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김연수의 일이라면

42.195킬로미터는 1킬로미터씩 나누어 뛰면 괜찮고, 소설은 하루에 세 시간씩 쓴다. 호수공원 옆 카페에서 해가질 때까지 김연수를 만났다.

호수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서 종이컵에 와인 마시길 즐긴다는 얘기를 들었다.
저녁 7시쯤 호수 건너편에 가면 해가 막 떨어질 즈음 호수에 불빛이 살짝 비쳐서 로맨틱하다. 그냥 그렇다고 한 얘기다. 보통은 여기 편의점에서 캔 맥주를 마신다. 이런 버릇이 최근에 생겼다. 달리고 와서 한 7시쯤, 해가 떨어지기 직전. 호수공원이 보이는 편의점에 한 시간 정도 앉았다 간다. 혼자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졌다. 그 시간 때문에 달리기를 한다. 맥주 마시려고. 두 캔 정도 마시면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다. 운동 직후니까 몸이 알코올을 직접적으로 흡수하는 듯한 명쾌한 느낌이 든다. 혈관에 알코올 주사를 놓는 듯.

오로지 즐기기 위해 달리는 것 같다. 목적이 있는 달리기라면 으레 맥주가 생각나도 생수를 찾는 식으로 절제하지 않나?
그러면 안 된다. 아, 안 될 것까진 없지만, 정말 맥주 맛이 극대화된다. 약간 힘들었다가 마시는, 그래서 달리기를 하는, 그 경험을 이미 했으니까 이제 이 맛이…. 지금은 끊었지만, 달리기 이후의 담배도 그렇게 맛있었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면 네다섯 시간 정도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다. 피우면서 뛸 수는 없으니까. 결승선 지나고 누워서, 완전히 지쳐서 피우는 담배는 진짜 최고의 맛이었다.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 힘들지 않나?
1킬로미터마다 표지판이 있으니까, 1킬로미터씩 뛰면 된다. “자, 이제 다음 1킬로미터를 가자”는 생각으로 뛰면 어쨌든 가게 된다.

5킬로미터 넘고 10킬로미터 가까워지면 관절도 내 관절이 아닌 것 같고, 티셔츠 무게까지 다 느껴지지 않나? 바람의 무게도 느낄 만큼.
맞다. 옛날에 폼 좀 잡으려고 스포츠 선글라스 끼고 뛴 적이 있다. 미쳤었지, 그걸 막 버릴 수도 없고, 나중에 너무 힘들었다. 전에 임진각에서 출발하는 마라톤에 나간 적 있다. 단체로 새 티셔츠를 맞춰 출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새 옷을 맞춰서 뛰면, 안 뛰어봐 가지고 잘 몰랐던 건지, 서너 시간을 뛰니끼 젖꼭지가 티셔츠에 쓸려서 피가 났다. 안 입던 티셔츠를 입고 한두 시간이면 몰라도 서너 시간은 안 뛰어본 거다. 그건 정말 고통이…. 그때 그분들이 어떻게 했냐면, 길가에 핀 나팔꽃을 떼서 가슴에 브래지어처럼 붙이고 뛰었다. 그런 상태로 가는 거다. 신발을 잘못 신고 나온 경우, 그래도 절룩절룩하면서 끝까지 가는 거다.

소설 쓰는 건 괴로운 작업인가?
괴롭진 않은데, 힘들다. 보통 하루에 다섯 시간, 열 시간 한다고 치고 이백 일 정도면 장편 하나 쓸 수 있다. 일단 시간을 보내야 된다. 정작 잘되는 시간은 뒤에 60일 정도다. 계속 앉아 있어야 되는 시간들이 앞에 있다. 자기 모멸적인 시간들. 이게 뒤에 있으면 괜찮은데 제일 앞에 있다. 처음엔 아주 상큼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자기가 쓴 걸 다시 보게 되고, 얼마나 허접한지 알게 되고, 내가 과연 쓸 수 있을까, 이런 시간들이 책을 쓸 때마다 매번 똑같이 있다. 항상, 똑같이 자기 확신이 안 되는 밤 같은 시간들이 있다. 지금은 책을 굉장히 많이 썼는데, 그래서 알게 된 것은 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다. 그걸 아니까 괴롭다기보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다. 어쨌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음 책이 나오는 거니까. 그렇다고 ‘좀 있으면 지나갈까?’ 그래서는 안 지나간다. 전력투구하면서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나온다. 진짜 반복되는 일인데, “정말 이게 최고야, 정말 잘 썼어”라고 생각하다 좀 지나면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다 뜯어 고쳐야 되는 거다. 지금은 내가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하는 최종 국면까지 왔다 해도 다시 고쳐야 될 거라는 걸 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쓸 때도 그랬다. “이게 전부다. 정말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이 정도로는 도저히 출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왔다. 그때 괴로움 같은 게 있다.

