만든 ‘데이비드 보위 골든 이어스’라는 웹사이트다. 단순한 팬 페이지가 아니다. 특정 기간의 데이비드 보위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자세히 기록한 연대기다. 그러니까 1972년작 ‘로큰롤 수어사이드’ 와 1980년에 발매해 세계적으로 히트한 앨범 <스케어리 몬스터스>의 사이다.

이 기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데이비드 보위가 ‘가부키 가수’에서 표현주의 예술가인 ‘마른 백인 공작’ 혹은 ‘베를린 펑크족 피에로’로 변하는 등, 격한 음악적, 미적 변화로 혼란스러웠던 6년이었다. 암흑기로 묻힐 뻔한 그 시간은 데이비드 보위를 숭배하는 록 밴드 킬러즈의 브랜든 플라워즈, 케이트 모스, 그리고 레이디 가가 덕분에 전설의 시대가 됐다. “그 웹사이트는 완벽한 광란을 관통하는 여행 같아요.” 스웨덴 출신 비평가 틴틴 퇴른크랜츠가 말했다. “보위의 미스터리와 화려함을 다루기론 여기가 지구 최고예요.” 이 놀라운 웹사이트의 주소는 끝내주는 마약 공급책의 비밀스러운 주소처럼, 데이비드 보위의 팬들 사이로 은밀하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데이비드 보위 골든 이어스에 처음 들어간다면 검소하다고 하기에도 너무 수수한 외형에 잠시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데이비드 보위의 차분하고 점잖은 ‘타임라인’이다. 지난 40년 동안 발간된 보위를 다룬 어떤 권위 있는 책보다 정확할 것이다. 1974년 8월 24일을 클릭하면 미국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독스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다. 삐쩍 마른 몸매에 귤색 머리카락을 바싹 넘긴,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늠할 수 없는 분장을 한 데이비드 보위가 미국 시장 정복에 나선 모습이다.

화성에서 온 전설의 예언자 같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비행 공포증이 있어서, 미국 동부의 필라델피아에서 서부의 끝인 로스앤젤레스까지 기차를 탔다. 3일 후, 그가 도착하자 팬들의 광란이 벌어졌다. “팬들이 비버리 윌셔 호텔 그의 방까지 쳐들어가는 것을 경비원들도 막지 못했다”라고 그 웹사이트에 적혀 있다. 계속해서 클릭을 하다 보면, 엄청난 자료에 갈수록 놀라게 된다. 세세하고 다양한 자료, 미공개 인터뷰, 사진, 비디오 자료까지 차례대로 보다 보면, 경찰의 호위 속에서 리무진 뒷좌석에 앉아 있는 데이비드 보위를 만나게 된다. 면도한 눈썹에 담배를 피우며 깔끔한 회색 양복을 입고 곧은 자세로 앉아 있는 데이비드 보위의 사진도 있다. (그 양복이 이브 생 로랑의 것인지는 아직 확인 중이다.)

대로를 가로질러 걷는 늑대나 코요테를 닮은 보위도 보인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LA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영상도 있다. “여긴 참 조용해요. 아주 거대한 연예 산업 중심지이기 때문에 드는 압박감도 장난이 아닌데요. 그런 무게를 누그러뜨리는 피상적인 고요가 있어요. 이런 불편한 기분은 이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서 느껴져요.” 리즈 테일러가 보위에게 장난치며 그를 안고 있는 것을 테리 오닐이 찍은 사진도 있다. 보위의 인기는 할리우드에서도 최고였다. 할리우드의 모든 사람이 그를 만나거나, 닮고 싶어 했다.

어느 무대 뒤에서 데이비드 보위는 마이클 잭슨을 만났다. 마이클 잭슨은 보위에게 흑인 브레이크 댄서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뒤로 미끄러지는 동작을 해보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아마 이게 문워크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황금기에 대한 수많은 조각을 정교하게 짜 맞춘 집요한 집착, 수집가를 넘어서 헌신적인 인류 학자의 반열에 오를 만한 세심한 순수.

이쯤 되면, 대체 이 웹사이트를 만든 자가 누구인지 궁금할 만하다. “모든 것을 한 상자에 넣어 하나의 사조로 만들고 싶었어요. 감수성이 충만한 열두 살 소년이었던 1974년에 시작한 그 작업을 완성한 거죠.” 시드니에 살고 있는 그래픽 아티스트 로저 그리핀이 말했다. 키가 크고 검정색 옷을 입었으며, 자유분방한 회색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가 발견한 데이비드 보위의 흔적에 대해 말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엉뚱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로저 그리핀은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그가 처음 ‘지기 스타더스트’를 들은 건 아홉 살 혹은 열 살 때쯤이었다. “당구대가 있는 방에 있었는데 스피커에서 좀 색다른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음악이라 귀를 의심할 정도였죠. 바로 앨범 커버를 찾아냈어요. 그게 제 인생의 엄청난 분기점이었어요. 누군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믿기 힘들 만큼 엄청난 일을 하고 있고,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하지만 그는 다른 대다수의 팬들이 주로 언급하는 것에는 관심이 적었다. 오직 데이비드 보위가 1974년 4월 배를 타고 처음 뉴욕에 도착했던 시절부터 베를린 생활을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까지의 기간에 초점을 맞췄다. 그때 데이비드 보위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엘리펀트 맨>을 공연했다.

“1980년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데이비드 보위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이었고, 방랑 생활도 마친 시점이었죠.” 로저 그리핀은 1999년 인터넷을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데이비드 보위의 얘기를 찾아다니며 웹사이트에 사용할 자료를 모았다. 그에게 데이비드 보위는 엄청난 영웅이었지만, 호주의 TV 방송에서 그를 보긴 힘들었다. “영국이나 미국에는 차고 넘칠 자료도 호주에서는 구하기 힘들었어요.” 로저 그리핀이 말했다. “1978년 데이비드 보위가 호주에서 한 공연은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어요.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교감을 하고 있었죠. 아마 그 색다른 교감이 집착을 키운 것 같아요. 꽤 고독한 기분이었죠.”

올해 마흔여덟 살인 로저 그리핀, 그리고 그 세대의 많은 팬들은 비슷한 고독을 느꼈다. 로저 그리핀에게 1983년에 발표한 ‘렛츠 댄스’로 대변되는 데이비드 보위의 비정상적인 상업적 변신은 숭고한 시대의 종말과도 같았다. “그건 어떤 ‘다른 무언가’였어요. 데이비드 보위는 내게 전부였지만 내 안에 있는 동성애적인 욕망을 일깨우진 않았어요. ‘렛츠 댄스’를 듣고 정말 화가 났고, 너무 실망했어요. 그가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대신, 상업주의와 타협했다고 느꼈어요.”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로저 그리핀에게, 데이비드 보위의 황금기는 즐겁고 예술적 감성이 충만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열두 살로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를 깨닫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향수는 죽음이라고 말해요. 하지만 내게 향수는 우울한 것만은 아니에요. 오히려 유익하고 즐거운 일이죠.”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수한 욕망은 영국 출판사 옴니버스 프레스에 좋은 인상을 줬다. 옴니버스 프레스는 로저 그리핀에게 그의 사이트의 내용을 보강해 더 넓은 폭으로 데이비드 보위를 소개하는 책을 제작해달라고 의뢰했다. “로저는 데이비드 보위의 개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세세한 부분에 놀랄 만큼 집중했어요.” 편집장 데이비드 바라클로프가 말했다. “데이비드 보위 본인조차도 잘 기억해낼 수 없는 부분까지 말이죠.” 그렇게 완성된 책 <보위 골든 이어스>는 2013년 중반에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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