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그리고 72 <2>

스물일곱 그리고 일흔둘. 불붙은 뇌관과 깊숙한 정적. 동해와 박근형. 두 남자의 초상.

처음부터 끝까지 동해의 얼굴은 이글거리는 무엇으로 꽉 차 보였다. 무표정조차 타는 소리를 낼 듯이. 그리고 박근형의 얼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도록 만들었다. 두 얼굴을 동시에 보는 것은 생생한 듯 모호한 질문 같았다. 동해가 입은 하얀색 셔츠와 검정색 재킷은 모두 겅트, 보타이는 발렌시아가. 박근형이 입은 셔츠와 재킷은 모두 S.T듀퐁.
처음부터 끝까지 동해의 얼굴은 이글거리는 무엇으로 꽉 차 보였다. 무표정조차 타는 소리를 낼 듯이. 그리고 박근형의 얼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도록 만들었다. 두 얼굴을 동시에 보는 것은 생생한 듯 모호한 질문 같았다. 동해가 입은 하얀색 셔츠와 검정색 재킷은 모두 겅트, 보타이는 발렌시아가. 박근형이 입은 셔츠와 재킷은 모두 S.T듀퐁.

 

박근형

좀 전에 매니저가 “어제 푹 주무셨는지 기분이 좋으세요” 하고 갔습니다.
아, 그래요? 일이 있으면 잠을 푹 자려고 애를 쓰죠. 지탱하는 힘이 거기서 나오기도 하니까요. 늘 운동도 하는데, 그래도 배가 나오고 살이 자꾸 쪄요.

여전히 날렵한 선들이 보입니다. 박근형 하면 대번 떠오르는 선이지요. 외람되지만, 배우가 되려는 결심이 혹시 얼굴 때문은 아니셨나요?
전혀 그런 생각은 못했어요. 제가 태어나 자라던 그때는 이런 얼굴을 안 좋게 봤어요. 남 괴롭히는 뺀질뺀질한 인상이라고 봤죠. 요즘처럼 꽃미남이라거나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20대 때 맡은 배역은 모두 동생 등쳐 먹는 형이거나, 그야말로 기생 오라버니거나 노름꾼이거나 그랬죠.

지금으로선 전혀 모를 일이네요.
거울 볼 때마다 아, 나는 배우의 얼굴이 아니긴 아니구나, 그랬어요. 저처럼 뾰족한 얼굴에, 코는 꼬부라지고 이런 얼굴은 별로였죠. 영화나 드라마 하면서 코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았어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달걀형’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얼결에 실려가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가 표현하는 연기도 서서히 인정받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저를 봐주신 거지, 처음부터 배우 얼굴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안 했어요.

하필 오늘, 1979년에 방영된 드라마 <청춘의 덫> 20회를 보고 왔습니다.
아, 그래요? 저는 그때 아주 물 만난 거 같았어요. 정말 열심히 재밌게 했던 작품이에요. 서양의 매너라든가 이런 것들을 과감히 연기에 넣었죠. 그게 각광을 받기도 했고요.

새삼 따져보니 선생님은 40년생인데, 42년생 정혜선 선생님이 어머니 역할이고, 고 김무생 선생님은 43년생인데 숙부 역할이었습니다. ‘동안’이라 불리셨나요?
하하, 그렇진 않고요. 그냥 날카로운 이미지로 고착되어 있던 사람이 사랑에 빠져 여인을 한껏 도와준다는 역할을 한다는 게, 제게 큰 변화를 줬죠. 참 좋은 기회였고요.

하지만 박근형이라는 배우는 쉽게 곁을 주는 이름이 아닙니다.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으니까요. 우선은 눈빛 때문에라도.
MBC에 표재순 씨라는 분이 계셨어요. 감독도 하고 연극 연출도 하신 분인데, 20대 때 맨날 저더러 ‘썩은 동태’라고 불렀어요. 눈을 희미하게 뜨고 다닌다 이거죠. 아, 안 되겠다, 눈은 배우에게 마음의 창인데 안 되겠다, 그래서 벽에 볼펜으로 점 하나를 찍어서 한 2미터 떨어진 곳에서 계속 응시하는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눈빛이 한 군데로 모아지긴 모아지더라고요. 눈빛은 정말 중요해요. 연기는, 하는 배우와 받는 배우가 끊임없이 자기 생각 속에 빠져서 증폭될수록 서로 집중을 해야 해요. 너의 타당성이 나한테 맞지 않지만 그래도 듣고 판단해주는 행위를 계속해야 한다는 거죠. 남한테 틈을 줄 수가 없죠. 허술한 걸 줄 수가 없는 것이죠.

‘선생님 앞에 있으니 떨립니다’라고 미리 메모해놓기도 했습니다만.
하하, 앞에 있으니 어때요? 안 그렇죠? 제 별명이 박씨 아저씨입니다. 나랑 연배되는 신구 씨나 이순재 선생은 나를 박 가수라고 불러요. 내가 흘러간 옛날 가수들 흉내를 잘 내고 그랬거든요. 맨날 웃기는 짓을 잘해요. 연기의 뒷부분은 그래요.

