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게 나에요 <1>

2013.01.07정우영

정말 폼을 잡는 사람은 “오늘 나 너무 폼 잡는 거 아니에요?” 라고 묻지 못한다. 최백호는 늘 그를 따라다닌 낭만 혹은 고독 같은 단어가 자기의 것이라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에서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라고 노래했죠. 그때의 겨울과 지금의 겨울이 다른가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추웠지만, 옛날이 더 추웠죠. 지금은 여러 가지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젊을 때는 내 마음 갈 곳을 잃었고. 메말랐고, 거칠었죠. 당장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내 자신의 앞날에 대한 생각을 회피하려고 했어요.

굴곡 많은 삶이었는데, 왜 삐뚤어지거나 괴팍해지지는 않았을까요? 그럴 수 있잖아요?
스무 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신 충격이 굉장히 컸는데요, 저는 그전까지 세상이 뭔지 몰랐어요. 어머님이 외동아들에 장손이라고,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의젓하게 키워주신 덕이죠. 밥을 어떻게 해 먹는지도 몰랐으니까, 길바닥에 내던져진 거예요. 제가 독자라 군 면제 대상이었는데, 그냥 갔어요. 제겐 군대가 구원이었어요.

IMF 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입대했던 상황이네요.
그보다 절실했죠. 하지만 군 생활은 즐거웠어요. 병을 얻어서 1년 만에 제대했는데, 사실 제대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부르는 1988년 무대를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얼굴이 좀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88년의 당신은 텅 비어 보여요. 지금은 뭔가 꽉 차서 구부러진, 둥근 인상이랄까요.
정말 힘들 때죠. 아이는 태어났는데, 가수로서의 입지가 무너졌을 때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돈이나 벌자고 밤무대 일을 많이 했어요. 정신적으로 무너졌죠. 황폐해졌달까. 그걸 못 견뎌서, 미국으로 갔죠.

당시 창작곡을 가진 가수는 밤무대에 서는 데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있었죠. 부끄러웠어요. 술집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어요.

잘생긴 외모와 최백호라는 이름이, 당신의 외롭고 쓸쓸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정적인 분이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네. 활동적이고, 도전적이에요. 배철수 씨가 저 보고 형은 참 에너지가 넘친다, 이제 사고 그만 치고 노래나 해, 하거든요. 저는 무사태평한 일상을 못 견뎌내요. 라디오를 4년 반째 하고 있는데, 아슬아슬해요. 틀림없이 확 때려치고 어딜 갈 텐데, 그 시간에 음악 듣는 게 좋아서.

<낭만시대>를 최백호가 아니면 안 되는 방송으로 만드셨잖아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하여튼 견디고 있죠. 4년 반이나 안 짤리고. 아내는 좋아해요. 수입도 고정적이고, 술도 안 마시고요. 그런데도 이 사람이 뭔가 사고를 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대요. 여행가고 싶다니까, 2년만 얌전히 있으래요. 한 1년만 있다가 오고 싶다, 항상 이야기합니다.

목적지가 있나요?
프랑스 남부. 그 아름다운 데서 살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요.

전원마을요? 외람되지만,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최백호 하면, 차가운 도시 남자 아닌가요?
하하. 아니에요. 파리에 쭉 사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저보고 거기 가지 말고 파리로 오라고 하긴 합니다. 모르죠. 막상 가면 일주일도 못 견딜 수도 있고요.

혼자라면 몰라도, 남들에게 피해를 줄 만한 사고는 안 칠 분 같은데, ‘이미지’인가요?
라디오 하면서는 사고 안 쳤는데, 옛날에는 휙 가버렸어요. 젊었을 때 방송 펑크를 많이 내서 소문이 안 좋았죠. 옛날엔 매니저들이 절 굉장히 싫어했어요. 그렇게 연락도 안 하고, 강릉에 잘 갔습니다. 그때 술 많이 마셨어요. 여자들하고 데이트도 하고. 하하.

최백호, 하면 가을이잖아요. 가을 노래를 많이 했고. 고독이든 낭만이든 간에, 덕분에 해야 할 건 못하고 안 해야 할 것들은 거치적거리고, 답답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죠. 굉장히 제한을 받고,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도 힘들고. 하지만 사실은 별로 의식 안 하고 살았어요. 제 목소리나 외모가 굉장히 건조해 보인다는 걸 잘 알아요. 제 한쪽에 그런 면이 있을 거예요. 어머님이 시골 학교 선생님이다 보니, 전근 따라다니면서 친구를 못 사귀었어요. 주말이면 텅 빈 운동장에서 혼자 놀던 기억들이 아마도 배어 있을 거예요.

이번에 함께 작업한 후배들은 당신에 대해 뭐라던가요?
저에 대한 얘기는 안 하죠.

