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그리고 72 <1>

스물일곱 그리고 일흔둘. 불붙은 뇌관과 깊숙한 정적. 동해와 박근형. 두 남자의 초상.

동해는 박근형을 줄곧 ‘우리 할배’라고 불렀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에서 부르던 대로. 그러다 플래시가 터질 땐 이렇게 말했다. “알 파치노랑촬영하니까 떨리네요.” 동해가 입은 셔츠는 발렌시아가 by 무이, 베스트는 지오지아, 타이는 톰포드, 깃털 브로치는 블랭크 에이 by 램. 박근형이 입은 셔츠는 조리지오 아르마니, 니트 카디건은 랄프로렌.
동해는 박근형을 줄곧 ‘우리 할배’라고 불렀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판다양과 고슴도치>에서 부르던 대로. 그러다 플래시가 터질 땐 이렇게 말했다. “알 파치노랑
촬영하니까 떨리네요.”
동해가 입은 셔츠는 발렌시아가 by 무이, 베스트는 지오지아, 타이는 톰포드, 깃털 브로치는 블랭크 에이 by 램. 박근형이 입은 셔츠는 조리지오 아르마니, 니트 카디건은 랄프로렌.

 

동해

<판다양과 고슴도치>는 오랜만에 슬며시 웃을 수 있는 드라마였어요.
촬영장 분위기가 처음부터 좋았어요. 첫 장면부터 출연하지도 않으시는 박근형 선생님께서 직접 나오셔서 한마디씩 해주셨어요. 촬영이 아무리 힘들어도, 현장에 있을 때 제일 기분이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새기려고 노력했죠.

이제 막 데뷔했지만 적어도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태도가 보이지 않아 반가웠어요.
그것도 역시 박근형 선생님, 양희경 선생님이 아들처럼 잘 챙겨주셔 가능한 것 같아요. 대선배님이니까 어려웠지만, 정말 잘 대해주시고 매번 연기 지도도 해주시고.

방금 촬영할 때도 박근형 선생님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니, 좀 낯설었어요. 엄하시지 않나요?
박근형 선생님이랑 연기했다고 하면 다들 무섭지 않으냐고 묻는데, 전 그냥 할배라고 불러요. 선생님께서 평생 문자로 답장을 보내신 적이 없으시다는데, 제가 문자를 보내면 문자 보내는 법을 배워 보내주실 정도였으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자제분들이 질투한다고 비밀로 해달라고 말씀하시고. 사실, 첫 리딩 때 선생님께 막 가르쳐달라고 졸랐어요. 그랬더니 “너는 네가 준비한 걸 해야지 왜 가르쳐달라고 해? 내가 하는 거 보고 따라 할 거야?” 그러셨죠. 그래서 제가 “진짜 이해가 안 되는데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발 좀 가르쳐주세요” 하고 졸랐죠. 다른 선배님들 모두 초토화됐어요.

하하, 당돌하다고 생각했겠네요.
와, 이 자식 뭐라고? 하하하. 다들 웃으시던데요. 작가님하고 감독님은 “얘는 남 신경 안 쓰는 애예요. 웃고 넘기세요”하고 말씀하시고.

솔직한 모습을 좋게 봤을까요?
제가 계산적이었다면 못 그랬겠죠. 말하고 싶었던 걸 말하고, 편하게 배우고 싶었어요. 선생님께서 지적을 받았을 때 듣는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혼나고, 쪽팔려도, 그건 문제가 아니죠.

그런 자세 덕분인지 8, 9회 넘어가면서부터는 호흡이 안정돼 보였어요.
연기도 하면서 느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다 잘하면서 시작할 수 없으니까요. 2회에서 못하면 3회에 채워 넣을 수 있고, 3회에 못했던 부분은 10회에 채워 넣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고승지라는 캐릭터는 실제 동해의 모습을 닮았을까요? 어느 인터뷰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말했었죠?
특히 제 성격과 많이 닮았어요. 작가 선생님도 저의 어려웠던 환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해하기 쉽게 써주신 것 같기도 해요.

배우 중엔 자신의 과거가 평탄해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캐릭터가 겪는 어려움을 공감하기 힘들다는 거죠.
어릴 때부터 되새긴 말이 있다면,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더 힘든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가족 문제나, 지금의 불행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연기할 때 슬픈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경험을 통해 생긴 감정이 없으면 연기하기 더 힘들었겠죠. 다른 한계도 많이 느꼈어요. 특히 말을 빨리 하다가 호흡이 많이 끊겨서 고생했어요.

뭐랄까, 생각이 많아 보였어요. 한편으론 항상 진지하다는 반증이겠지만요.
맞아요. 이번 캐릭터에서 더 놀았어야 했어요. 고승지라는 캐릭터는 거침없는데, 연기하는 전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사실, 헷갈렸어요. 화도 버럭 내거나, 눈빛으로만 낼 수도 있는데,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서는거예요. 하지만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충분히 즐거웠죠.

군대에 가기 전, 전환점이 될 작품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2년 안에 좋은 작품을 하면 좋겠지만, 조급하진 않아요. 서른 넘어서 잘 될 수도 있고, 마흔 넘어도 가능할 테니까요.

