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정재 <1>

그의 얼굴에서 <인터뷰>의 은석이 보였다. 미간을 찌푸리니 <태양은 없다>의 홍기가 스쳤다. 활짝 웃으니 <오! 브라더스>의 봉구같았다. 이정재가 물었다. “지금은 어때요?”

잿빛 수트와 회색 셔츠 모두 톰 포드, 시계는 오데마 피게 by 장성원 시계.
잿빛 수트와 회색 셔츠 모두 톰 포드, 시계는 오데마 피게 by 장성원 시계.

 

흰색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 남색 바지는 랑방, 화이트 골드 팔찌는 까르띠에.
흰색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 남색 바지는 랑방, 화이트 골드 팔찌는 까르띠에.

촬영한 사진 봤나? 촬영 내내 사진을 보지 않던데?
슬쩍슬쩍 봤다. 마음에 든다.

십여 년 전, <시월애>, <오버 더 레인보우>, <인터뷰>등 한창 멜로영화를 몰아 찍을 때의 이정재가 떠올랐다. 웃을 땐, <오! 브라더스>도 생각나고.
많은 분이 멜로영화나 코미디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엔 연속해서 센 영화를 찍었지만.

지지난 주에 <도둑들> 보너스가 나오지 않았나?
하하. 어떻게 알았나? 스태프만 나오고 배우는 아직이다. 보너스가 지급될 정도로 잘될 줄은 몰랐다. 한 7, 8백만 명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너무 잘됐다.

작년 <도둑들>을 최종 편집 중일 때, 최동훈 감독을 만났다. 그가 당신의 연기를 가장 기대하라고 말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어제 <도둑들>을 다시 봤다.
어땠나?

좀 아쉬웠다. 이를테면, 뽀빠이가 마카오 박에게 격하게 화를 내는 장면은 왜 그렇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편으론 마카오 박에 비해 뽀빠이의 존재감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뽀빠이랑 마카오 박의 관계 설정에서, 설명이 좀 없었다. 두 캐릭터 간의 갈등하는 설정만 있었지 관계 설정 장면이 부족했다. 영화에 나온 그 정도의 대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냐는 거였는데, 사실 조금 모자랐던 것 같다. 마카오 박과 펩시의 로맨스가 더 확실했으면 뽀빠이의 질투도 명확해지고 좋았을 텐데, 둘의 베드신도 삭제되었다. 서사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캐릭터가 많고, 제한된 시간 안에 풀어야 하는 감독의 딜레마 아닐까? 그래서 톤이 좀 맞지 않은 것 같다. 배우가 자신의 감정만 가지고 연기를 하고, 관객은 볼 수 없다면 결국 배우와 연출자의 잘못이다.

한창 <도둑들>을 촬영할 때는 그 작품이 당신의 대표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당신의 연기는 움직임이 좋다는 평이 많았다.
아쉽다고 생각하면 너무 많다. <태양은 없다>도 원이 없을 것 같지만, 그것마저도 아쉽다. <도둑들>에서 중요한 건 플롯이었다. 그러니 개인 캐릭터를 부각시키기보단 앙상블에 중점을 뒀다. 소리를 내기보단 화음을 맞춘달까? 이런 이유도 있다. 배우 얼굴이 화면에서와 실물이 다르듯이 배우의 연기도 실제 연기와 편집된 상태의 연기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어떤 배우는 현장에선 부족해 보이지만 스크린 안에선 꽉 찰 때가 있다. 에너지가 폭발한다고나 할까? 의외로 이정재에게서 그런 폭발을 보기가 어렵다. 성격이 극단적이지 않아서일까?
아니, 내 성격은 중간이 없다. 성격이 센 편이다. 좋으면 굉장히 좋고, 싫으면 완전히 싫고. 아직 한 번도 어떤 영화에서 내 성격만큼 표현을 못한 것 같다. 아쉽지만 그만큼 또 해먹을 게 있다는 뜻 아닌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감독들이 아직도 이정재가 제대로 발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당신도 자신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는 감독을 기다린다고.
뽀빠이가 그나마 좀 센 표현을 한 역할이었다. 한데 감독님이 그런 것들을 없앴다. 뽀빠이가 세게 나오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카오 박이 제일 묵직하게 나와야 하고, 게다가 후반부에서 뽀빠이와 마카오 박의 갈등이 중심이 아니라 마카오 박의 복수가 중요하니까. 그래도 뽀빠이를 연기하면서 아직은 내가 에너지가 좀 있는 배우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뽀빠이가 시나리오에선 죽었는데, 영화가 잘되면 2편도 생각해야 해서 결국 죽진 않았다. 하하.

만약 <도둑들 2>가 제작되면 뽀빠이를 볼 수 있는 건가? 지금까지 두 편 이상 영화를 함께한 감독이 드물다.
최동훈 감독과 <범죄의 재구성> 때 못 만난 것이 아쉬웠다. 지금까지 놓친 작품 중 가장 아쉽다. 이재용 감독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못한 것도 아쉽고, 김용화 감독과 <미녀는 괴로워>를 못한 것도 많이 아쉽다. 당시 나이에 비해 좀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배우한테 남는 건 역시 작품이지만, 인생에서 남는 건 사실 사람이다. 배우로 생활하지만 몇몇 작품으로만 살아갈 순 없다.

최근엔 작품을 아주 촘촘하게 찍는다.
예전엔 작품이 많으면 기자들이 다작 배우라고 폄하하기도 하고, 선배들도 이미지가 소비된다며 작품을 많이 하는 걸 말렸다. 하지만 요즘 후배들 보면 굉장히 많이 찍지 않나? 나도 자유롭게 연기생활이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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