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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여유

2012.12.31GQ

이태리 사르데냐 섬에서 7세대 골프를 만났다. 더 가볍고 단단해진 신형 골프가 신분상승을 꿈꾼다.

폭스바겐 골프는 전통적으로 홀짝수 세대를 거치며 혁신과 진화를 반복한다. 홀수 세대엔 혁신을 담는다. 기존 세대와 생판 다른 차원의 파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짝수 세대에서 치밀하게 다듬는다. 이렇게 골프가 ‘홀짝’ 세대의 냉온탕을 넘나든 지 어언 28년째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에서 폭스바겐 신형 골프를 시승했다. 1974년 데뷔 이후 7세대째다. 이번 골프는 다시 ‘도약’할 차례다. 미리 훑어본 자료는 방대하고 심오했다. 신형 골프의 핵심은 세 가지 숫자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는 ‘100’이다. 차의 무게를 100킬로그램이나 덜어냈다. 안전성을 챙기고 새 장비도 담느라 상쇄될 무게를 감안하면 가슴 떨리는 수치다. 이 소식을 들은 정몽구 회장이 경량화 대책을 지시하면서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엔 비상이 걸렸다. 두 번째 숫자는 ‘23’이다. 모델에 따라 연료 효휼을 최대 23퍼센트까지 옥좼다는 의미다. 오너의 주머니 사정도 돕고 환경도 살릴 장점이다. 7세대 골프를 상징할 마지막 숫자는 ‘10’이다. 오너의 실수를 감싸는 한편 편안함까지 더할 열 가지 신기술을 담았다는 뜻이다. 폭스바겐 그룹 홍보 총괄 슈테판 그뤼젬의 정의는 간결했다. “역대 최고의 골프예요.”

외모는 퍽 낯설었다. 신형 골프를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존 골프에 익은 눈이 새 골프에 적응하는 데는 늘 시간이 걸린다. 신형 골프는 1세대의 수평 그릴과 4세대의 활시위 모양 C 필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납작하고 미끈해졌다. 때문에 바퀴가 좀 더 두드러져 보인다. “골프처럼 세대를 이어가며 디자인을 계승하는 차는 흔치 않아요. 폭스바겐 비틀과 포르쉐 911 정도뿐이에요. 그런데 골프는 장르의 특성상 그 둘보다 외모가 튈 수 없어요. 스포티하되 정도가 지나쳐선 안 되지요. 기능성을 부각시키지만 그렇다고 감성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현대적이지만 유행을 좇진 않고요. 이 같은 역설이 골프 디자인의 핵심이지요.”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 클라우스 비숍이 털어놓은 골프 디자인의 고충이다.

차체는 이전보다 키웠다. 특히 휠베이스(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거리)를 54밀리미터 늘렸다. 동시에 앞바퀴는 43밀리미터 앞으로 당기고, 지붕은 28밀리미터 낮췄다. 너비는 13밀리미터 넓혔다. 그 결과 클라우스 비숍이 자랑해 마지않는 일명 ‘귀티 나는 비율’이 완성됐다. 한편, ‘폭풍 다이어트’의 과정은 눈물겨웠다. 엔진 40, 차체 23, 앞뒤 좌석에서 각각 7, 에어컨 2.7, 대시보드에서 0.4킬로그램 등 각 부위에서 악착같이 쥐어짰다. 심지어 모세혈관처럼 퍼진 전선에서도 6킬로그램을 뺐다. 신형의 차체는 역대 어떤 골프보다 단단하다. 6세대 차체의 고강성 철판 비율은 66퍼센트였다. 이번엔 80퍼센트에 달한다. ‘핫 포밍’ 부품 비율도 6세대의 6퍼센트에서 28퍼센트까지 높였다. 철판을 섭씨 950도까지 빨갛게 달군 뒤, 1제곱센티미터당 약 10톤의 압력으로 쾅! 찍어 만든다. 핫 포밍 부품은 일반 쇠보다 6배 더 단단하다. 이전보다 얇고 가벼운 철판으로 더 높은 강성을 챙긴 비결이다.

