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류현진 경영학

2012.10.15GQ

류현진의 미국 진출은 야구계의 염원이 되었다. 그러나 비즈니스에 대한 얘긴 그 어디에도 없다.

1994년 박찬호의 LA 다저스 입단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54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거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중 성공한 사례는 극소수다. 빅리그 무대를 한 번이라 밟는 데 성공한 선수는 12명. 투수로는 박찬호와 김병현과 서재응이, 타자로는 최희섭과 추신수 정도만이 주전급으로 활약했다. 마이너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는 많지만, 빅리그에서까지 성공할 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받는 선수는 이학주(탬파베이) 정도다. 진출 초창기만 해도 넘쳐나던 한국인 빅리그 투수의 계보는 서재응을 마지막으로 끊긴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최근 야구계에서는 류현진의 미국 진출에 몹시 큰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류현진은 현존하는 국내 투수 중 미국 무대에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좌완에 빠른 볼이 위력적이고 컨트롤이 안정적인데다, 완투가 가능한 경기 운영능력도 있다. 무엇보다 결정구인 국내 최정상급 체인지업이 매력적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외국 타자들을 상대로 빼어난 투구를 보여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류현진이라면 충분히 한국 프로야구에서 미국에 직행해 성공하는 최초의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류현진의 미국행은 단지 희망사항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7년 차 해외 진출 자격 획득을 앞둔 올해는 거의 기정사실이 된 듯한 분위기다.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이면 포수 뒤편의 관중석은 레이더 총을 손에 쥔 미국 스카우트들로 가득 찬다. 언론은 연일 류현진을 향한 미국 야구계의 관심을 한껏 고무된 톤으로 보도한다. 메이저리그가 류현진의 투구에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이야기하는 스카우트 담당자의 멘트도 빠지지 않는다. 포스팅 금액은 얼마나 적당할지, 어느 팀에 가는 게 유리할지, 어떤 성적을 낼지 전문가의 말을 빌려 콕콕 짚어 설계하는 기사도 나온다.

정작 한화와 류현진조차 서로의 입장에 대해 정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시점이다. 야구계 원로와 선배들은 “하루라도 빨리 갈수록 좋다”고 채근하고, 매체들은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됐다”며 닦달한다. 팬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그간 류현진에게 호되게 당한 다른 팀 팬들은 물론이고, 한화 팬들조차 에이스의 미국행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류현진의 미국 진출을 놓고 일종의 야구 ‘국론 통합’이 이뤄진 것처럼 보일 정도다. 류현진을 위한 ‘원기옥’이 커지면 커질수록 곤혹스러운 것은 소속팀 한화다. 훈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데, 칼자루는 한화가 쥐고 있다. 프로야구에서 선수가 자유롭게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권리는 FA 9년 차부터 주어진다. 아직 7년 차인 류현진은 구단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구단과 계약할 수 있다. 1년도 아닌 2년이 남았다. 아무리 류현진과 미국 구단이 서로를 원하고, 야구팬들과 온 우주가 류현진의 미국 진출을 소망해도 한화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상황.

류현진의 국외 진출을 찬성하는 쪽에서 ‘대의’를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찬성파는 한화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류현진을 통 크게 보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뷔 이후 오랫동안 류현진이 한화와 한국야구를 위해 희생했으니, 이제 그만 놔줄 때가 됐다고 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높은 무대에 도전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논리 아닌 논리다. 구단이 꿈 많은 젊은 선수의 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심지어 류현진의 해외진출은 ‘선’으로, 이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악’으로 몰아붙이는 이들도 있다. 자칫 한화의 비토로 류현진의 미국행이 무산되기라도 했다가는 한화가 한화 팬뿐만 아니라 8개 구단 팬들 모두의 ‘역적’으로 몰릴 분위기다.

대의를 중시하는 이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원래 대의라는 가치는 상대적인 법이다. 파울 라인 위에 떨어진 타구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페어가 되기도, 파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강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한국 에이스를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류현진의 미국 진출이 대의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화의 입장에서는 에이스가 팀에 남아서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더 중요한 대의일 수 있다.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내년에도 한화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을 보고자 하는 팬들도 분명 존재한다.