장편을 고치는 건 윤문이 아니라 탑을 다시 쌓는 수준 아닌가?
쓰는 게 어렵지, 장편 고치는 건 쉽다. 이야기를 바꾸는 즐거움이 있다. 소설가의 기술과 관련된 것이다. 이 사건을 어디다 배치할 것인가. 그것이 후반작업이다. 영화 편집과 비슷하다. 이건 맞고 이건 아니라는 건 대충 배치해보면 안다. 진짜 힘든 건 시작할 때, 이야기를 만들 때다. 모든 게 불확실하니 이게 최고의 이야기인지, 뭐가 더 있을지 모른다. 그게 괴롭다. 지금이 최고, 베스트를 다 한 건지 안 한 건지 확인할 수 없다. 마감 다돼서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다’라고 생각하는 게 창작의 일인 거다. 만족이 안 된 상태로 계속 써야 되는 것.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도 그렇게 괴롭게 시작했나?
이번엔 아주 다른 방식이었다. 연재하는 동안 괴로웠다. 쓰기 전에 연재를 중단할 생각도 했다. 이건 연재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마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
이 자체가 소설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5월까지도 ‘이 소설이 출판될 수 있을까?’ 의심이 있었다. 그러다 5월 말쯤 다시 고치면서 결말 부분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순서를 바꿔서 배열하고 나서 생각보다 훨씬 잘됐다. 좀 이상한 경험이었다. 막 바꾸다가 퍼즐 하나가 딱 맞춰진 느낌? 그래서 ‘어, 난 이런 그림이 나올 줄 몰랐는데?’ 그런 거다. 하다 보니 내가 못 보던 게 나왔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었다. <원더보이>는 좀 덜했다. 독자로서 변화가 있었던 건지, 당신이 작가로서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변했던 것 같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소설로만 보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비해 이야기가 3분의 1 정도밖에 안 들어갔다. 사람들도 이야기에 필요한 정도로만 자기 얘기를 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필요고 뭐고 누구나, 모든 사람이 자기 얘길 계속했다. 다음은 기술적인 부분이다. 이야기를 어떻게 좀 더 효과적으로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예전에는 시간을 멈추고 과거로 갔다. 그러다 현재로 돌아왔다.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적게 하자, 일단 플롯만 얘기하자’ 해서 과거로 갈 때 시간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현재에서 라디오 사연을 듣는 거다. 인터넷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과거를 보는 식으로 시간을 멈추지 않았다. 굉장히 큰 차이다. 내가 소설가로서 뭘 원하는가,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은가, 왜 소설을 쓰는가, 질문을 받으면 “소설을 되게 잘 쓰고 싶어서 쓴다”고 얘길 한다. 예전에는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 궁금증이 있었다. 그건 어느 정도 풀렸다. 지금은 그걸 되게 잘 쓰고 싶다.

