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누가 김치를 망쳤나

2013.01.10GQ

다디단 김치, 양념 범벅 김치가 진짜 맛있는 걸까? 왜, 언제부터, 맛없는 김치가 맛있는 김치 행세를 하게 된 것일까?

김치 관련 요리대회에 심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그 대회에 김치 명인으로 이름나 있는 분이 참가했다. 심사를 해야 할 분이 왜 저 자리에 있나 싶었는데, 대회의 ‘흥행’을 위해 주최 측에서 요청한 참가 같았다. 심사 전에 참가자들의 재료를 미리 맛볼 기회가 있었다. 나에 앞서 명인의 김치를 맛본 이들은 (심사위원은 아니다) 사이다처럼 톡 쏜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의 명성은 이미 듣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김치를 맛본 적이 없어 잔뜩 기대를 했다. 그러나, 그의 김치를 한 입 먹고 깜짝 놀랐다. 톡 쏘기는 하는데 너무 달았기 때문이다. 양파나 사과, 배 같은 천연의 재료에서 오는 단맛이 아니었다. 인공의 단맛이 분명했다. 뭘 넣었는지 물었다. “스위티. 설탕하고 달라. 당뇨병 환자들이 먹는 건데….” 스위티는 아스파탐의 제품명이다. 김치 명인의 김치에 아스파탐이라니. 나는 심사평을 하며 이를 지적했고, 그 김치는 실격했다. 그때 하얗게 굳던 김치 명인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그분의 명예는 여전할 것이다. 이 업계에서는 한번 쌓은 명성은 쉬 무너지지 않는다. “아스파탐이 뭐 어때서” 하고 그의 제자들이 나서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다. 명인의 김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의 시판 김치와 식당 김치 대부분이 달다. 설탕이나 올리고당, 물엿을 넣지는 않는다. 이런 재료들은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데, 과발효로 김치가 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단맛만 나고 미생물의 먹이가 되지 않는 사카린, 아스파탐, 스테비아 같은 것을 넣는다. 아스파탐과 스테비아가 알려지기 전 김치에 사카린 넣는 것을 두고 무슨 비법이나 되는 듯이 뻐기는 식당 주인들이 참 많았다. 이건 사술이다. 또, 그런 김치가 맛있는 김치인 것도 아니다.

단맛의 김치를 입에 넣으면 처음에는 무조건 맛있게 느껴진다. 단맛은 모든 동물, 파리와 모기 등등 모든 벌레들까지, 맛있다고 여기는, 가장 원시적인 맛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김치를 거듭해서 먹으면 영 못 먹을 음식이란 걸 깨닫게 된다. 들척지근함이 입 안을 덮어 다른 음식까지 맛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김치에 단맛을 더하는 것은 첫입에 맛있다고 느껴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음식을 평가할 때 첫입의 맛에 그 음식을 판별해버리므로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시식 판매를 하는 김치이면 이 사정은 더 심해지는데, 달지 않으면 맛없다 할 것이 뻔하여 단맛을 왕창 넣게 마련이다. 김치 명인의 김치도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 김치라고 파는 것들을 보아도 한결같이 달달하다. 맵고 짠맛과 각종 향신채소를 줄이면서 그 빈 자리를 단맛으로 채우고 있다. 말이 어린이 김치지 어린이의 입맛을 망치는 김치다. 홈쇼핑에서 많이 팔리는 음식 중 하나가 김치다. 요리 연구가나 연예인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김치를 판다. 일단 연예인은 전문가가 아니니 그렇다 치고, 요리 연구가라는 사람들이 파는 김치를 보면 가관이다. 절대 맛있을 수 없는 김치를 명품이니 궁중비법이니 하며 자랑을 한다. 먹어보지도 않고 어찌 아냐고? 양념 양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김치는 양념이 많아도 너무 많다.

김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유산균 발효 채소절임’이다. 유산균이 잘 번식해야 상큼하게 톡 쏘는 김치가 되며, 그런 김치라야 건강에도 좋다. 고추의 캡사이신은 미생물의 번식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었을 때는 유산균 발효를 돕지만, 과다한 고춧가루는 유산균 발효를 오히려 방해한다. 홈쇼핑에서 파는 김치들은 대부분 고춧가루 양념 범벅이다. 방송하는 요리 연구가도 “저희는 양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고 자랑을 한다. 양념 범벅의 그런 김치는 갓 담근 상태에서는 양념 맛으로 먹을 만하지만, 익힐수록 텁텁하고 이상야릇한 잡맛을 낸다. 유산균이 아닌 잡균이 왕성하게 번식하기 때문이다. 명색이 요리 연구가인데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럼에도 그런 김치를 파는 것이 문제다. 맛있게 발효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양념 범벅을 하면 화면에서는 일단 맛있게 보이고, 또 양념 아끼지 않고 팍팍 넣었다며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김치를 팔면서 요리 연구가라고 하면 안 된다. 그냥 김치 장사꾼일 뿐이다.

양념 범벅의 김치가 홈쇼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슈퍼에서 파는 김치도 그 정도로 양념이 되어 있다. 식당 김치도 별다르지 않다. 김장김치를 보내는 이웃들이 있는데, 이들의 김치도 그 모양일 때가 많다. 가정에서까지 양념 범벅 김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옛날의 김치는 이러지 않았다. 경험적으로 유산균 발효가 잘 일어날 만한 적절한 양념 양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개운한 맛이 나는 김치를 먹었다. 그러면, 왜, 언제부터, 맛없는 김치가 맛있는 김치 행세를 하게 된 것일까? 대충 복기를 해보면, 1980년대 컬러TV 방송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일인 듯하다. 김치 담그는 법을 방송하면서 맛깔나 보이게 하려고 양념 범벅을 한 것이다. 방송 탓만 할 수 없다. 그 방송에 출연해 맛없는 김치를 보여준 요리 연구가의 책임도 있다. 제작진이 양념 범벅의 김치를 만들어달라고 해도 맛없다고, 보기는 안 좋아도 이게 맛있다고, 양념을 적게 한 김치를 보여주어야 했다. 한복 입고 고고한 척 폼만 잡는 요리연구가들이 한국 김치 맛을 다 망쳐놓은 것이다.

김치 장사를 하는 한 연예인은 (홈쇼핑 방송이 아님에도) 방송에서 가끔 고랭지배추가 최고라고 들먹인다. 은연중에 자신의 김치에 좋은 이미지를 붙이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그 고랭지배추도 김장 때의 것이나 먹을 만하지 그 외 계절의 것은 엉망의 맛을 낸다. 여름의 고랭지 밭에 가보았는가. 비탈져 유기물이 다 씻겨내리니 화학비료 듬뿍듬뿍 주어야 하고 병해충 막느라 농약을 달고 있다. 게다가 마분지 씹는 듯한 질감의 내병성 품종이 대부분이다. 얼굴 파는 장사가 나쁜 것은 아니나, 김치에 대해 아는 척은 그만할 때도 됐다. 소비자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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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LUSTRATION/ KIM SANG IN
    기타
    글/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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