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안 팔려서 미안합니다. 못 사줘서 미안합니다. 이래저래 서로 민망한 2012년에 참 안 팔린 차.



1. 르노삼성 QM54405대
올해 르노삼성은 ‘밑바닥을 친다’는 표현의 의미를 누구보다 절절히 겪었다. 부정적 의미의 ‘티핑 포인트’가 별안간 시작되었다. 표정 관리가 어려울 만큼 판매는 죽을 쒔다. 우물 끝에 QM5가 있었다. 지난해보다 판매가 37.7퍼센트 떨어졌다. 하지만 위기의 전주곡을 울린 범인은 따로 있었다. 한 해 사이 판매가 70.6퍼센트나 추락한 SM7이다.

2. 쌍용 로디우스766대
지난해 1,379대보다 44퍼센트 줄었다. 타는 사람은 만족한다는 얘기도 이젠 귓등으로 듣게 된다.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사석에서 한 쌍용차 디자이너는 이렇게 털어놨다. 우린들 이렇게 디자인하고 싶었겠냐고. 그럼 대체 누가?

3. 닛산 370Z11대
지난해 닛산에서 가장 적게 팔린 차는 GT-R이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370Z로 바뀐 건 좀 슬프다. 370Z는 꽤 매력적인 차다. 이 급의 차 가운덴 놀랄 만큼 승차감이 좋다. 가격 대비 성능도 탁월하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치 않다. 브레이크가 성에 차질 않고, 몸놀림이 무겁다. 공교롭게 스스로 라이벌 삼은 포르쉐 카이맨도 딱 11대 팔렸다.

4. 롤스로이스 팬텀 드롭헤드 쿠페0대
0은 왠지 철학적이다. 1과 불과 한 끝 차이지만 한층 초연하다. 롤스로이스 팬텀 드롭헤드 쿠페가 그 숭고한 경지에 올라섰다. 로또 가격이 10배쯤 뛰어 매주 1백억원대 벼락부자가 나와도 결과는 비슷할 거다. 감히 범접할 엄두가 안 나는 포스 때문이다. 차라리 요트 모는 게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5. 아우디 TTS 쿠페 콰트로4대
1세대 TT는 디자인과 상품성 모두 기발했다. 앞뒤 대칭, 동글동글한 테마까지 자매 브랜드 폭스바겐 뉴 비틀과 공통분모가 많았다. 둘은 ‘패션 카’의 유행을 싹틔운 쌍두마차였다. 그러나 TT는 시즌 2로 거듭나며 맥이 탁 풀렸다. 빤한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6. 볼보 C30 T51대
11개월 동안 단 한 대 팔렸다. 볼보의 오판이 거듭되며 총기를 잃었다. 5도어 해치백을 준비하지 않아 스스로 수요를 옥좼다. 디젤 엔진용 자동변속기 출시가 늦어 대도시 오너의 갈증을 축이지 못했다. 게다가 성능과 연비가 너무 떨어졌다. 자초한 결과였다.



7. BMW X5 M2대
SUV의 고성능 버전은 X6 M 하나면 충분했다. X5 M은 오징어 옆의 주꾸미, 콩나물 옆의 숙주나물 신세였다. X6 액티브 하이브리드도 단 2대 팔렸다. 이건 반대로 X5에게 양보했어야 했다. 옆에서 보면 간단한데, 스스로는 납득이 어려운 모양이다.

8. 캐딜락 CTS 스포츠왜건 3.61대
멋을 위해 왜건의 틀을 빌린 듯하다. 실제로도 왜건치곤 짐 공간이 넉넉지 않지만 너무 멋지니 용서할 수 있다. 그런데 딱 한 대 팔렸다. 누가 샀을까. 수입원이나 딜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암묵적 강요나 특혜 없이 진짜 마음이 동해 이 차를 고른 오너가 존재했으면 싶은 바람에서.

9. 크라이슬러 300C SRT81대
판매된 차가 단 1대 뿐이라면 ‘안 봐도 비디오’다. 인증이나 홍보, 마케팅용 시승차다. 크라이슬러 코리아 직원이 길들이기 주행 중이란 귀띔을 들은 것도 같다. 300C SRT8은 과잉이 일상인 차다. 300C의 차체에 V8 6.4리터 472마력 엔진을 얹었다. 스피커는 무려 19개나 된다. 레이싱 시트도 갖췄다.