요즘처럼 좋은 이삼십 대 남자 배우가 많았던 시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경쟁도 심해졌다는 뜻인데, 만약 정말 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감독이나 제작자를 어떻게 설득하고 싶나요?
설득보다 일단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죠. 스무 살 때 이수만 사장님하고 SM 직원 분들과 함께 강제규 감독님과 인사만 나누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 전날 독백 하나를 외웠죠. 인사드릴 때 전 동해라고 합니다, 저, 연기 하나만 하겠습니다, 하고 그냥 외워간 독백을 했어요. 그러곤 제 연기는 볼품없었겠지만, 나중에 꼭 감독님 앞에서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나왔어요. 아마 절 기억 못하실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저와 비슷한 또래 배우들의 능력 차이가 많이 날 수도 있지만, 전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감독님들이 물어보시는 게 “연기 잘하냐?”인데, 그러면 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 잘해요. 시켜주세요. 진짜 미치도록 할 테니까, 안 시켜주면 죽을 것 같으니까 시켜주세요” 하고 말해요. 제가 연기를 정말 하고 싶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만약 저만의 매력이 있다면,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거겠죠. 전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어요.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 됐죠. 가수가 되기 전에도 TV를 보면서, 난 노래를 하고 있을 거야, 난 대상을 받을 거야, 했죠.

박근형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볼 수 없게 된 지도 퍽 오래다. 그런 채 동해에게 라이터를 주고 박근형에게 담배를 건넸다. 두 남자는 뭐냐고 묻지 않았고, 라이터와 담배는자리를 찾아갔다. 동해가 입은 하얀색 티셔츠는 발망 by 무이. 박근형이 입은 셔츠는 휴고보스,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린던.
박근형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볼 수 없게 된 지도 퍽 오래다. 그런 채 동해에게 라이터를 주고 박근형에게 담배를 건넸다. 두 남자는 뭐냐고 묻지 않았고, 라이터와 담배는
자리를 찾아갔다.
동해가 입은 하얀색 티셔츠는 발망 by 무이. 박근형이 입은 셔츠는 휴고보스,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린던.

목표한 바가 있으면 자존심도 버리나요?
해내기만 하면 중간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열네 살 때, TV에 보아가 나오는 걸 봤는데, 쟤는 나와 같은 나이인데, 저기에 있구나, 난 왜 이걸 보고만 있어야 할까 하고 화가 났어요. 그래서 바로 사진 찍고 무작정 SM에 보내고, 연락이 와서 오디션 보고 연습생이 됐어요. 전 지금도 좋은 작품이 있으면 감독님이나 작가님에게 직접 전화하는 스타일이에요. 회사에서도 많은 힘을 써주지만, 본인의 의지를 표현하는게 더 좋지 않나요? “하고 싶대요”와 “저 하고 싶어요”는 전혀 다르니까요. ‘가오’ 이런 걸 다 떠나서, 역할을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저돌적인 성격과 소속사의 엄격한 관리는 상충될 수도 있겠네요. 지금 이렇게 솔직한 모습과, 인터뷰를 하기 전 질문지를 검토하는 매니저는 상반돼 보여요.
사실, 전 상관없어요. 제 생각과 회사 입장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나의 콘셉트겠죠. 이해해줬으면 하는데…. 이런 건 있어요. 아이돌은 뭘 하면 안 되고, 그런 것. 지금은 자연스럽지만요.

평탄한 삶 때문에 힘들다는 배우처럼, 20대 때 경험을 제한 받는 것이 앞으로의 연기 발전을 힘들게 하진 않을까요?
연기를 하려면, 좀 많이 놀아봐야 되는 것 같긴 해요.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죠. 일생에 논 기억이 없어요. 흔히 말하는 ‘나이트’, 이런 걸 즐겨본 적이 없죠. 나빠서가 아니라, 그걸 함으로써, 혹시 나한테 피해가 올까? 혹시나 그럴까 봐 걱정이 많이 돼요. 앞으로 좀 많이 놀아야겠어요. 솔직히 전 스캔들도 괜찮아요. 굉장히 빨리 결혼하고 싶고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애들이랑 더 많이 놀아주고 싶어요.

이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쉽지 않겠어요.
그런가요? 여자가 있으면 이 생활 접어야 하나. 근데 결혼하고 연기하면 안 되나요?

안 될 리가 있나요. 하지만 배우가 빨리 결혼하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닌 것 같아요. 서른 이전이면, 좀 빠르다 싶고요.
전 딱 그때 하고 싶어요. 서른이나 서른 한둘. 제대하고 바로.

더더욱 앞으로 2년이 중요하겠네요. 배우는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좋은 작품, 그걸 만드는 감독이 중요할 때가 많죠. 어떤 감독이 당신을 변화시켜줄 수 있을까요?
지금 절 변화시켜준 건 박근형 선생님이에요. 앞으로도 절 가장 많이 변화시켜주실 것 같고요. 박근형 선생님과 같이했던 그 장면들이 모두 소중해요. 굳이 감독님을 꼽자면 누굴 꼽아야 할지 막막해요. 아직 감독님들을 잘 모르기도 하고요.

배우 유준상은 인터뷰할 때마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됐죠.
그런 방식은 좀 제 스타일이기도 한데요. 굳이 한 분을 선택해야 한다면 김지운 감독님. 느와르 영화를 하고 싶은데, <달콤한 인생>이 최고인 것 같아요.

뮤지컬은 어떤가요? 늘 하는 노래고, 연기도 하고 싶어하니까요.
하하. 저 노래 못해요. 요즘 <슈퍼스타 K>를 보면 노래 잘하는 천재가 엄청 많던데요.

배우가 정말 하고 싶은 것 같아요.
영화가 정말 하고 싶어요. 멋있는 역 말고 차태현 선배님이 하시는 로맨틱 코미디 같은 영화도 좋아요. 저 말고 시원이도 망가지는 역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시원이가 <귀신이 산다>같은 영화를 연기하면 대박이지 않을까요?

동해가 하면요?
어울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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