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빵좀주소, 정성화

2012.10.03유지성

빵 하나를 바닥에 놓았을 뿐인데, 정성화는 스스로 눕고, 포복하고, 또 먹었다. 목표는 진작에 이뤘지만,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성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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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는 더 화이트 브리프 by 퍼블리시드, 회색 바지는 PT01 by 퍼블리시드, 니트 비니와 서스펜더는 모두 아메리칸어패럴. 빵칼은 헹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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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8월 31일) < 라카지 >를 봤다. 만족스러운 날이었나? 만족했다. 그날 분위기 좋았다. 입소문을 듣고 온 관객들이 많았던 것 같다.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날, 관객들의 박수도 비례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 라카지 >는 코미디지만, 종종 남경주 선배와 감정적인 교류가 굉장히 잘될 때가 있다. 그럴 땐 오히려 관객들이 잘 안 웃는다. 너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워서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끼리 너무 좋을 때는 관객 분들이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관객들이 웃어야 할 장면에서 안 웃으면 좀 당황스럽나? 가끔 좌절하기도 한다. 그런데 관객들이 이 정도는 웃어야 돼, 란 강박관념을 가지면 자기가 힘들다. 불행하고. 특정 신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상대 배우와 교류할지, 즉 목적을 수행하는 데만 집중하면 관객이 많이 웃지 않아도 괜찮다. 안 그러면 ‘멘붕’이 온다.

개그맨 출신이라, 무대에서 안 웃는 관객이 다 보인다고 말했다. 여전한가? 보인다. 1천 명을 놓고 공연한다 치면, 그중 한 명만 안 웃어도 보인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다 웃겨야 한다는. 관객 1천 명이 있으면 천 개의 촉수가 나온달까.

< 영웅 >이나 < 레미제라블 > 같은 뮤지컬은 웃기기보단 울리는 쪽에 가깝다. 역시 다 보이나? 그런 부분은 좀 더 자유로운 것 같다. < 영웅 >은 관객을 감동시키는 극적인 뮤지컬이다 보니, 코미디보다 맘이 편했다. 관객을 웃길 때는 행복하다. 붕 떠 있는 기분.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웃는구나…. 울릴 땐 엄청난 성취감이 생긴다. 내가 사람들을 바꿔놨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개그맨이 꿈이었다고 들었다. 요즘엔 뮤지컬은 물론 드라마도 하고, 영화도 한다. 다시 코미디 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 지금은 못 간다. 내가 < 개그 콘서트 >에 나간다면, 일종의 이벤트는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예 직업 삼기엔 다시 엄청난 수련이 필요할 것이다. 내 기량도 그렇고 시대적인 상황, 개그의 사조 다 변해 있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동안 해온 뮤지컬을 저버리고 다시 갈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코미디는 단발성으론 할 수 없는 종류의 연기란 말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코미디는 유행에 민감하고, 어떻게 보면 단발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인물들이 갑자기 떠올랐다가 확 죽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사람들을 웃긴다는 건 상대방에게 굉장히 크게 각인되는 것이다. 인기 면에선 위험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극 속에서 배역을 캐릭터화시켜서 재미있게 만들면 생명력이 더 길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틴틴파이브의 에이스였던 홍록기가 갑작스럽게 팀을 나가고, 정성화란 낯선 신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 1994년 8월 12일자 경향신문엔 이런 기사가 났다. “정성화는 홍록기가 빠진 틴틴파이브의 공백을 메운 신인으로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이다. 그러나 잘생긴 얼굴과 신세대들의 웃음거리를 잘 읽어내는 개그감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등골이 오싹한 기억밖에 없다. 생짜 신인이었는데, 갑자기 PD님한테 불려갔다. “너 내일부터 틴틴파이브야. 록기가 빠지고 널 틴틴파이브에 넣게 되었어. 열심히 해.” 그리고 갑자기 어느 감자탕집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갔더니 틴틴파이브 형들이 축 처져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록기 형 없이. 한 시간쯤 설교를 듣고 그렇게 들어갔다. 내가 잘할 리가 있나. 혼났던 기억밖에 없다. 지방에 행사 갔는데, 록기 형 파트에서 내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탐탁지 않아 하는 게 보였다. 그 어린 시절에…. 그 상처가 지금 나에겐 굉장히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아까 말했듯 무대에서 ‘멘붕’을 극복하는 데? 맞다, 맞다. 또, 정말 잘 되어야겠다, 난 잘되고 말 거야, 이런 식의 성공에 대한 집착!

