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새 비이커

2013.01.17GQ

비이커는 편집매장 블리커의 새 이름이다. 이곳 가구들의 모양이 심상치 않다. 투래빗 디자이너 장승욱, 전정훈을만났다.

전정훈(왼쪽), 장승욱(오른쪽)

전정훈(왼쪽), 장승욱(오른쪽)

문짝과 창문이 행어가 됐고, 괴종시계가 수납장이 됐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 놀랐다. 이 많은 가구들을 어디서 찾았나?
쉽지 않았다. 직원들을 총동원해 전국 재활용센터로 보냈다. 버려진 가구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걸 가져오고 보관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주로 재건축 현장에서 많은 가구를 발견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처가의 30년 된 가구까지 넘봤을 정도다.

누구에겐가 버려진 가구는 쓰레기다. 그 가구들을 새 가구로 만드는 건 비이커와 무슨 관계가 있나?
블리커가 비이커로 새롭게 바뀌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총괄을 맡았다. 비이커는 과학 실험실의 비커처럼 다양한 물질을 혼합해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든다는 뜻이다. 매장을 열면서 정구호는 그 첫 번째 실험으로 정크야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건축, 인테리어,가구 전반에 걸쳐 폐자재를 사용해 새것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

각종 가구, 물탱크, 침대 매트리스를 새 가구로 만드는 작업이라니 엄청났겠다.
완성도가 관건이었다. 그 욕심 때문에 더 힘든 작업 과정도 견뎠다. 수집한 가구 모두를 3D로 모델링해서 수많은 조합과 배열을 거쳤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만든 가구들이라 그중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애착이 크다.

비이커에는 레그앤본, 밴드오브아웃사이더스, 아페쎄, 아스페시처럼 가볍고 실용적인 옷들이 많다. 언뜻 이 옷들이 재활용 가구와 어울릴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옷들이 빤지르르한 가구에 걸려 있는 게 더 뻔하다. 단, 긴자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는 반드시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비이커에 들어간 각 브랜드의 본래 매장을 살피는 것 외에, 외국의 다른 매장이나 어떤 공간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신 현대 미술 작품을 많이 봤다. 웃기는 발상일지 몰라도 삶과 죽음에 관한 데미언 허스트 작품이나 피트 하인 이크의 스트랩 우드 시리즈, 론 아라드의 초기 작품이 많은 도움을 줬다. 죽은 가구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소재는 달라도 해석의 방법이 같은 맥락이었다.

투래빗은 국내 굴지의 패션 브랜드와 많은 작업을 했다. 비이커는 다른 브랜드의 작업과 어떻게 달랐나?
명확한 주제와 소재의 제약 두 가지다. 그래서 쉬웠고, 또 어렵고 복잡했다. 디자이너로서 이런 식의 상업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제약을 두는 게 행운이라고?
비이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요구하는 분명한 주제가 있었고, 그래서 중간에 헤매지 않았다.

클라이언트를 처음 만날 때, 투래빗만의 프레젠테이션 비법이 있나?
디자인에 관한 솔직함과 확실한 의지다. 세상의 어떤 것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

    에디터
    김경민
    포토그래퍼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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