예전에 가졌던 궁금증은 뭐였나?
1991년 5월, 대학교 2학년 휴학했을 때 학생들이 분신자살을 했다. 정운식 총리가 경희대에 갔다가 계란을 맞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어느 순간 학생들이 다 나쁜 사람이 된 거다.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백 번 양보해서 학생들이 나쁘다 해도 당시 정권보다 나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미디어를 통해 학생들에게 죄를 지울 수는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 그럼 진실은 뭐냐, 그게 나의 궁금증이었다. 진실은 만들 수 있는 거냐? 미디어로 만들어서 우길 수 있으면, 재구성할 수 있으면 그게 진실인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쓰고 나서 그 문제가 눈 녹듯이 해결됐다. 개개인 삶의 진실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다음 소설을 쓴다면 그 발견한 사실을 가지고 정말 소설에 충실한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삶의 진실이 어디 숨어 있던가?
어떤 사람이 힘센 사람에 의해서 오해를 받아 죽는다. 너무 억울하다. 하지만 마땅히 죽는 게 나은 사람들은 끝끝내 안 죽는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싸여 있어도 안 죽는다. 그게 궁금증이었다. 그 사람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뭔가 쥐고 있는 거다. 그게 뭘까? 한편 분신했던 학생들도 뭔가, 자기만의 진실을 갖고 있었던 거다. 소설의 방식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주목했던 사람들, 예를 들어 민생단 사건이라면 이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건 개죽음인가, 라는 문제를 보는 거다. 이 사람의 죽음은 뭔가, 계속 이해하려고 들어가서 보면 일단 그들은 사람이었다는 것이 일차적이다. 다음은 사람이어서 감정이 있는 거다. 감정이 있어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가족이 있었고 그런 것들. 살아 있던 순간들. 그래서 막판에 고문을 당하고 그래도 존엄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사람들의 진실이었다. 예를 들어 불치병에 걸렸다. 완전 절망이다. 죽는 게 낫다. 근데 그럴 수 없지 않나? 연민이 아니라, 결국 그 순간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거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산다. 웬만하면, 30년 정도 살았으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이 기나긴 인생을 왜 살게 되느냐 하면, 그런 순간들 때문이다.

30년은 너무 짧지 않나? 38년이면 몰라도.
어렸을 땐 저렇게 늙은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많이 생각했다. 일만 하고, 맨날 회사 가야 되고.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말할 수 없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

듣다 보니, 청춘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청춘을 좌충우돌 불안하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결국 일관되게 아름답고 아련하게 묘사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청춘이 더 많지 않나?
꽉 메인 것 같은 청춘. 이십 대라는 게, 자기 인생은 삼십 대에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자원을 이십 대에 투여하고, 이십 대에 결과가 나와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 뒤에 인생이 없기 때문에 앞부분에 집중해서 가는 거다. 당연히, 이십 대의 인생은 이십 대에 끝나는 거니까. 서른 살이 되는 때, 그때 바뀌는 것 아닐까? 변태, 환골탈태하는 시간이 그때 아닐까? 내 경우엔 그랬다. 난 서른 살에 정신적으로 가장 늙었었다. ‘모든 걸 포기하자, 글 쓰지 말고 직장 열심히 다니자, 월급만 받고 살자’ 뭐 이런 생각을 할 때였다. 다 살았으니까. 하지만 그 뒤의 인생이 너무 길었다. 그때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더라면, 막 빨리 등단하고, 등단 뒤에는 그냥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어야 했고, 뭐 이런 식의 생각을 이십 대에 하진 않았을 거란 말이다. 좀 더 천천히 했을 거다. 시간을 배분하고, 누리면서 왔을 거다.

당신이 이십 대를 못 누렸단 말인가?
좀 다르다. 이십 대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있다. 불안하고 초조하니까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건 지금 나의 시각이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 후회와 불안. 그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그 많은 시간이 후회와 걱정으로 점철돼 있다는 거다. 어쩔 수 없다. 그건 이십 대의 일이니까.

그래도 얼추, 후회 없이 다 겪지 않았나?
얼추 다 했다. 이십 대가 끝날 무렵엔 해볼 거 다 해봤기 때문에 원도 한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오, 또 다르지만.

당신의 이십 대가 각별했기 때문에 삼십 대도 그랬다는 건 알겠다. 살아보니, 사십 대는 어떤가?
훨씬 관대해졌다. 일단 나 자신, 또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다음은 남들에게까지. 남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는 거겠지? 내 마음대로 될 거라는 기대도 버렸다. 노력하면 정말 멋진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인생은 내 노력과 무관하게 진행 된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없다. 일이 생길 뿐이고. 그게 괜찮으면 좋아하고, 안 괜찮으면 수습하고. 나 자신도 아주 훌륭한 일을 해야 된다,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안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즈음에는 화를 조절할 수 있나?
화가 잘 안 난다.