어려워서요?
지금은 많이 친해졌는데, 처음엔 서먹서먹했어요. 거리를 두더라고요. 어디 가서 담배도 맘대로 못 피고, 얘기도 다 못하니까. 제가 조금씩 접근했죠. 젊은 후배들하고 노는 게 참 좋았어요. 저는 대인관계에서 굉장히 ‘나이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젊은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나 봐요. 주현미 씨가 <낭만시대>에 나와서, 선배님 무서워요, 하는데 충격이었어요. 내가 왜 무서울까. 난 싸우고 거친 말 하고 그렇지도 않은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데요?
친한 후배가 몇 있어요. 많진 않고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천천히 친해지지, 서두르지 않아요. 20년 넘게 사귀었으니까.

설마, 친해지는 데 20년은 아니죠?
하하. 그렇죠. 하지만 다투기도 하고, 확인도 하면서, 천천히. 배철수 씨, 구창모 씨, 주병진 씨, 이런 후배들과는 아주 친하죠, 이제.

술 좋아하시니까, 술 한번 마시고 확 친해지진 않고요?
술을 많이 마셔도 안 취해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셨는데도, 왜 그렇죠?

술 마시면 사람이 좀 변해야 격도 없어지고 그러는데, 안 그러신가 보죠.
매니저 일 해주는 친구한테 술 취해서 차고 있던 시계도 주고 그랬는데, 비쌌으면 안 줬을 거예요. 하하.

이제, 후배가 아니라 친구가 됐나요?
친구가 아니라 스승이죠. 박주원 씨와 말로 씨는 제 스승이에요. ‘목련’ 하면서 제가 많이 깨우쳤어요. 몰랐던 부분을 굉장히 많이 찾았어요. 나이와 관계없이 정말 좋은 스승 두 사람을 만났어요.

항상 당신이 만들어서 당신이 부르다가, <다시 길 위에서>는 후배 작곡가와 연주자의 의지대로 녹음했어요. 그렇게 믿음직스럽던가요?
후배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죠. 사실 기타리스트 박주원 씨와의 인연으로 시작됐어요. 누가 박주원 씨 앨범을 줬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라디오에 초청하고, 박주원 씨가 자기 앨범에 노래 하나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 이어졌어요. 박주원 씨하고 저하고 잘 맞아요. 박주원 씨가 제 노래를 자기 식으로 편곡하고 싶다고 해서 해봤는데, 이 앨범에 ‘뛰어’라는 제 옛날 노래나, 공연 때문에 새로 편곡한 ‘낭만에 대하여’나, 완전히 달라요. 완전히 새롭죠.

다음 앨범과 별개로 예전 노래들을 후배들과 작업할 계획이 있나 봐요?
굉장히 재미날 거예요. 싱어송라이터는 한계가 있어요. 오래 하면 더 이상 안 나와요. 어떤 계기로 변화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죠. 누구라고 얘기하면 실례겠지만, 제 세대의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그 계기를 못 잡는 것 같아요. 한 단계 더 올라서지 않으면 자기 노래, 자기 진행, 자기 목소리에 지쳐요. 이번에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서 생각지도 못한 멜로디 진행이랄지, 음역이랄지, 제가 써보지 않은 걸 했어요. 제가 만들면 부르기 편한 음역만 쓰거든요. ‘길 위에서’는 가성이 필요한 노랜데, 가성이 안 나오면서도 했어요.

잘 안 나오는 가성으로 하는 가성도 좋던데요? 이를테면, 맑은 플루트 소리도 좋지만, 바람 소리가 나는 플루트 소리도 좋잖아요.
그렇긴 한데, 사실 발성이 안 되는 거니까.

‘낭만에 대하여’도 그렇고, 최백호의 노래는 정서에 호소하는 바가 큰데, 이번 앨범의 ‘목련’ 같은 곡은 머리가 다 아찔했어요.
긴장이 있는 거죠. 그게 굉장히 매력 있어요.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났습니다. 어렴풋이라도 당신을 트로트 가수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게요.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와 겹치는 부분도 있고, 또 트로트 가수들의 무대에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있긴 했죠.
별 신경은 안 쓰는데, 제가 노래를 시작한 건, 재즈면 재즈, 포크면 포크에 빠져서 한 게 아니에요. 생활 때문에, 닥치는 대로 했어요. 돈 벌기 위해서 기타 치고 노래 부른 거죠. 저는 노래 만들 때 가사부터 쓰거든요. 가사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곡을 붙이는데, 그 가사에 맞는 장르를 선택하죠. 특별히 장르를 고집하지 않아요. ‘애비’의 가사는 트로트가 어울려서 트로트, ‘낭만에 대하여’는 탱고, 그랬습니다.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박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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