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연경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

2012.10.15유지성

김연경을 만났다. MVP, 배구장의 메시, 우승청부업자 대신, 좀 다혈질에, 예쁘단 말에 활짝 웃는, 세터 출신 레프트 공격수 김연경을 만났다.

흰 셔츠와 청바지는 꼼 데 가르송 옴므 플러스, 구두는 처치스 BY 퍼블리시드, 서스펜더는 아메리칸어패럴, 양말은 자라.

흰 셔츠와 청바지는 꼼 데 가르송 옴므 플러스, 구두는 처치스 BY 퍼블리시드, 서스펜더는 아메리칸어패럴, 양말은 자라.

다 큰 남자들이, 김연경 멋있다고 말하는 건 좀 재밌긴 하다. 재미있다. 그 정도까진 몰랐는데…. 싫진 않다. 웃기고 재미있는 거 같은데?

올림픽 끝나고 메달 대신 MVP를 받았다. 슬픈 마음이 앞섰다. 메달을 꼭 따고 싶었던 맘이 강했기 때문에…. MVP의 기쁨보다 메달을 놓친 아쉬움이 더 컸다.

올림픽 기간 동안 협회의 지원이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준결승 당일까지 현지 지원금이 총 5백60만원. 그런데 출정식 비용으론 8천만원을 썼고, 코칭 스태프 역시 일본이나 타 팀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진짜 화 많이 났다. 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지원만 있었으면 무조건 메달 땄다. 지금 한국 배구 대표팀엔 좋은 선수가 많다. 그런데 이용을 잘 못한다.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얘길 들어봐도 이렇게 지원이 안 좋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는 것 같다. 태국처럼 우리보다 실력이 뒤지는 국가도 지원이 충분하다.

여자 배구 대표팀을 위한 의료진조차 없었다는 게 사실인가? 태릉선수촌에서 나온 의료진만 있었다. 배구팀 의료진도 따라왔는데, 티오가 안 나왔다. 그래도 다른 나라는 빌리지 안에 다 들어왔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됐다. 트레이너, 닥터 넷, 코치 둘 이렇게 왔는데 다 못 들어왔다. 밖에서 응원하고, 호텔에서 자고 그랬다. 말도 안 된다. 일본한테 지고 나서 완전히 열받아서 체육관 밖으로 나가는데, 거짓말 안 하고 일본 관계자가 1백 명쯤 와 있었다. 박수치고 난리가 났는데, 우리 관계자는 딱 두 명 왔다. 질 수밖에 없는 경기였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뭔가 너무 억울했다.

김연경만이 할 수 있는 얘기다. 어떤 책임감이 있나? 있는 것 같다. 한국 배구가 앞으로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화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침체되어 있다. 그런데 안에만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선수들에게 얘기한다. 기회가 되면 어디든 나가라, 시합 뛰지 않아도 배울 게 있다고 말한다. 개선해야 할 부분을 개선해서 배구 인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돌연변이의 시대라 말하고 싶다. 김연아, 박태환, 그리고 김연경. 뜻밖의 종목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나온다. 88년생이면, 배구의 전성기가 한참 지난 뒤에야 배구를 접했을 텐데, 어떻게 동기를 찾았나? 그냥 배구를 하면 재미있었다. 항상 꿈을 꿨다. 처음엔 청소년 대표를 해보고 싶었고, 다음엔 프로가 되고 싶었고, 대표팀, 해외 진출, 이런 순서로 목표를 잡았는데, 하나하나 이뤄나가면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우상이 있었나? 누굴 동경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특정 선수를 동경한다기보다, 선수들 각각의 장점을 봤던 것 같다. 이를테면 장윤희 선배님의 리시브가 좋으면 리시브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도희 선배님에게서는 토스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올림픽 끝나곤 좀 즐겼나? 운동선수의 봄은 짧다. 공항 들어왔을 때 취재진이 엄청 많았다. 팬 분들도 많이 오고. 좀 놀랐다. 지금도 길거리 다니면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줘서 기분이 좋다. 그냥 좀 바쁘게 지냈다.

광고도 찍었나? 앞으로 좀 찍을 것 같다. 금전적인 부분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물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부분이…. 좋은 게 많이 들어올 것 같긴 하다.

양학선 같은 선수를 보면 샘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신도 혼자라면 세계 1등인데. 금메달 딴 선수들은 다 세계 1등이니까. 음, 광고 찍을 거다, 그런 게 있다. 하하.

팀 스포츠라서, 혼자 잘해도 벽에 부딪히는 순간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나는 구기 종목이 정말 멋진 것 같다. 단체 생활도 좋고. 개인 종목은 외로울 것 같다. 다른 시합은 몰라도 올림픽에선 꼭 메달 따고 싶다. 이제 정말 꿈, 내 꿈 자체가 올림픽 메달이다.