가끔은 감정적으로 불구가 된 것 같은 느낌 안 드나? 감각 기관 어딘가 스위치가 내려간 것 같은.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정말 화가 잘 안 나긴 한다.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작업실은 엄격하게 집필만을 위한 공간인가?
혼자 있는 공간에 가깝다. 나는 소설을, 다른 것도 마찬가지인데, 주로 할 때 몰아서 한다. 소설에는 시작 단계가 있고 어느 정도 막히는 단계가 있다. 쥐어짜서 끝까지 쓰는 단계가 있고, 고치는 단계가 있다. 모든 단계가 다르다. 시간을 균질하게 배분할 수가 없다. 시작할 때는 계속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하루에 4시간만 딱 앉아 있다가 안 되면 내일 하자, 그게 안 된다. 계속 시작해야 한다. 어쨌든 쥐어짜서 시작해야 되기 때문에 일단 소설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작업실에 24시간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가족 얼굴은 봐야 되니까 밥 먹을 때 잠깐, 딸 학교 보내고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 작업실에서 24시간 보낸다. 그땐 책도 안 보고 음악도 안 듣는다. 오직 소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요즘 쓰는 건 일주일에 에세이 한 편밖에 정해진 것이 없다.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책을 보거나 소파 위에 옆으로 누워 있다. 그러다 웬만하면 잔다. 오후쯤 되면 달리기를 하고 저녁에는 보통 술을 마신다. 그게 요즘 패턴이다.

2000년의 모든 홀수 해에 상을 받았다. 2001년 동서문학상, 2003년 동인문학상, 2005년 대산문학상, 2007년 황순원문학상, 2009년 이상문학상 대상. 상 받으면 기분이 좋은가?
상 받으면 기분 좋다.

안 받으면 섭섭한가?
섭섭하진 않다. 상은 인정받았다는 거니까 일단 기분이 좋은 거고, 항상 돈이 없어서 굉장히 위태위태할 때, 잔고가 ‘0’이 될 즈음에 상을 받았다. 상이 없었으면 거의 취직을 해야 했다. 교묘하게 2년에 한 번씩 받았다. 그땐 아무런 판매 소득이 없었을 때였다. 2007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때부터 책이 조금씩 팔렸다. 그전까지는 1만 부가 채 안 팔렸다. 한 6천 부 정도? 그럼 6백만원 받는 거다. 결혼도 했으니까, 아껴 살아도 그 정도로는 못산다. 적어도 2천만원은 벌어야 한다. 하지만 정기적인 일은 또 못하니까, 관리 안 되면 끝나는 거다. 그럴 때는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금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 서운함은 있었다. ‘이건 진짜 잘 썼는데 상을 받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던 작품들은 하나도 못 받았다. 하하. 그래서 상의 법칙이 있나 보다 했다. 전혀 예측하지 않은 것들은 막 상을 주고 그런다. ‘아, 이거는 나중에 주셔도 되는데’ 생각하는 것들. 아무튼 예측이 불가능하다.

의외다. ‘김연수=잘나가는 작가’라는 은연중의 공식이 있었다.
학생들, 글 쓰려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것들을 물어온다. 진입 장벽이 엄청나게 높다. 한 15년? 내 경우는 그랬다. 15년까지는 다른 생계수단으로 계속 메우면서 가야했다. 상금이 없었으면 그것도 힘들었다. 힘든 게임이다. 그래야 겨우 직업 소설가가 되는 거다. 그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다. 예전엔 등단하고 바로 되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극히 드물다.

한편, ‘김연수=낭만’의 공식도 있다. 청춘, 사랑 같은 요소들.
맞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쓰는 방식에 대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자기들은 못 쓰겠다, 그런 얘기 많이 한다.