2007년 < 맨 오브 라만차 >에서 조승우와 함께 돈키호테 역을 맡았을 때, 조승우가 15분 만에 티켓 1만 6천 장을 팔았다고 들었다. 어쩌면 요즘엔 정성화가 나오는 티켓이 더 빨리 팔릴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 친구 표가 훨씬 빨리 팔린다. 그땐 갑자기 내 표가 한꺼번에 다 팔리는 것이 엄청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할 수도 없었고, 그게 뭔지도 몰랐다. 승우 표가 잘 나간단 얘기가 있기에 이제 내 것만 팔면 되겠네, 생각할 뿐이었다.

< 레미제라블 >은 원캐스트다. 즉, 주인공이 당신 한 명이다. 좀 다른가? 글쎄, 그런 생각 안 하려고 노력 중이다. 날 보러 오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뮤지컬 < 레미제라블 >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더 많을 거다.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 맨 오브 라만차 >할 때랑은 그런 부분이 좀 다르다. 뭐, 당시에도 승우가 표 잘 팔렸다고 뻐기지도 않았고, 난 그것 때문에 기죽지도 않았고….

조승우가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이 상은 정성화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참 속 좋게 그렇게 해줬다. 나 같으면 입 싹 닫고 말 텐데.

< 영웅 >으로 < 더 뮤지컬 어워즈 >에서 남우주연상 받았을 때, 시상대 위에서 좀 울었다. 뭔가에 대한 극복의 눈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 이게…. 음, 그랬다. 내가 괜찮다, 괜찮다 얘기하고 신경 안 쓴다, 신경 안 쓴다 말하지만, 상처를 많이 입었다. < 컨페션 >에서 처음으로 주인공 역을 맡았을 때, 내가 연기하면 관객들이 웃었다. 진지한 연기를 하는데도 웃었다. 물론 내가 연기를 잘 못한 탓도 있다. 그렇지만 좀 서러웠다. 2007년에 < 맨 오브 라만차 >에서 (조)승우랑 돈키호테 역을 나눠 맡았을 때도 그랬다. “정성화… 는 아무래도 개그맨 출신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노래랑 연기는 훌륭했지만 왠지 좀 별로였달까?”같은 말들. 내가 도대체 못했다는 건지, 잘했다는 건지. 이후에 < 더 뮤지컬 어워즈 >, < 한국 뮤지컬 대상 > 합해서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노미네이트됐는데, 다 떨어졌다. 좀 체념했다. 아, 이 바닥에서 인정받긴 어렵겠구나. 내 몫이나 열심히 하자고 다짐한 뒤 어느 정도 극복이 된 상태였는데, 상을 탁 받아버렸다.

전혀 예상 못했었나? 또 뭔가 받지 않을까 기대는 했다. 이름이 호명되고 계단을 올라가서 트로피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 그동안 겪어왔던, 넘어왔던, 이겨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면서 주마등처럼 옛날 그림들이 쫙 스쳤다.

코미디, TV 드라마, 뮤지컬 전부 합쳐서 첫 번째 트로피였나? 처음이었다. 그래서 막 눈물이 났다. 난 웃음을 주는 사람이지 가벼운 사람은 아닌데. 나름대로 철학도 있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그래서 그런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했는데…. 이제 사람들이 날 약간은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는 것도 감격스러웠고.

