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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에서 갑자기 나는 소리

2012.12.04GQ

호주 멜버른에서, 마세라티가 내는 소리를 들었다. 가속 페달이 건반 같았다.

멜버른을 관통하는 야라 강 물이 사방으로 안개처럼 튀었다. 습기 묻은 잔디와 낙엽이 강가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날렸다. 헬리콥터 한 대가 느릿느릿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종사를 포함해 다섯 명의 기자가 그 안에 타고 있었다. 곧, 우리는 멜버른을 온전히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여러분, 멜버른 시내입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아침 8시였다. 영국과도, 미국과도 다른 발음이 헤드폰을 통해 들려왔다. 호주, 영국, 태국에서 온 기자들은 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웃고 있었다. ‘내려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게 없지’ 생각하면서 헤드폰을 귀에서 살짝 뗐다. “투타타투투투투.”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관통하지 않고 배와 가슴을 울려댔다. 오늘 하루 머리, 가슴, 배를 자비 없이 뒤흔들 소리들의 명백한 전조였다. 30분 정도 비행했다. 멜버른 그랑프리 서킷 바깥쪽 잔디밭에 헬리콥터 다섯 대가 나란했다. 멜버른 그랑프리 서킷은 앨버트 파크라는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트랙은 일반 도로를 그대로 살려 썼다. 물이 옆에 있고, 구름이 낮게 깔린 날이었다. 과연 호주는 광활해서, 시야에는 트랙과 호수와 마세라티뿐이었다.

트랙 주변 잔디에도 습기가 묻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공수된 커피를 짙게 내려 마시고 재킷을 여몄다. 바람은 정면으로 맞으면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곧 비가 오지 않을까? 비가 와도 트랙을 탈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그대로의 희열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마세라티의 모든 그란투리스모를 내키는 대로 타볼 수 있는 날이니까. 트랙을 달리기에 앞서, ‘마스터 마세라티 프로그램’의 책임 교관 마시밀리아노 무쏘의 브리핑이 있었다. 시트를 키에 맞게 조절하는 법, 핸들을 제대로 쥐고 돌리는 법을 배웠다. 트랙에는 코너마다 감속과 가속 시점이 표시돼 있었다. 코너의 각도에 맞춰 핸들을 꺾는 시점과 달려 나가야하는 지향점에도 삼각뿔이 놓여 있었다. 조수석에는 마세라티 공식 교관이 동승했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 시점에서는 줄이라고, 마음 놓고 가속해도 괜찮은 시점에서는 가속하라고 알려줬다. 이런 상황이 구속이었냐면 그렇진 않았다. 트랙은 난폭하게 달린다고 빨리 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한 번이라도 돌아본 사람은 알 수 있다. 부드럽게, 자연스럽게, 안정적으로 도는 게 실은 가장 빠르다. 과유불급이다. 다른 모든 일처럼.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스포츠는 4,691cc 8기통 가솔린 엔진을 쓴다. 최고출력은 460마력, 최대토크는 53kg.m이다. 뒷문은 없는 쿠페 형식인데, 그대로 그란투리스모라는 정체성에 충실하다. 그란투리스모라는 단어에는 네 명의 성인이, 장거리 여행을 위한 짐을 싣고, 거기가 어디라도 최대한 빨리, 편안하게 갈 수 있는 형식의 자동차라는 의미가 있다.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스포츠 운전석에 앉아서, 뒷좌석에 앉은 여자를 보면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가죽의 촉감으로부터 앉은 자세의 편안함, 어떤 높이나 형식의 요철과 코너를 극복하는 순간순간마다 품위가 있으니.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시리즈의 디자인은 이미 완성돼 있다고 봐야 옳다.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범퍼 주변의 공기흡입구 모양, 헤드램프 디자인을 살짝 바꿔주는 식으로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핸들에는 엄지손가락을 얹을 수 있는 작은 홈이 있는데, 이런 세심한 배려가 운전이 좀 더 쉽도록 돕는다. 시트는 오래 달려도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경도로 만들었다. 이 안락한 실내에 엔진 배기음과 음악이 동시에 울리는 순간의 쾌감이란.

마침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스포츠 한 대가 밖에 서 있었다. ‘블루 소피스티카토’라는, 마세라티의 새로운 파랑이었다. 이때 운전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 시동을 걸었다. “부움!” 혹은 “카웅!” 하고 짧게 지르는 소리, 어딘가 터지는 소리, 이 차를 금속으로만 만든 건 아닌 것 같은 의심. 주변에 서 있던 기자들의 동공이 조금 커졌다. 마세라티가 내는 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

트랙에는 같은 길을 여러 번, 빨리 달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어 있다. 쫓아오는 차도, 쫓아가야 하는 차도 없다. 욕심만 안 낸다면, 스스로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 편이 더 빠르고 안전하다. 게다가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기기 직전까지는 속도 때문에 겁이 나거나 움츠러들 일도 없다. 주변이 한적해서 상대적으로 속도감이 둔감해지는 탓이다. 운전하기에 따라서는, 그란투리스모라는 장르에 최적화된 운전을 만끽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세라티는 그란투리스모 스포츠를 통해 제대로 균형을 잡았다. 가장 역동적인 모델이었던 MC 스트라달레보다 최고출력은 10마력 높고, 최대토크도 약간 높다.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MC 스트라달레는 4.9초, 그란투리스모 스포츠는 4.7~4.8초다. 하지만 MC 스트라달레를 타고 트랙을 달릴 때의 느낌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MC 스트라달레는 팡팡 뛰쳐나가는, 어쩌면 광폭하기까지 한 매력으로 타는 차다. 변속 충격이 상당해서, 머리를 지탱하는 시트가 뒤통수를 때리는 감각조차 즐거울 정도다. 도로나 트랙을 가리지 않고 맹렬히 뛰쳐나간다. 그란투리스모 스포츠가 변속할 땐 충격이 거의 없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를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소리만은 그대로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시속 60킬로미터 정도를 유지하고 달릴 때는 소리판이 폭넓게 울리면서 낮게, 지속적으로 그르렁거린다. 그러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을 때의 흥분, 일단 올라간 엔진 회전수가 부드러운 변속과 함께 한 칸씩 떨어질 때 몇 도씩 낮아지는 음표. 속도를 줄일 때도 마찬가지다. 코너를 십수 미터 남겨두고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으면 알아서 낮은 기어로 변속하는데, 엔진 회전수는 그에 따라 수직 상승한다. 핸들에 달려 있는 패들 시프트 조작을 통해서도 상황에 따라 그렇게 만들 수 있다. 그 소리가 귀와 가슴을 울리고, 배를 흔들고, 결국 ‘마세라티는 운전자의 몸조차 하나의 울림통으로 생각하고 차를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마세라티를 타는 일은 숫제, 하나의 악기에 익숙해지는 과정과 같은 게 아닐까? 소유했다는 사실이 주는 일단의 충족, 막 소리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의 신기, 점점 능숙해지다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과정의 도전과 쾌감까지.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스포츠는 그중 가장 폭넓은 욕구를 수용하는 차다. 디자인의 아름다움은 이미 정립됐다. 외관에 그린 선, 꺾임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 속도와 안전, 광폭함과 부드러움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재미도 있다. 모든 일은 적도의 남쪽, 호주 빅토리아 주 멜버른 국제 서킷과 그 인근에서 벌어진 일, 배경이 서울이라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일.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스포츠의 가격은 옵션에 따라 2억 2천9백만~2억 4천3백만원이다.

    에디터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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