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춤과 술

2012.11.26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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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춤을 추었다. 일곱 살 때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잡지사에 들어가서는 이따금 선배 따라 마감 뒤풀이로 염소 떼처럼 춤을 추었다. 물론 우아한 댄서일 리 없었다. 지금은 탱고를 듣는다고 해도 바람을 가를 수 없다. 다 큰 남자가 엉덩이를 흔드는 건 불가능해졌다. 헤프게 농담을 할 수도 있고, 사람 많은 곳에서 넘어질 수도 있지만, 춤은 출 수 없다. 춤추는 법은 배운 적도 없이 잊어버렸다. 아침 거울 속에서 몇 번 구체관절인형처럼 꿈틀댄 적은 있다. 그러나 12월이 오고, 술을 마시고, 모두의 피돌기가 빨라졌는데, 누군가 애매하게 춤의 기미를 보이면 당장 얼어붙는다. 토마토 귀신처럼 얼굴 벌개진 여자가 파이 속 고깃덩이를 헤집듯 집요하게 나를 당겨본들, 팔은 알래스카 송유관처럼 딱딱하게 건들거리고, 다리는 얼린 고등어처럼 꼼짝없는 수감 상태…. 갑자기 신이 내려 댄스 머신이 됐다 한들, 평창 돌배처럼 배를 내밀며 씰룩거리더라는 목격담만 남길 것이다.

남자에게 춤은 단테의 지옥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나의 윗세대도 그랬다. 남자 인생엔 위엄을 지키는 게 전부인 때가 있다. 돈을 버는 순간, 권위와 책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춤을 본 적이 없고, 그 때문에 전적으로 그에게 감사한다. 사실 남자의 춤은 10대 시절이 상기시키는 비참한 기억의 고요 속에 있다. 그러니 <더티 댄싱> 패트릭 스웨이지의 춤을 흉내 내던 나를 누가 떠올린다면 그를 당장 죽여버릴 것이다. 어느 날 실성해서 암수 무리 사이에서 춤추는 나를 발견한다면, 다음 날 아침 삼나무 자르는 전동톱으로 내 다리를 잘라버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 구석에서 양주잔을 든 채 흐릿한 역설적 점잖음으로 앉아 있은들, 우아하게 장식된 존엄성을 지탱해 보려한들, 누가 내 손톱을 펜치로 하나씩 뽑는 중인 듯 일그러진 미소로 춤추는 이들을 멸시해본들, “나는 테르프시코레풍으로 왈츠를 추는 죽은 남자”라고 노가리를 까본들 추악할 따름이라는 걸. 하지만 두꺼운 낯짝이나 강인함 같은 요소는 나이 먹는 남자의 신체와 편하게 어울릴 수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에 대한 자의식은 3년 입은 팬티 고무줄처럼 늘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춤추는 사람들이 무섭다. 섹스보다 더 강렬한 엔도르핀을 발사해 두개골을 비워버리는 건, 광란의 밤에 우주를 향해 흔드는 엉덩이 말곤 없다. 실은, 플로어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것보다 폼 나는 게 더 무섭다. 여자 몸은 남자보다 훨씬 ‘리드미컬’하다. 남자는 구조적 유전적인 이유로 여자처럼 엉덩이를 털 수 없다. 그러므로 춤을 잘 추는 건 여성스러운 짓거리가 아니라 흐름을 잘 탄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몸을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뭐, 서핀유에스에이를 들으며 윈드서핑을 하거나, 호피를 입고 맨발로 쿵쾅거리는 게 춤은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겐 문을 지나가거나, 손가락을 까딱하거나, 어슷어슷 머리를 돌리는 것조차 춤일 것이다. 하지만 비욘세가 아닌 이상, 여자들의 자연스러운 자의식은 모든 춤동작을 단순화한다. 남자들은 아무 생각 없다. 수컷들의 춤을 관찰하면 확실한 그림이 나온다.

기관차처럼 양옆으로 팔을 휘저으며 먹이를 들추듯 스테이지를 유린한다. 가끔 줄을 당기는 듯한 추임새를 넣는다. 정원의 스프링클러처럼 팔을 뻗고 빙글빙글 돈다. 재킷을 어깨까지 내려선 두 팔이 몸에 딱 붙게 만들고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돌아다닌다. 과일을 짜 즙을 내듯이 주먹을 꽉 쥐곤 좌우로 비튼다. 뻐드렁니로 입술을 깨물며 미친 닭처럼 목을 뒤로 젖힌다. 바닥에 누워 등으로 스핀한다. 손가락 튀기기, 담배 끄듯 발 비비기, 양손 검지를 천장으로 찌르기처럼, 해선 안 되는 춤사위로만 버무린다….

거길 잡고 추는 춤은 말할 것도 없고, 암말처럼 발육이 지나친 가슴으로 도장 찍듯 클럽을 교란하는 여자애를 보면 알 수밖에 없다. 춤은 수평적 욕망의 수직적 표현이며, 스탠드업 섹스며, 발기된 둔부며, 죄책감 없는 딥 키스며, 불성실한 전희며, 집요한 사회 의식이며, 최고의 최음제이며, 비교할 수 없는 외설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몸으로부터 우러나와 저절로 가슴을 흔들어대는 여자라면 스테이지에서 어떤 짓을 해도 용서 받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 없는 애들은 어디에나 있다. 바보같이 보이건 말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건 말건 전혀 상관없는 애들이야말로, 부끄러움으로부터 탈출해 열락의 메시지를 전하는 무명의 댄서다.

하지만 칼로리를 세는 순간 춤은 끝난다. 생일을 축하하는 술집의 방심한 플로어에서 다음 단계로 돌입할 때, 그 여자가 당신의 두 손을 꽉 쥐고 “이 음악 들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라고 귓속말을 할 때, 그중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가 성냥개비만큼만 입고 눈을 흘기듯 올려다볼 때, 춤의 순수는 끝난다. 나는 춤 말고 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진짜 춤은 발효된 술로 시작되었다가, 증류된 술로 봉인되기 때문에.

    에디터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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