< 레미제라블 >은 뮤지컬 배우들이 나오는 뮤지컬이다. 그 흔한 아이돌 조연도 없다. 영국 사람들이 와서 오디션을 한다고 공고가 났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뮤지컬 배우든, 아무도 모르는 배우든 동일선상에 놓고 오디션을 본다고 했다. 즉, 페어플레이. 이 오디션에서 장발장이 된다는 건, 영국인들에게도 통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욕심이 났다. 그런데 덜컥 됐다. 옆을 보니까, 정말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배우들이 합격해 있었다. 아직 연습도 안 해봤는데, 너무 뿌듯했다.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정말 다 모였다.

캐스팅 담당자들이 사전 정보 없이, 미리 배우들의 영상도 보지 않고 한국에 와서 직접 오디션을 진행한 건가? 맞다. 물론 장발장 역엔 배우들이 몰리니까 초청 오디션 형태였다. 장발장이 된다는 거…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좀 잘한다 하는 사람들과 같이 어깨를 겨뤘다는 자부심이 있다. 사실 그렇다. < 레미제라블 > 관련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내가 너무 재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럴 때가 많다. 하하. 아무리 겸손하려고 해도, 겸손하지 않은 말처럼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설렘은 매년 올 것이다. 그래도 이번이 가장 기대되나? 그렇지만 가장 부담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아까 얘기했듯이 < 레미제라블 >은 워낙 유명한 뮤지컬이다. < 라카지 >는 관객들에게 생소하다. 의외로 와서 봤더니 재미있더라, 잘 하더라 생각할 수 있지만 < 레미제라블 >은 그렇지가 않다. 관객들 각각이 생각하는 장발장이 이미 존재한다. 이를테면 나이는 어느 정도, 목소리는 어때야 하고. 각자의 기준이 다 다르다. 거기 부합하지 못하면 난 그분들에겐 잘 못하는 사람이 된다.

팔짱 끼고 보는 관객이 유난히 많을 수 있다. 물론이다. 그래서 엄청난 부담이 있다.

< 레미제라블 >을 비롯해 4대 뮤지컬을 모두 제작한 카메론 매킨토시는 실제로 만났나? 못 만났다. 런던에 갔을 때 오디션에서 만난 < 레미제라블 >의 음악 감독과 연출가를 다시 만났다. 카메론 매킨토시는 지금 < 레미제라블 >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배역은 카메론 매킨토시가 최종 결정한다고 들었다. 당신을 왜 선택했는지 들었나? 그건 못 들었다. 그냥 음악 감독님이 “카메론이 성화 너의 노래를 되게 감명 깊게 들었다”고만 말해줬다.

연기가 아니라 노래가 맘에 들어 당신을 택한 건가? 내 생각에 장발장은 노래도 노래지만, 배우의 연기적 페이소스가 관객에게 정확히 전달되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런 것들을 조금 내가, 음… 이거 봐, 또 잘난 척. 자꾸 이런 얘기를 한다.

< 레미제라블 >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송 스루 뮤지컬이다. 대사 발성이나 또렷한 딕션이 장기인 당신을 택했다는 점에서, 좀 의외였다. 이렇게 생각한다. 송 스루 뮤지컬은 노래, 가창보다 전달이 우선이다. 노래도 어떻게 보면 대사다. 노래 안에서 관객 분들에게 정확히 표현해야 할 대사들을 남들보다 잘 들리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있다.

