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무엇인가

프로야구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끝났다. 고약한 FA 보상 규정을 지탱하는 숙주는 따로 있다.

2014년 프로야구 FA 시장은 11월 10일에 열렸다. 스토브리그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FA 시장이 열흘 만에, 싱겁게 막을 내렸다. 야구팬들은 스토브리그를 기대한다. 한국시리즈 이후 다음 시즌 전까지 무료한 시간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장 흐름에선 스토브리그란 말조차 민망하다. 선수와 구단이 계약 조건을 조율하다 데드라인 직전에 극적으로 계약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광경은 없다. FA 규약엔 원 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이 있다. FA 선수가 원 소속팀과만 협상할 수 있는 기간이다. 2014년에는 11월 16일까지였다. 11월 17일부터 11월 23일까지는 원 소속팀을 뺀 나머지 구단만 협상할 수 있는 타 구단 계약기간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전체 9개 구단이 동시에 선수에게 접촉할 수 있었다. FA 11명 중 6명이 우선협상기간에 원 소속팀과 계약했다. 원 소속팀과 계약에 실패한 5명의 선수는 모두 우선협상기간이 끝나고 채 3일이 지나지 않아 팀을 옮겼다. 11월 23일이 지나면 다시 원 소속팀과 협상할 수 있지만, 그런 선수는 없었다. 팀을 옮긴 이호준은 SK에서 2000년, 김주찬은 롯데에서 2001년, 정현욱은 삼성에서 1996년부터 뛰었다. 모두 각 팀의 대표 스타다. 스타들이 팀을 옮기는 동안, 원 소속팀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올해 FA 시장에서 원소속구단의 역할은 자명했다. 몸값을 올리는 바람잡이였다. 롯데는 우선협상기간에 김주찬에게 49억원까지 제시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하지만 KIA는 50억원에 김주찬을 데려갔다. 홍성흔과는 1년의 계약기간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두산은 홍성흔의 요구를 들어주며 계약에 성공했다. 9개 구단 모두가 동시에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선협상기간이라는 제도 때문에 불가능하다. 우선협상기간은 선수가 아니라 구단을 위한 제도다. 원 소속팀에 독점협상기간을 부여해 돈을 앞세운 다른 팀에게 뛰어난 선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제는 구단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우선협상기간에 계약을 못한 선수들은 다시 팀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원 소속기간의 제시액은 최종 계약조건의 기준이 될 뿐이다. 현행 FA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론 보상 규정이 꼽힌다. FA를 영입한 팀은 해당 선수 연봉의 300퍼센트를 원 소속팀에 보상하거나, 200퍼센트와 선수 한 명을 내줘야 한다. 철저히 구단을 위한 조항이다. 이러니 리그를 쥐락펴락하는 선수가 아니면 팀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FA 제도는 선수들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출범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태생부터 구단을 위한 제도였다. “KBO 이사회에서 만든 거예요. 선수협이랑 머리를 맞대고 같이 만든 게 아니죠. 선수들이 서로 해외 진출을 하려다 보니 너희들 할 만큼은 하고 가라, 이렇게 된 거죠.” XTM 마해영 해설위원이 말했다. 실제로 1998년 9월 24일자 <경향신문>엔 “장래성 있는 선수들의 무분별한 해외 진출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현재 미국이나 일본에서 시행 중인 FA제도의 도입을 각 구단들과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대목이 있다. 선수를 배제하고 만들었으니 보상 규정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까다로운 보상 규정이 가장 큰 문제라는 시선이야말로 위험하다. 보상 규정이 존재하는 데는 우선협상기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독소조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상 규정이 구단보다 선수들에게 문제가 된다면, 우선협상기간은 구단과 선수 양쪽에 모두 해롭다. FA가 된 선수들은 자신의 몸값을 여러 구단에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 원 소속팀에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뿐이니, 급한 마음에 몸값을 높이 부를 수밖에 없다. 2014년 롯데는 기존의 ‘짠돌이’ 이미지에서 벗어나 김주찬과 홍성흔에게 납득할 만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래도 실패했다. 타 구단 계약기간이 시작되면, 선수들도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타 구단 계약기간이 끝나고 원 소속팀과 다시 협상할 때, 타당한 조건을 제시받는 경우가 드물어서다. 다른 팀에서 계약을 제시받고 나면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2010년 최영필과 이도형은 FA를 신청했지만 결국 한화와 계약에 실패한 뒤 리그를 떠나야 했다. 당시 원 소속팀이던 한화가 팀이 2년 연속 꼴지인 상황에서 고참 선수들이 FA를 선언했다는 데 분개해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최영필은 2014년 SK로 복귀해 한 시즌을 멀쩡히 소화했다. 우선협상기간의 또 다른 문제는 템퍼링(사전 접촉) 의혹이다. 원 소속팀 우선협상기간에 선수들은 원 소속팀과만 협상해야 하지만, 이 기간 내에 다른 팀과 접촉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정황을 보면 의혹이 생길 만도 하다. 꽤 많은 선수가 원 소속팀 우선협상기간의 마지막 날 자정을 넘기자마자 다른 팀과 계약한다. “우선협상기간은 면피용이고, 우선협상기간 내에 다른 구단에서 연락을 해요. 우선협상기간 직후에 타 구단에서 전화가 왔다, 새벽에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는데 다른 구단에서 선수 집을 어떻게 알아요.” <스포츠 춘추> 박동희 기자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제가 A팀 선수인데, A팀에서 얼마 제시했다고 하면 B팀에서 우리는 얼마 줄 테니 일단 우선협상기간에 원 소속팀과 계약하지 말고 나오라는 식이죠.” 마해영 해설위원은 템퍼링 규정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했다. 선수를 잃은 구단은 그제야 외양간을 고치려 든다. 우선협상기간의 폐해는 강력한 보상 규정의 존재 이유가 됐다. 구단은 선수의 조바심 때문이든 템퍼링에 당했든, 선수를 잃었으니 어떻게든 만회하겠다는 심보다. 김주찬과 홍성흔을 내주고 홍성민과 김승회를 보상선수로 영입한 롯데가 FA 시장의 실질적 승자라는 말도 나온다. “카드 돌려 막기나 같아요. 나이 든 선수를 영입하고 유망주를 내주고 있죠.” 박동희 기자는 이런 제도 안에선 제아무리 FA를 영입한다 해도 진짜 강팀이 되긴 어렵다고 봤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오류는 더욱 명확해진다. 메이저리그에도우선협상기간 같은 제도가 있지만 그 후에도 원 소속팀이 FA 선수와 협상을 계속할 수 있다. 보상 규정도 간결하다. 선수의 등급에 따라 원 소속팀에 신인 지명권을 주는 정도다. 돈의 규모는 다르겠지만 모든 구단이 똑같은 조건으로 선수와 협상한다. 선수는 선수대로 많은 돈을 받고, 구단은 구단대로 자유 경쟁을 하니 잡음이 적다. 계약을 언제 하든 큰 상관도 없다. 2011 시즌 이후 FA가 된 대어급 투수 로이 오스왈트는 지난 시즌이 시작된 뒤 5월에야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다. 서로에게 완벽한 조건을 찾기 전까지 구단과 선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끝날때까지 계약하지 못한 FA는 다음 시즌에 뛸 수 없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선수가 기간에 대한 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계약이 늦으면 받는 돈이 줄 뿐이죠. 구단 입장에서도 한 해 수준급 FA가 60~70명 정도 나오니 무리한 템퍼링을 시도할 이유가 없죠.” 메이저리그 전문가 김형준이 말했다.