10. 쉐보레 아베오2172대
사실 아베오가 꼴등은 아니다. 콜벳과 카마로는 둘을 합쳐 66대 팔렸다. 수입차여서 예외로 쳤다. 아베오의 부진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소형차가 안 팔린다. 준중형과 경차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다.

11. 링컨 타운카17대
트렁크에 골프백을 실어보면 대형보다 중형차 트렁크가 넉넉한 경우가 많다. 4개 실을 수 있는 차는 의외로 드물었다. 링컨 타운카는 독보적이었다. 8개를 삼켰다. 크기로 지위를 상징했던 시절을 연상시키는 차, 이제 서서히 잊혀간다. 17대는 쓸쓸한 최후를 암시하는 단서다.

12. 미니 쿠퍼 SD 쿠페6대
미니는 지붕을 오려내서 컨버터블, 꽁무니를 늘여서 클럽맨, 몸집을 부풀려 컨트리맨을 만들었다. 그 다음은 지붕을 납작하게 다린 쿠페였다. 여기에 143마력짜리 디젤 엔진을 얹은 게 미니 쿠퍼 SD 쿠페다. 올 하반기 본격 인도되기 시작했으니 꼴찌 타이틀이 마뜩찮을 수 있겠다.



13. 미쓰비시 파제로0대
청출어람. 미쓰비시와 현대차를 비유하는 데 이만한 사자성어도 없다. 미쓰비시가 훈훈한 스승은 아니었다. 제자 현대를 철저히 무시했다. 세월이 흘렀고 세상이 변했다. 스승은 빠르게 기력을 잃고 있다. 모기업의 위상이 국내 판매에도 영향을 미쳤다.

14. 포르쉐 911 카레라 4S 카브리올레1대
911 라인업은 굉장히 다채롭다. 과급기 여부, 배기량, 굴림 방식, 지붕에 따라 촘촘히 나뉜다. 그래서 모든 라인업이 다음 세대로 거듭나는 데 몇 년씩 걸린다. 이 차가 한 대만 팔린 이유도 뻔하다. 신형 출시가 예고된 탓이다. 스릴을 좇아 911을 탄다면 뒷바퀴 굴림을 추천한다. 종종 무섭긴 해도.

15.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31대
올해 혼다는 있는 둥 없는 둥 했다. 페이스리프트 거친 시빅을 앞세웠지만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아 반응이 썰렁했다. 현재로서는 CR-V가 기대고 의지할 거의 유일한 동아줄이다. 시빅 하이브리드는 예상대로 올해도 이 민망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전체를 통틀어 몇 되지 않는 2관왕이다. 안 팔린 이유는 혼다 스스로 더 잘 알거다.

16. 스바루 포레스터 2.555대
스바루의 존재감이 나날이 희미해지고 있다. 제품의 변화가 워낙 더디다. 게다가 유행을 외면한 채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 스바루 코리아도 인원이 대폭 물갈이된 후 활동이 거의 ‘잠수’ 수준이다. 최근 LA 모터쇼에서 신형 포레스터가 공개되었다. 따라서 내년 리스트엔 이름을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17. 렉서스 IS-F2대
렉서스가 변신에 여념이 없다. 열혈 자동차 마니아이자 토요타 가문의 황태자 아키오 사장이 취임한 이후부터다. 돌연 재미를 강조하고 나섰다. IS-F가 신호탄이었다. 아우디 RS4와 BMW M3, 메르세데스 벤츠 C 63 AMG와 승부를 자청했다. 하지만 더 숙성시킬 여지가 남았다. IS250C가 5대 팔린 게 훨씬 심각한 문제다.

18. 벤틀리 컨티넨탈 수퍼스포츠1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벤틀리의 꼴찌는 컨티넨탈 슈퍼스포츠의 몫이다. 그나마 지난해엔 벤틀리에서 가장 빠른 차였다. 하지만 시속 330킬로미터까지 달리는 신형 컨티넨탈 GT 스피드가 나오면서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졌다. 이제 신형으로 거듭날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시한부 운명 신세다. 물론 여전히 벤틀리의 어떤 모델보다 흉흉한 카리스마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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