< 영웅 >의 하이라이트 ‘누가 죄인인가’처럼 말인가? 맞다. 말과 마찬가지로 가사에는 리듬이 있다. 리듬에 따라 강조해야 할, 약하게 뱉어야 할 단어가 존재한다. 강조해야 할 단어는 효과적으로 강조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약화시켜야 할 부분은 굉장히 약화시켜서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부분엔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송 스루 뮤지컬은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 부분보다, 노래가 말처럼 들려야 하는 부분이 더 많다. 그런 부분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카메론 매킨토시는 < 미스 사이공 >의 ‘킴’ 역할을 찾기 위해 1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 레미제라블 >도 마지막까지 공연을 연기할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적당한 배우를 찾지 못했나? 코제트 역할이 마지막까지 공석이었다. 지금 선발된 친구는 오디션을 10차까지 했다. 코제트 역할에 도전하는 배우들이 뭔가 1퍼센트씩 부족하던 상황이었는데, 커버 역할로 코제트를 맡았던 친구가 10차까지 메인 코제트 역에 도전해서 결국 배역을 따냈다. 심사위원들도 9차, 10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제 네가 해라, 오디션을 보는 동안에 그 배우가 성숙했구나….

예전 인터뷰를 살펴보면, 장발장만큼 자베르 경감 역할도 욕심을 냈다. 자베르 경감 역은 시간이 좀 더 있다고 생각했다. 장발장이 부르는 노래가 굉장히 어렵고 양도 많다. 에너지가 있을 때 장발장을 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요즘에도 포털 사이트에 자기 이름 넣어보나? 칭찬을 많이 못 받고 자라서 그런지, 누가 날 칭찬해주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후기나 블로그 검색해서 내 이름이 나오는 글을 읽는 게 큰 기쁨이다. 요즘 그런 부분에서 좀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악플도 다 읽나? 악플은 아직까지 많이 못 봤는데….

어쩐 일인지 검색창에 ‘정성화’를 쳐보면 좋은 얘기 일색이다. 정성화의 단점은 뭘까? 좀 조급하다. 빨리 끝내놓고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뒤처지는 경우가 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스트레스형 인간이라서. 누구한테 “못한다”는 소리를 못 듣는다.

신춘수 대표도 한 인터뷰에서 “정성화는 좀 더 빈틈을 가져야 한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맨 오브 라만차 > 할 때 한두 시간씩 일찍 와 있고 이러니까, “쟤는 도대체 얼마나 더…” 이런 얘길 하셨다. 그래서 그날 그렇게 말씀하신 거다. 하하.

같은 작품에 여러 번 출연하는 편이다. < 맨 오브 라만차 >는 세 번, < 영웅 >도 세 번. < 영웅 >은 미국도 갔다 오고, 네 번 했다. 내 나름의 전략이기도 하고, 고맙게도 제작사가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한텐 호재다. 같은 역할을 자주 함으로써, 그 작품을 정성화의 이름으로 브랜드화시키는 거랄까. < 영웅 >은 내가 오래했기 때문에 < 영웅 >=정성화란 이미지가 있겠지만, 이제 다른 배우가 해도 무방할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더 이상 안중근 역을 맡지 않아 아쉬워하는 관객이 많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사람은 관성이란 게 있으니까. < 라카지 >도 그렇고, < 맨 오브 라만차 >도 그렇고, 난 참 복이 많은 배우다. 나 나름대로 레퍼토리가 생기니까.

< 영웅 > 끝나고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뭘 배웠나? 마지막으로 < 영웅 > 공연할 때 회수가 워낙 많아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설희 역할을 맡았던 (이)상은이 누나가 이렇게 말했다. “성화야, 목소리 낼 때 지금처럼 내면 체력이 금방 떨어질 것 같아. 배 근육이 아니라 숨으로 소리를 내야 돼. 그래야 소리도 더 예쁘고 전달도 잘돼. 에너지도 있고. 턱이 자유롭거든.”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누나처럼 외국으로 나갔다. 견문도 넓힐 겸. 거기서 선생님들 섭외하고, 기본적인 발성을 배웠다.

다녀와서 < 라카지 >에 출연했다. 효과 좀 봤나? 그렇진 않았다. 거기선 내 문제점이 뭔지 배워온 거다. 그 문제점을 고치는 건 이제 내가 앞으로 해야 될 일이다. < 라카지 > 하면서 계속 실험했다. 그래서 점점 좋아지는 것도 있었고, 좀 더 힘이 들었던 부분도 있었다.