일본엔 우선협상기간이 없다. 보상 규정도 한국보다는 가볍다. 대부분 KBO 규정은 일본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개정 항목도 비슷하다. 일본 프로야구가 선수의 FA 연한을 9년에서 8년으로 줄였을 때, 우리도 곧 10년이던 연한을 9년으로 줄이는 식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우선협상기간, 보상 규정에 대한 개정은 더디다. 게다가 일본 프로야구는 선수의 에이전트 선임을 허락한다. FA 계약기간만 되면 선수 스스로 구단과 협상하느라 진을 빼야 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 선수들은 훈련에 집중할 수 있다. 기간에 관계없이 합리적인 협상을 도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제도는 단순하고 명확할수록 좋다. 지금 FA 제도는 터무니없는 보상 규정을 문제의 근원인 우선협상기간이란 규정이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다. 얽히고설켰다. 구단을 위해 만든 제도에 구단과 선수 모두 다치고 있다. 다시 팬들의 입장. 김주찬과 홍성흔을 잃고 홍성민과 김승회를 데려온 롯데 팬 일부는 만족할 수도 있다. 전력에 큰 손실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꾸준히 사직구장을 지켜온 걸출한 선수 2명을 구단이 힘 한번 못 써보고 잃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스포츠는 비즈니스가 아니란 말이 아니다. 다만, 선수와 구단이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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