하지만 말과 편지가 다른 것처럼, 오그라들어도 솔직한 말이라는 게 있지 않나?
그건 그렇다. 나는 소설적인 미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적인 미문은 표현이 아주 뛰어난 것이고, 소설적인 미문은 서사적인 미문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 쓸 수 있는 문장들. 끝났다는 걸 알고 나서 정말 좋았을 때를 생각해보는 거다. 예를 들어 제주도 비자림에 갔던 날의 기억은 감각으로 남는다. 그날의 냄새, 새소리, 네가 웃었던 일들, 그걸 쓰는 거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 ‘그때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 알겠구나’라고 쓰는 게 서사적인 미문이다. 그런 것 위주로 쓰는 거다. 근데 돌이켜보면 잔인한 순간도 있지 않나? 진짜 비열하게 속아서 끝난 연애라든가, 그런 순간들이 분명히 있어도, 다 끝난 후에 그걸 회상하지 않는다는 거다. 원칙적으로 내가 소설에서 쓰고 싶은 것은, 빛을 보는 순간들이다. 뭔가 끝난 뒤에 가장 소중해질 어떤 순간. 그러면 약간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할 수 있는 뭐 그런 게 되는 거다. ‘지금은 어떤 순간일까?’ 그런 걸 계속 생각한다. 죽어서 돌이켜본다고 생각했을 때, 지금이 돌이켜볼 생각도 없는 순간이라면 집중할 필요 없는 것이고 애틋하게 돌이켜볼 것 같다, 그럼 집중할 만한 순간이 되는 거다. 일상을 자꾸 특별하게 느끼려고 하는 게 낭만주의자 아닐까?

처음부터 독자를 믿었나?
전혀.

이번에는 결말이 감춰져 있다. 독자에게 맡긴 셈이다. 큰 변화 아닌가?
맞다. 믿고 쓴 거다. 지금도 독자를 그렇게 믿는 건 아니지만…. 일단 책이 안 팔리는 것 자체가 소통이 안 되는 거다. 책을 공들여 썼는데 3천 부밖에 안 팔린다, 많이 팔려도 5천 부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6천 부까지 나갔다. 어차피 독자 보고 쓰는 소설이 아닌 것 같다. ‘마음대로 쓰자’, 그렇게 했더니 5천~6천 부 나갔다. 소통이 안 된다는 게 분명하다. 이젠 쓰고 싶어서 쓰는 거다. ‘소통하고 싶다’가 아니라 ‘소설 좀 잘 쓰고 싶다’가 목표가 되는 거다. 근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후, 그 다음에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냈는데 전혀 예상 못했던 반응이 느껴졌다. 내가 위로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텍스트 자체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말들. 그때 나 혼자 사회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삼십 대 후반이었고, 그때 벌어진 일들에 관대하지 않을 때다. 스스로 너무 힘들어서 쓴 소설도 있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 됐을 때>, <달려간 코미디언>은 개인적인 차원의 글쓰기였다. 근데 위로가 됐다는 반응이 있었다. 신기했다. 난 글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달한다는 걸 믿지 않는데. “이걸 봐주세요, 여기 지금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하면 많은 사람이 “아, 진짜 그렇구나” 하고 공감하는 걸 믿지 않는다. 하면 할수록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가능했다. 독자한테 가 닿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실패가 전제돼 있는 것이다. 경험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독을 한다. 작가에게는 아주 힘든 경험이다.

쓴 책이 이렇게 쌓여 있는 걸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총 열일곱 권. 산문집 6권, 단편집 4권, 장편 7권.
아무튼 뭐 훌륭한 것들, 하하. 책 한 권을 쓴다는 건 되게 힘든 일이다. 쓸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게 있다. 사람이 조금씩 바뀐다. 다른 세계에 쑥 들어 갔다 나오는 거니까, 사람에 대한 이해도 달라진다. 인생은 이런 건가, 뭐 그런 생각할 때가 많다. 결정적으로 한 열다섯 권 되니까 바뀌는 게 있었다. 소설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얘기했던 괴로움, 힘듦에 대한 얘기다. 힘든 게 생기면 그건 직업적으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외로움, 고독 같은 것을 쥐어짜는 게 나의 직업이다.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나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돌리는 거다. 내가 재능이 없어서 혹은 인생이 나한테 해준 게 없어서 이 중요한 시점에 못 쓰고 있다는 게 일반적 방식이었다. 이제 그러진 않는다. 앞으로 열흘 정도는 계속 이 일을 겪어야 지나갈 수 있다는 식으로 감정 소모를 안 하게 됐다. 그게 소설가가 된 듯한 느낌인 것 같다. ‘아, 계속 쓰겠구나’ 그런 마음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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