극중에서 앨빈이 부르는 ‘I am what I am’은 < 라카지 >의 하이라이트다. 그런데 다른 노래보다 힘이 좀 들어간다는 인상이었다. 말하자면, 근육으로 내는 소리처럼 들렸달까. 그렇다. 계속 실험 중이다. ‘I am what I am’은 정말 어렵다. 0에서 시작해서 100을 내면 사람들이 100에서 박수를 친다. 그런데 98에서 시작해서 100에서 끝내면 사람들이 박수를 많이 안 친다. ‘I am what I am’은 98에서 시작하는 노래에 가까워 쉽지 않았다.

동성애자 역할을 자주 맡는다. 연극 < 거미여인의 키스 >에서의 몰리나 역할도 그렇고, 드라마 < 개인의 취향 >에서도 가짜 게이를 연기했다. < 라카지 >는 사실 고사하려고 했다. < 거미여인의 키스 >로 게이 역을 한 번 했는데, 또 맡으면 관객 분들이 보시기에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일단 < 라카지 >는 뮤지컬이고 < 거미여인의 키스 >는 연극이다. 주인공 앨빈과 몰리나 역시 직업은 물론 사상과 처한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사실 게이 역을 맡을 땐, 이전 작품을 완전히 진중한 걸로 끝낸 다음에 했다.

전략적인 건가? 너무 전략, 전략 하면 배우가 감성이 없어 보이긴 하는데, 관객들이 정성화의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기대할까를 고민했다.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아쉽게도, 드라마나 영화에선 아직 주인공 친구다. 물론이다. 영화도 열심히 하다 보면 뮤지컬 같은 기회가 올 거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 댄싱퀸 > 하면서 영화계에 있는 몇몇 분들이 “정성화 참 믿을 만한 배우다”같은 얘길 하시는 걸 듣기도 했다.

주연 제의도 들어왔나? 그건 아니고, 역할이 전보다 좀 더 많이 들어왔다. 내가 뮤지컬에서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영화계에서 그걸 어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한텐 그게 “아이 돈 케어”다.

역시 카메라보다 관객이 앞에 있는 게 더 편한가? 아무래도 좀…. 영화나 드라마 찍을 때도 스태프가 웃어야 관객이 웃는다고 생각하고 연기한다.

어쨌든 뮤지컬을 시작핼 때 목표로 삼았다던 장발장까지 왔다. 이제 꿈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나? 그건 < 맨 오브 라만차 >에서 ‘임파서블 드림’을 부르는 순간 이미 이뤄졌다. 그 노랠 부를 때면 아, 내가 꿈을 이뤘고, 이제 또 저 별 너머에 뭐가 있는지, 내게 남은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계속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맨 오브 라만차 >의 돈키호테야말로 당신 모습이 아닌가 싶다. 무모하고, 순정을 바치고, ‘임파서블 드림’을 부르는. 그 노랠 하면 묘하게 편하다. 자가발전, 그러니까 일부러 감정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지난날의 설움 같은 게 노래에 투영돼서 그런 게 아닌가….

그렇다면 < 레미제라블 >은 보너스 게임이라 할 수 있나? 그렇다기보다 본 게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제작발표회 때 이런 얘길 했다. < 레미제라블 >은 나한테 정말 먼 지평선 너머에 희뿌옇게 보이는 산과 같다고. 바닥에서 열심히 생활하다 보니까 어느덧 그 산이 내 앞에 와 있었다. 이 산을 넘어가면 저 뒤에 뭐가 있을진 아직 모르겠다.

다음을 묻는 게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그렇다. 나한텐 지금 내게 주어진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것만 잘 헤쳐 나가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지엽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배우의 삶은 사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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