실내도 완전히 다르다. 소재가 확연히 고급스러워졌다. 아우디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좁혔다. 실내도 널찍해졌다. 트렁크는 30리터 더 키웠다. 센터페시아는 운전석 쪽으로 확 비틀었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가 띄우는 각종 정보를 약간의 곁눈질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디오와 전화, 내비게이션과 관련된 기능은 트림에 따라 5~8인치 크기의 터치스크린이 삼켰다. 이제 문지르는 동작까지 인식한다. 스마트폰 쓰듯, 내비게이션의 지도를 손가락 두 개로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 인체공학적인 면도 섬세하게 개선했다.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은 간격을 16밀리미터 더 띄웠다. 기어 레버의 높이는 20밀리미터 더 높였다. 앞좌석 사이의 팔꿈치 받침은 앞뒤로 100밀리미터, 높낮이는 5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옵션으로 운전석 마사지 기능도 담을 수 있다.

신형 골프의 열 가지 신기술 가운데 첫째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이다. 시속 30~160킬로미터 사이에서 앞 범퍼의 레이더 센서를 이용해 앞차와 간격을 유지하며 정속주행한다. 차선이탈방지 시스템도 달았다. 앞 유리의 카메라로 주행궤적을 감시한다. 만약 차선을 벗어날 경우 스티어링을 안쪽으로 살짝 비틀어 운전자에게 경고한다. ‘전방추돌방지 시스템’도 갖췄다. 앞차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불빛과 소리로 위험을 알린다. 동시에 브레이크 압력을 높여 급제동에 대비한다. 운전자가 반응하지 않으면 스스로 제동을 건다. 시속 30킬로미터 이하에선 급제동으로 차를 완전히 멈춰 세운다. 또한 추돌 사고가 나면 알아서 제동을 걸어 속도를 시속 10킬로미터 이하로 묶는다. 2차 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차체자세제어장치(ESC)는 사고의 위험을 눈치 채면 알아서 시트벨트를 바짝 죈다. 동시에 열려 있는 선루프를 닫는다. 창문은 살짝 열어둔다. 숨구멍을 틔워 놓는 것이다. 에어백이 터질 때 실내 공기 압력이 급격히 치솟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전처럼 ‘주차보조장치’도 달려 있다. 시속 40킬로미터까지 달리면서 빈 공간을 찾고, 앞뒤 40센티미터의 간격만 있으면 완벽하게 주차할 수 있다.

이틀 동안 1.4 TSI와 2.0 TDI를 번갈아 몰면서 사르데냐를 누볐다. 1.4 TSI는 섬세하고 신속한 추진력이 매력이다. 엔진 회전6,000rpm 가까이 올려붙이며 활기차게 가속한다. 아담한 싱글 터보와 강력한 연료 분사가 어울려 눈부신 반응성을 뽐낸다. DSG 기준,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8.4초에 마친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가속할 때 빼곤 배기량을 잊기 쉽다. 2.0 TDI의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8.6초다. 1.4 TSI와 0.2초 차이다. 그러나 체감 가속은 더 빠르게 느껴진다. 저회전부터 드세게 쏟아내는 토크 때문이다. 사람을 더 태우든 오르막이든 개의치 않고 강한 토크로 차체를 밀어붙인다. 운전감각은 6세대와 뚜렷하게 달랐다. 스포츠 모드로 긴장시켰을 때조차 움직임이 한층 부드럽다. 서스펜션이 수축하고 이완되며, 무게중심이 옮겨 다니는 과정이 보다 매끈하다. 까끌까끌한 곳을 집요하게 깎아낸 느낌이다. 한층 세련돼졌다.

기존 골프는 단단한 느낌을 은근히 과시하는 차였다. 돌덩이 같은 강성과 탄탄한 하체는 골프의 핵심 가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였다. 그래서 더 집착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뒤따랐다. 잡소리의 원인이 되었다. 든든한 반면 때론 불편했다. 7세대 골프는 다시 여유를 찾았다. 모든 방향의 움직임이 한결 나긋하고 여유로워졌다. 그러면서 기존 장점을 더욱 갈고 닦았다. 결과적으로, 7세대 골프는 명백한 신분상승에 성공했다. 유럽 기준 기본 가격엔 변함이 없다. 골프가 ‘소형차의 교과서’로 추앙받는 덴 다 이유가 있다.

트렁크 공간은 30리터 늘리고, 내부 공간도 전체적으로 더 넓어졌다. 옵션에 따라 운전석 마사지 기능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건, 골프의 지향점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는 증거 아닐까? 그러면서도 기본적인 골프의 성격은 빠듯하게 유지했고, 센터페시아를 운전석 쪽으로 기울이는 식으로 더욱 강화했다.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운전자가 보고 다루기 쉽도록, 운전 자체의재미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기범
    기타
    PHOTO/ COURTESY OF 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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