그럼 앞면은요?
내가 날카롭거나 무섭게 보이기 시작한 건, <여명의 눈동자>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그때 한 5년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니까 주인공도 안 되죠, 아버지나 늙은이도 안 되죠, 공중에 떴어요. 그러고 있을 때 어느 계간지에서 역할 창조에 대한 이론을 접했는데, 그게 딱 나한테 맞는 얘기야. 지금까지 주인공을 곁가지처럼 둘러싸고 돕는 역할이 조연의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비록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연기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거기서 나오는 재미와 근간이 되는 줄거리가 합쳐지면 볼거리, 느낄거리가 참 많아진다, 그러니 주인공이 아니라고 해서 소극적으로 할 게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연기해야 한다. 그런 얘기를 바탕으로 <여명의 눈동자>에서 내가 일본 앞잡이 스즈키 형사를 했어요. 그 뒤로, 쉽게 말해 성격 배우라고 하죠? 그런 패턴을 갖게 되니까 나이를 먹어도 극복하게 되더라고요. 뭐, 김 회장 이 회장, 회장 연기 많이 하면서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이번에 <추적자> 같은 경우를 보면, 얼마든지 노련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해주니까 그 안에서 한껏 뛴 거죠.

배우라면 당연히 그런 마당을 주는 작가를 기다리게 되겠지요?
짧은 시간에 제작하는 어려움이 있어도 작품이 논리적이고 타당성이 있다면 연기로도 방어할 수 있어요. 근데 요즘 많은 드라마는, 써보면서 흘러가는 식이니 주제도 불분명하고 배우가 연기로 갖는 메시지도 없고 그렇긴 하죠.

그런 작품에도 참여하시는 것은….
생활인이고 생활을 해야 되니까 이런 거 저런 거 하긴 하지만, 내 맘 같지 않아서 괴롭죠. 작가가 잘하고 연출이 잘하고 배우도 잘하고 모두 작가의식을 가지면 좋은 게 나올 텐데, 여기도 밥벌이, 저기도 밥벌이 그러면 이상해지죠. 그럴 때마다 가책이 있죠. 아, 어쩔 수 없이 하는구나, 그런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박근형도 모르는 박근형이 있을까요?
그건 제가 알 수가 없죠. 다른 분이 저를 봐왔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겠죠. 아마 있을 거예요. 어딘가에는 하하.

처음 보는, 이상한 박근형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요? 하하, 좋아요, 좋죠. 그렇게 할게요.

박근형은 아직 박근형의 얼굴에 책임질 게 남아 있겠지요?
제 주름살요? 세상 사는 연륜 같은 거요? 간직해야죠. 열아홉, 열여덟에 이 길을 택해서 오는 젊은이들한테 제가 50년 한 걸 보태줘야죠. 우리 것이 세계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공을 쌓으면 우리 배우들이 세계적일 수가 있거든요. 미국 영화에 간단히 출연하는 걸로 미국시장을 휘어잡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 아닐까요? 제 것을 보여줘야죠.

한국말에 대한 생각도 각별하시겠지요?
특히 연극 배우 출신들은 국어를 사랑합니다. 국어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국어를 지키거든요.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이라던가, 일본 사람 악센트를 따라서 한다던가 이런 걸 경계하죠. 극언어와 생활언어는 분명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저는 생활언어가 극중에 못 들어오도록 막는 편입니다. 극은 항상 상승하기 때문에 정해진 길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생활은 변수가 많잖아요. 차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돌멩이에 넘어질 수도 있고, 재채기가 나기도 하잖아요? 극에는 그런 게 없죠. 마치 생활화하기 위해서 생활어를 빌려오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극언어란 절대적인 거예요. 그런 언어가 훼손되는 걸 볼 때마다 아주 언짢죠. 그런 표현에 대해 애들한테 얘기를 많이 해요. 일부는 그런 걸 받아들이면서 사전도 보고 말의 고저장단도 연구하지만, 거의 안 해요.

요즘 어떤 젊은 배우가 연기를 곧잘 한다는 걸 보면 어떤 패턴이 있습니다. 가볍고 일상적이랄까요?
생활어죠. 얄팍하죠. 그건 감동이 있을 수 없어요. 잔재미는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감동을 주려면 언어가 상승돼서 자꾸 쌓여야 해요. 생활어는 그때그때 거기서 소멸되고 말죠. 장난스러워 보이니 우스갯거리는 돼요. 하지만 생활어로 진지한 걸 해보세요. 절대로 극으로 써먹질 못해요.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극의 언어라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래야 목표까지 갈 수 있죠.

여전히 그 목표를 향한 길에 계시죠?
이론상으로든 실제 경험한 것으로든, 저는 어떤 바깥으로 벗어나본 적이 없어요. 어려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그분들한테 얻은 지식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는 거죠. 지금도, 제 딴에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술가에게 정도는 없는 것이지만, 그분들이 저한테 준 부분을 꼭 지키니까 논리적이고 또한 타당성도 부여되는 것이죠.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가 많았겠지만 내가 여전히 박근형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죠. 힘들고 어렵고 뛰어넘지 못할 일도 생기죠. 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쨌든 이게 내 길인 거예요. 꽉 붙잡고 늘어지다 보니 재미가 생기는 거예요. 그냥 나를, 나라는 재료로 전혀 다른 사람을 표현한다는 게, 내 상상력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준다는 게, 그 희열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강하신가요?
약합니다.

그럴 리가요?
벌컥은 해요, 벌컥은 해놓고 후회를 엄청 해요. 나중에 한마디라도 부드럽게 말하면서 손잡아주면 스르르 녹아버려요. 저 A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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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