한화가 남의 대의를 챙겨줄 만큼 한가한 입장도 아니다. 한화는 최근 몇 년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거듭했다. 올해도 김태균과 박찬호, 송신영을 영입하며 투자를 했지만 7위와도 거리가 먼 꼴지에 머물렀다. 시즌 막바지에는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는 사단도 겪었다. 올해가 끝나면 당장 새 감독을 선임하고 팀을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즌 뒤 양훈이 군에 입대하고 박찬호의 거취도 보장하기 힘든 판국에, 팀 전력의 절반인 류현진마저 빠져나갔다가는 내년 순위는 8위가 아닌 9위가 될 수도 있다. 내년엔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합류하는데, 류현진이 빠진 한화가 오프시즌 전력보강을 거친 NC보다 셀 거라고 보장할 만한 근거도 많지 않다. 한화가 단골 최하위의 수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에이스 류현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류현진의 미국 진출이 얼마만큼 실익이 있는지도 꼭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과거 시카고 컵스의 구단주였던 필립 리글리의 말대로 “야구는 비즈니스라 부르기엔 너무 스포츠에 가깝고, 스포츠라 부르기엔 너무 비즈니스에 가까운” 그 무엇이다. 그런데 지금 류현진을 둘러싼 논란에는 꿈이나 희망, 대의와 같은 야구 만화에 더 어울리는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포스팅 금액과 성적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이 난무한다. 정작 중요한 비즈니스는 논의에서 빠져 있다. 지금이라도 류현진이 미국에 진출해 얻을 수 있는 득실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들도 거액의 포스팅 금액이나 연봉을 받아내지 못하는 추세다. 게다가 그간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다 미국으로 직행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상훈과 구대성이 일본을 거쳐 미국에 도전하긴 했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가운데 메이저리그 측이 과연 사람들의 기대만큼 류현진에게 만족스러운 조건을 제시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자칫 면밀한 계산 없이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가 조건이 맞지 않아 실패하면 선수 본인은 물론 한국 야구계에도 큰 상처다.

하지만 한화가 류현진과 팀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비즈니스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낼지는 의문스럽다. 시즌 내내 류현진의 해외 진출 논란이 계속되는 동안 한화는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 사이 류현진의 소망은 국민적인 염원으로 승격됐다. 이제는 한화가 의무적으로 류현진을 놔줘야 한다는 프레임이 형성된 지 오래다. 구단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기가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시간을 끌다가 자충수를 둔 격이다. 게다가 구단이 머뭇거리는 사이, 류현진 본인은 시즌 뒤 미국 진출 결심을 거의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한화의 반대로 미국행이 좌절되면, 류현진은 새로운 시즌에 대한 동기부여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구단은 구단대로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게 뻔하다.

한 야구인은 “새 감독 선임 이후에 류현진의 거취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늦다”며, 지금이라도 구단 고위층이든 프론트에서 류현진 문제에 대해 명확한 공식 입장을 표명해서 논란이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한화가 류현진의 미국행을 허용할 생각이라면 최대한의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 지금부터 계산기를 두드리며 준비해야 한다. 또 류현진이 빠진 팀 전력을 어떻게 채워나갈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반대로 류현진과 2년을 더 함께할 계획이라면, 미국 진출을 유보한 에이스의 박탈감을 보상하고 남은 기간 의욕을 되살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류현진이 있는 2년 동안 팀을 재건하고, 류현진 이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전력을 구축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

류현진의 해외 진출 문제는 선수 본인에겐 꿈의 실현이자, 지켜보는 이들에겐 대의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내 구단과 미국 구단이 얽힌 거대한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류현진을 둘러싼 어느 누구도(언론도, 팬들도, 야구계도, 한화 구단조차도)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에디터
    배지헌(야구 칼럼니스트)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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