지난해 소속팀 페네르바체가 정규 리그 무패 우승을 거뒀다. 유럽 최강팀들이 겨루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했다. MVP는 수도 없이 받았다. 프로에선 이제 다 이뤘나? 작년에 1년 뛰었고, 반짝해서 MVP도 타고 우승도 했지만 아직까지 세계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해서 선수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 배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많이 되고 싶다.

재킷과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 배기 팬츠는 꼼 데 가르송 옴므 플러스, 구두는 크로켓 앤 존스, 선글라스는 장 마릴, 깃털 브로치는 앤 드뮐미스터, 타이는 발렌시아가.

재킷과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 배기 팬츠는 꼼 데 가르송 옴므 플러스, 구두는 크로켓 앤 존스, 선글라스는 장 마릴, 깃털 브로치는 앤 드뮐미스터, 타이는 발렌시아가.

배구 선수로서 롤 모델은 없다고 했지만, 전 종목을 통틀어 닮고 싶은 선수가 있나? 박지성 선수. 나도 운동 그만두면 자선 재단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박지성 선수가 하고 있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부분도 배우고 싶다.

지도자 생각은? 승부라면 물불 안 가리는 김호철 감독이 떠오른다. 조금 있다. 해외에서 배운 걸 가르쳐주고 싶다. 다혈질일 것 같다. 욕도 좀 하고, 논란이 되고. 하하.

내일모레면 터키로 떠나는데, 아직 흥국생명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해외 진출에 대해선 흥국생명 측도 동의했지만, 구단은 여전히 FA로서의 권리와 에이전트에 대한 부분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흥국생명 소속 선수 김연경으로 다시 임대계약을 체결하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기보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난 이미 페네르바체와 계약을 했고, 페네르바체 소속이다. 내가 다시 계약을 하면 이중계약이 된다. 흥국생명의 요구에 대한 결정은 페네르바체가 내린다. 난 그것에 대한 권한이 없다. 페네르바체가 흥국생명의 제안을 OK한다면 임대로 나갈 수는 있지만, 페네르바체에서 당연히 안 하겠지. 계약서를 새로 써야 하기 때문에.

페네르바체가 허락한다면 임대로 나갈 생각이 있나? 생각은 있지만….

싸워서 이겼으면 한다. 김연경이 아니면 누가 그걸 이겨내나? 생각은 있지만, FIVB 세계연맹에 제소하면 나와 내 에이전트 쪽이 무조건 이긴다. 판정을 받아 따를 수도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해 통역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는 등, 임대 신분 선수에게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에이전트가 생긴 이후 확실히 편안하다. 해외에선 통역뿐만 아니라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흥국생명도 흥국생명의 일이 있기 때문에 나 하나를 도맡아 관리할 수 없다. 일 있다고 갑자기 날아올 수도 없고. 그래서 거의 메일로 일을 했는데, 유럽은 일의 속도가 느려 전달이 잘 안 됐다.

흥국생명이 임대료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건 사실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공식적으론 안 받았지만, 비공식적으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자세히는…. 받았다는 얘기들도 있다. 얘기들은. 그런데 문서로는 없기 때문에….

연봉의 일정 부분을 구단 측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부분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장학금으로 난 10퍼센트 정도를 생각했는데, 흥국생명 측에선 15퍼센트, 1억 2천을 달라, 그 다음 연도에는 2억을 내라 이런 식으로…. 장학금이라면 내가 기분이 좋아서 금액을 정하고 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단 측에서 너무 쉽게 얘기하면서 금액까지 정하고, 사인도 억지로 하려고 하는 등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뛸 생각이 있나? 생각은 있다. 엄청난 활약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단, 후배들을 도와 한국 배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돌아와서 흥국생명에서 뛸 수 있나? 상관없을 것 같다. 내가 할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뭐 그냥… 그때까지 지금 계신 단장님이 계시겠나? 하하.

터키는 아무래도 낯설게 들리는 나라다. 터키에서의 즐거움은 뭔가? 터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랑 비슷한 게 많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형제의 나라라고 반겨준다. 차 운전도 굉장히 험하게 하는데, 그래서 좀 서울 같기도 하다.

성격상 딱이겠다. 나도 터키인들을 좋아하고, 터키인들도 날 좋아한다. 적응해서 편하다.

지금까지 당신이 이룬 성과에 대한 평가는 어떻다고 생각하나? 사실 올림픽 전까진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정말 큰 사건이었다. 몇몇 종목은 외국팀이 우승해도 한국에서 방송이 나오는데, 한국인인 내가 우승팀에서 뛰었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매 경기 출전하고, 양 팀 통틀어 최다득점을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 서럽기도 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많은 분이 알아주셔서 고맙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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